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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Apr 28. 2023

테니스 한 번 배운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스스로 저질러버린 수많은 취미의 허물들 앞에 서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곤 한다. 엄연히 제 기능을 하는 악기들을 허물이라 표현하는 것은 듣는 악기들 입장에서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 샀을 때만 조금 만지작거렸을 뿐이고, 관심이 식은 지금은 그저 스스로의 크기만큼의 방구석을 차지하고만 있으니 벗어던진 허물과 같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무엇을 연주할지, 그다음은 어떤 것을 연주할지, 그 답을 찾지 못한 나는 결국 그 허물들을 다시 중고 장터에 넘기기에 이르렀다. 금전적인 기준에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팔아버린 악기가 다시금 갖고 싶어지고, 결국 악기를 다시 사모으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스스로가 합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또 하곤 한다. 자주 치지도 않는 악기를 사놓고 방치하는 이런 행동을 어떻게 합리화를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충동적으로 구매한 악기들을 다시 팔아서 돈을 챙기며 그래도 사용한 값으로 몇 만 원 정도만 들었다며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교훈을 잊고 다시 악기를 사들이는 걸 반복하는 것은 덤으로 따라오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항상 내 안에 없는 답은 타인에게서 찾기 마련이다. 또 쓸데없이 기타를 사버렸다는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 스스로는 중고 악기를 사는 것을 테니스 몇 달 배운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평생 치지 않을 테니스라도, 배울 때 즐거웠으니 된 거라고 생각하듯, 악기도 사서 몇 달 즐거웠으면 그걸로 이미 값어치를 한 것 아니냐 했다. 그리고 배워놓고 가끔 치는 테니스처럼 악기도 가끔 꺼내서 간단히 즐기면, 그리고 흥미가 생기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친구의 말을 처음 들을 때는 악기쟁이끼리의 소소한 우스개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맞는 말처럼 느껴졌다. 배워버린 테니스와 사버린 악기가 다른 점은 지불해 버린 수업료와는 다르게 중고로 넘긴다면 조금 감가는 있겠지만 돈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이고, 그래서 쓰지 않는 악기를 파는 것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 악기를 방에서 치워버리고 나면 추억과의 매개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네다섯 개의 자작곡을 쓸 때 썼던 악기들이 지금은 내 손에 없다. 생각해 보면 아쉬운 일이다. 자꾸만 악기를 사들이는 행동 역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소위 합리적인 생각이 득세를 해서 악기를 팔아버리는 선택을 하고 말았지만, 결국 악기를 다시 연주하고 싶어 져서 구입하고 마는 것이었다. 어차피 계속 음악을 기웃거리며 살아갈 것이라면, 악기를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큰 그림으로 봤을 땐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방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악기를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되는 그럴듯한 이유가 생겼다. 그저 테니스 한 번 배웠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또 오히려 악기를 팔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악기를 단순히 파는 것이 아니고 지난 추억과의 매개, 그리고 쌓아온 취미와의 매개, 그런 것까지 같이 판매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로소 악기들은 허물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이 모여 만든 추억, 그리고 언제든 다시 즐길 수 있는 선택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맘에 드는 쉬운 곡을 하나 찾았고, 피아노 위의 먼지를 털어냈다. 이미 제 값을 다한 피아노 위에 앉아서 추억을 더 만들기로 했다. 지금 있는 악기들로 더 많은 곡도, 더 많은 추억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악기가 많기는 한 것 같다... 주로 저렴한 것들이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더 늘리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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