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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음악 이야기를 할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엄청 깊은 이야기까진 아니더라도, 이런 노래를 출근길에 들었더니 좋았다는 이야기나, 이런 곡을 공연하면 좋을 것 같다거나,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노래 연습도 모임에 들기 전보다는 열심히 했습니다. 음악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가 동기가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곧 다가올 공연에서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습 공간이 확보된 것이 연습을 열심히 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모임을 운영하는 학원의 연습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하는 노래 연습은 낮고 여리게 흥얼거리는 것뿐이었는데, 제대로 갖춰진 연습실에 가니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맘껏 부를 수 있었습니다. 모임에 가입하고 나서, 모임 활동보다는 개인의 음악 취미에 더 긍정적인 변화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음악 모임 본연의 미션에 큰 진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대 준비는커녕, 여전히 공연곡조차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공연곡이 정해지지 않은 이유는 첫날부터 음악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던 그 한 분 때문이었습니다. 나머지 셋은 활발하게 음악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이 곡을 고르면 공연 무대를 어떻게 구성하면 좋겠다, 그런 수준으로 기대에 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그분은 전혀 참여가 없었습니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 당사자 중 한 명이 아무 말이 없으니 공연곡 선정이 진전이 될 턱이 없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른 두 명도 저처럼 굳이 그분에게 말을 붙이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팀장이었기 때문에 싫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대로 공연곡 결정을 계속 미루다 가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무대를 못할 판이었습니다. 온 마음 구석구석의 의무감을 다 모아, 어떤 곡이 좋으신 것 같냐, 말을 걸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답이 그렇게 빨리 오지도 않았고, 기껏 온 답은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는 곡으로 따라가겠다."였습니다. 그래서 세 명이서 각각 한 곡씩을 골라 채팅방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 곡을 꼼꼼히 듣고 난 후, 모여서 공연곡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정해진 세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걸어갈 때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밴드 동아리 시절, 공연을 준비할 때 노래를 반복해 듣던 시절이 떠올라 조금은 긍정적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연습을 하다 보면 괜찮아질 수도 있다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해서 모인 사
드디어 모이기로 한 날. 음악에 관심 없어 보이던 그분의 "바빠서 노래를 못 듣고 왔어요."라는 말에, 제 희망과 인류애는 부서졌습니다. 도저히 표정관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나빠져서, 어쩌면 제 감정이 그분에게도 전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걸 눈치챌 정도라면 애초에 이런 결례를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지금부터 들으면 된다며 핸드폰에 귀를 대고 듣는 모습을 보면서는 일말의 긍정적인 감정도 들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지만 곡은 정해야 했기에, 차례대로 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세 곡을 모두 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눈 결과, 제가 고른 곡이 제일 괜찮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드디어 공연곡을 정했으니, 파트까지 나누기로 했습니다. 모두 사회인인 입장에서 모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오늘 최대한 많이 결정해 둬야 다음 시간까지 연습을 해서 모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파트는 생각보다 빠르게 정해질 기미가 보였습니다. 서로가 어떤 부분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활발하게 오고 갔습니다. 문제의 한 분만 빼고 말입니다. 그분은 집요하게 여성 회원 쪽으로만 돌아앉아, 노래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습니다. 점점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파트 선정이고 뭐고 우선 오늘은 집에 갈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문제의 그분이 갑자기 여자분의 손을 잡아끌더니 자신의 손과 깍지를 꼈습니다.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나가던지 제가 관두던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