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마지막일 만남
아침 식사로는 집에서 에어프라이어로 구워온 딱딱한 빵에 물을 조금 마셨다. 호스텔 문을 나서 바로 앞에 있는 서울역으로 들어갔다. 4호선 입구를 지나서, 조금 더 멀리 있는 1호선 입구를 향해 걸었다. 북적거리는 1호선을 타고 어떻게 매일 이렇게 지하철로 통근을 하지 생각했는데, 9호선 급행에 낑겨 가는 사람들을 보며 1호선은 양반이구나 생각을 했다.
국회의사당 역에 내리는 사람들이 괜히 멋지게 보였다. 어떤 멋진 직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교육 때문에 조금 편하게 입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출근 중인 직장인으로 보이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도 했다. 생각이 많은 것은 N의 본질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날 교육도 여전히 재밌었다. 한결 더 친해진 조원들과의 의사소통도 즐거웠고, 강사님과의 이야기는 전날과 다름없이 흥미로웠다. 다만 요양의 의도를 가진 교육 출장인데 너무 열심히 과제를 해결해야 해서 조금 피곤하기는 했다. 어쨌든 좋은 강사님인 것이다. 적당히 때워도 되는 수업을 알차게 준비하신 것이니까. 여러 동기부여 영상, 그리고 강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저 직장에 의탁하며 출퇴근만 반복하는 관성적인 삶이 아니라, 퇴근 후 내 것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수업이 끝나고, 문래로 향했다. 대학교 시절 함께 팀프로젝트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제는 처음 만난 지 10년이 돼버린 동생 둘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른 팀프로젝트를 함께한 사람들 중에는 원수가 된 이들도 몇 있는데, 연락이 이어지는 걸 넘어서 사이좋게 10년을 지내온 걸 보면 서로 잘 맞았던 것 같다. 동생들에게 내가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힘들고 외로웠던 대학생활 많이 의지를 한 각별한 친구들이다. 다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조금 뜸해졌지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연락이 왔고 그렇게 10년간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지역에 산다는 것은 넘기 힘든 장벽인 것이다. 작년 초에 본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었고, 그렇게 이 인연도 흐지부지 되는 건가 생각한 채 잊어버린지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런데 이번 상경에 딱 맞춰 연락이 왔다. 우리는 정말로 연락할 팔자구나, 생각했다.
한 명은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는 중이었다. 한 명은 다음 달이면 박사과정을 하러 미국에 가서 7년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 가서 7년을 있어야 한다니, 이번에 만나는 것이 정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해서라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가는 길, 비워놓은 일정을 급하게 맞춰 약속을 잡았다.
문래는 딱 한번 와본 적이 있는 동네다. 하지만 그때 비가 무척 많이 왔었기에 동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둘러볼 겨를은 전혀 없었다. 어렴풋이 낮은 건물들 사이로 좁은 골목이 굽이굽이 있고, 틈틈이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채우고 있다는 인상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맑은 날 찾아간 문래는 내가 가진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코, 와인, 회, 꼬치구이, 양식, 그런 것들로 가득했다.
동생들과 내 취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타코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처음으로 먹는 비리아 타코는 짭짤했다. 그냥 타코가 내 입에 더 맞는 것 같았다. 미국에 가는 동생이 잘 먹지 못해서 식욕이 없냐 물었는데 오후 세시쯤 식사를 하고 오는 바람에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이제 미국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약속을 많이 잡은 탓이라고 했다. 출국하면 일정 때문에 적어도 2년간은 한국에 돌아올 수 없어서, 약속을 촘촘하게 잡아 모두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생은 약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미국에 가고 싶지 않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잘난 사람들이 다 모인 미국의 대학원에서 잘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고 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무를 수는 없는 단계였다. 학교와도 이야기가 끝났고, 살 집까지 다 구해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응원을 해주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바로는 삶에 불만을 가지고 어떤 일을 저질러야 삶이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삶이 마음에 차지 않아 미국으로 가기로 한 선택이 삶을 바꿔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쪽에서도 네가 자격이 있으니 받아준 것일 것이고, 그러니 잘 해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상황에 맞춰 이야기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미국으로 떠나는 그 동생이 부럽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든 싫든 한국에 붙어서 살아가야 하는 나보다는 개척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지방에 살며 서울을 동경하고, 한국에 살며 외국을 동경하고, 직장인으로 살며 프리랜서를 동경하고, 자기 것이 아닌 것이 좋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본질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세 사람은 지하철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딱히 틀어진 것이 없음에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이가 있다는 사실에 나이먹음을 느꼈고, 조금 슬펐다. 서울여행의 세 번째 밤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