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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Sep 02. 2016

교양 글쓰기 수업에 첫 출석을 하고

글쓰기에 대해,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나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이과대학 화학과에 소속되어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어울리지 않는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표에 화학 및 실험, 유기화학, 생화학, 물리화학 따위의 과목이 큼직큼직하게 들어서 있는 이과대학 화학과 소속이다. 그런 따분하면서도 갑갑해지는 과목들 사이에, 창조적 사고의 표현이라는 과목이 자리 잡았다. 졸업에 필요한 기초 교양 과목 중에 글쓰기 과목들이 있고, 그 중 하나가 창조적 사고의 표현이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표를 짤 때부터 많은 기대와, 동시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걱정 역시 함께했다. 수강신청 당일, 나름 치열한 경쟁 가운데서 클릭 전쟁에서 성공했다. 35명의 정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자랑스럽게 목요일 오전 시간표에 창조적 사고의 표현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글쓰기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단체로 여행을 다녀오고서 쓴 여행기가 뽑혀서 교지에 실린 적이 있다. 국어 시간 과제로 제출한 소설도 선생님께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동기의 순간을 나 역시 가지고 있다. 그 순간이 너무 기뻐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고등학교때는 이과를 선택한 학생인데도 언어와 외국어 선생님들께 예쁨받곤 했다. 언어 문제를 물어보려고, 대회에 낸 자작시를 첨삭받으려고, 여러 가지 이유로 교무실의 국어 선생님 자리를 계속 찾아갔다. 대신 수학과 과학은 꽝이었다. 공부는 어느정도 한다고 소문난 학생이 물리 시간에는 항상 엎어져 자 버려서 물리 선생님께서 날 싫어했었던 기억이 난다. 수리도 2등급 한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높은 등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거기에 잘하는건 계속하고 못하는건 놓아버리는 성격이 더해져서, 흔히 말하는 수포자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진로를 그 쪽으로 정하지 않은 이유는 꽤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문과에 가면 굶어죽네 마네 하는 말들을 하곤 했다. 나도 막연히 돈이 많이 벌고 싶어서 이과를 골랐다. 그런데 그건 큰 실수였다. 난 좋아하는 건 잠도 안 자 가면서 하지만, 싫은 것은 손도 대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막연히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고른 진로는 지금 이 순간까지 날 괴롭히고 있다. 스스로를 너무 몰랐던 대가는 꽤나 혹독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진로와는 별개로 글쓰기를 아예 놓지는 않았다. 미미하지만 블로그나 이글루 등에 온갖 글을 올려왔다. 실질적으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지만, 방문자 수가 올라가는 재미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동아리 집행부 활동을 할 때는 공문 쓰는것을 담당했다. 많이 직설적이어서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문장력이나 논리를 지적당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집행부들도 공지를 올리기 전에 조언을 구하거나 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글을 써서 3박 4일의 휴가를 받아낸 적이 있었다. 화학과를 탈출해서 전과하려고 했던 과는 문화콘텐츠학과였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글쓰기를 내 인생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브런치 작가까지, 나는 항상 글을 쓰고 있었다. 가슴 한켠으로는 나의 진로와 전혀 상관없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죄책감이 있었지만.   


 창의적 사고의 표현 수업은 그런 죄책감을 덜어주는 존재, 그리고 메마른 전공 수업 사이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과목이라니... 게다가 글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경험은 거의 없어서, 글을 더 잘 쓸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 역시 든다. 앞의 것들처럼 구체적인 이유를 대지 않아도, 개강 첫 주에 배운 마르코니코프 법칙이라거나, 센트럴 도그마라거나, 쿨롱의 법칙 따위보다는 창조적 사고의 표현 과목의 개강 오리엔테이션이 훨씬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난 벌써부터 이 수업을 꽤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오리엔테이션때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느 사람에게나 중요한 역량이라는 말씀 역시 덧붙이셨다. 첫 수업을 들었을 뿐인데, 나는 내가 가진 다른 재능들보다는 비교적 괜찮다고 할 만한 것인 글쓰기를 예전보다 더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되었다. 교수님의 그 말씀이 진로와 전혀 상관없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는 자책을 쓰다듬어 주는 위로처럼 다가왔다. 이번 학기는 목요일 오전을 계속 기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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