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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Feb 18. 2022

칼로리의 객관화

 먹는 것에 비해 살이 많이 찌는 것 같다고 친구에게 불평하곤 했다. 친구는 식습관을 한번 돌아보라며, 어플 같은 수단을 통해 기록을 해보라 했다. 한탄에 공감해주지 않는 친구가 야속하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명절 후라 몸이 무거웠고, 여러 요인으로 인해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냉장고에는 닭가슴살 소시지와 샐러드 거리 야채가 있었다. 아침을 가볍게 먹고, 칼로리 기록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

 그날부터 칼로리, 지방, 당 한도를 정하고 매일매일 식사를 꾸려 나가고 있다. 지방과 당은 일정 수치 아래로, 칼로리는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게. 칼로리는 하루 네 번 이상 나눠서 섭취하기. 다이어트에 성공한 지인의 다이어트 원칙을 따라 착실히 실행 중이다. 아직 전자저울이 없어 정확한 계량은 안 되지만, 성분표를 참고해 눈대중으로라도 칼로리를 기록 중이다.

 칼로리를 수치화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몇 가지 소득을 얻었다. 가장 좋은 것은 간식을 거의 끊게 되었다는 것이다. 잠을 깬다고, 머리를 굴린다고, 스트레스를 푼다고, 단 것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 먼 곳에 있는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다. 밀크티나 토피넛 라테 같은 음료도 좋아했다. 하지만 먹은 것을 기록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아예 그것들을 먹지 않게 되었다. 대신 우무 젤리를 입에 달고 살게 된 부작용은 생겼지만. 우무 젤리는 앞에 말한 것들을 대체하기 충분하게 맛있으면서도, 칼로리는 6kcal 밖에 안 된다. 우무 젤리가 있는데 스콘을 먹는다면 다이어트를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다소 짧은듯한 생각이 든다. 또 막연히 힘든 하루를 보상한답시고 먹던 칼로리 폭탄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지방 제한 등의 영양소를 다 맞추면서 칼로리를 확보하는 방법은 결국 닭가슴살, 연어, 크래미 같은 것을 먹는 것뿐이었고, 최대한 그것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법에 대해 연구하게 됐다. 라면이라던지, 배달음식이라던지, 그런 것들의 칼로리와 성분표를 어플로 찾아보고 나면 먹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하루 먹은 것들을 숫자로 기록하니,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먹었는지, 남은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객관적인 기준이 생겼다. 예전에는 막연히 적게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분별없이 먹다가 살이 찌면 후회해서 너무 낮은 칼로리를 섭취했다. 둘 다 건강에 좋지 않은 식습관이었지만, 객관적인 기준이 없었으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기준이 생겼고, 매 끼니, 매일매일, 꾸준히 적당한 영양소와 칼로리를 섭취하려 노력한다.

 주중 한 끼는 회사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식이요법은 어렵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최대한 탄수화물은 줄이고 단백질은 많이. 밥 양은 적게. 그런 원칙들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정확하진 않아도 대강 반찬들을 찾아서 어림짐작으로나마 영양분 계산을 하고 있다. 점심이 조금 기름졌던 날은 저녁을 닭가슴살 샐러드로 해결하는 식으로 식단을 맞추고 있다.

 어플을 통해 칼로리를 객관화하면서 느낀 점은, 삼시 세 끼만 적당량 먹어도 살이 빠질 것 같다는 것이다. 밥을 먹고 나면 단 것을 먹고 싶은 욕구가 찾아온다. 하지만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기록을 하지 않았을 때의 나는 그때마다 단 것을 먹었을 것이다. 결국은 식습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막상 결심이 확실히 든 채로 행동에 옮겨서인지, 먹는 것 자체보다는 숫자를 기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식사를 조절하는 것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다. 결국 객관화가 해답이었을까, 지금까지는 그런 것 같은데 두세 달 뒤에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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