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높은 회피형 인간의 변
서운하다는 단어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일을 겪었다. 약속 장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운전을 어떻게 해서 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한없이 자괴감이 드는 일. 사회생활을 그냥 관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일로 겪은 내상으로 인해 하루 종일 잠만 잤고,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은 것도 모자라 다섯 조각의 치아바타에 땅콩버터와 오렌지 잼을 발라 먹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떠올리면 열이 오르는 그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특정하게 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은 관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적지 않겠다.
사람은 상처를 주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을 결코 도울 수 없다, 그런 말을 하루 종일 되뇌던 나로 하여금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게 한 것은 위에 서술한 것처럼 하루 종일의 잠, 과다 섭취한 당을 포함한 탄수화물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행위였다. 결국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인 것일까?
나의 하소연을 들은 몇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는 일이라 반응했다. 어떤 친구는 나 대신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욕하며,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인간들이니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다른 친구는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냥 그 일을 잊어버리라고 했다. 다만 그 친구들에게 경각심은 조금 줬어야 했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 화를 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나는 대답했다. 왜 화를 내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냥 내가 우스워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또 화를 내면 잘 조절하지 못하는 심성이라, 정말 돌이키지 못하는 사이가 될 것 같아 그랬다고 했다. 앞으로 그 친구들이랑 어떻게 지낼 거냐는 물음에 나는 사람 몇 명 잘 걸렀다고 대답했다. 그럼 화를 냈어도 되는 거 아냐? 너는 너무 해야 할 말만 하는 경향이 있어. 친구는 말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회피형 인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회피형 인간을 기피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갈등 앞에 선 나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려 애쓴다. 몇 가지 이유라 이름 붙일 변명거리가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서운함을 적당한 강도로 표현하지 못한다. 괜히 화를 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것 같아서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또 괜히 화냈다가 나중에 조리돌림 당하는 게 무서워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 사람 삐졌다고 뒷말이 나올 게 뻔하다. 삐졌다는 단어는 개인적으로 정말 싫어하는 단어다. 상처 준 주제에 상처받은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싫다. 물론 내가 잘 삐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회피형 인간이라고 해도, 사소한 갈등이 생겼을 때마다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의 갈등이 일어났을 때 회피 본능이 발동하는 것뿐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수를 한 사람과 별로 엮이고 싶지 않고, 그런 실수를 한 사람에게 먼저 나서서 화해를 받아내고 싶지도 않다. 그건 잘못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기분이 상한지 모르겠냐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걸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냥 그 사람이 심각하게 나랑 안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할 뿐이다.
위에 서술된 나의 모습을 마주하자니, 왜 사람들이 회피형 인간을 꺼려하는지 알 것도 같다. 다만 내가 그어 놓은 선을 넘는 사람들을 볼 때, 감정이 극에 달한 나는 그 상황을 피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만다. 회피할 만한 일을 적지 않은 빈도로 겪다는 다는 문제 역시 있는데, 제삼자가 듣기에도 넘어가기 조금 애매한 실수라는 점에서는 나의 역치가 낮은 것은 아닐 것이다. 친구들은 내게 평소에 표현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과거에는 표현을 하는 내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표현하지 않게 되었다. 표현도 제대로 하지 않아 놓고, 어느 순간 선을 넘으면 갑자기 관계를 정리하려 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려놓는 것이 많아지지만, 내려놓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역시 강해진다. 용인해주는 행동이 많아지는 동시에, 끝까지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경계심은 커지고 마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나이 들어감에 따라 이해심이 깊어지고, 그래서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 그렇게 폭을 줄이고 줄였음에도 나와 결이 맞지 않는다면, 굳이 같이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표현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람도 나도 변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내 인간관계니까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슨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관계를 정리하려 든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실수라 생각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회피형 인간으로 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내가 당했던 일 몇 가지를 이야기하면, 실수한 이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게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역치가 낮은 회피형 인간은 아니라는 변명을 하려 덧붙인 말이다. 회피하기 전에 표현을 하면 되지 않냐는 사람들 중에는 남에게 실수를 종종 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취해야 하는 태도는 정중한 사과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상처받아서 등을 돌리려 하는 사람을 책망하는 태도가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대부분이 꺼려하는 회피형 인간으로서 변명을 길게 늘어놓아 보았다. 나도 다 이해되지 않는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풀어써 보았다. 텍스트로 옮겨 적어 보았지만, 여전히 나를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들은 회피형 인간인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겪을 때나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한 존재라고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