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후기
정말 친한 친구들과의 첫 만남은 잘 기억나지 않는 법이다. 가장 처음으로 접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인 "초속 5cm"를 처음 보게 된 과정 역시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3부작으로 구성된 "초속 5cm" 중 1부가 먼저 출시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주 마음에 들어해서 몇 번이고 돌려서 봤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쯤 3부까지 완성된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찾아서 보았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 작품의 결말을 보고, 꽤 씁쓸해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 역시 난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이 가진 전반적으로 담담하고 정적인 줄거리의 전개는, 그의 작품이 메이저보다는 인디 씬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자극적이거나 드라마틱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보는 이로 하여금 약간의 씁쓸함마저 느끼게 하는 스토리가 그의 작품들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차분한 스토리와 대비되는, 보정을 한껏 넣은 사진과 같은 신카이 마코토의 환상적인 작화는, 그의 작품의 정적인 내용 때문에 다소 서정적이고 씁쓸해져 버린, 어지러워진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더 흔들어놓는다. 그것이 내가 느끼는 신카이 마코토의 스타일이었다. 나는 그의 스타일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중 “초속 5cm”,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언어의 정원”은 여러 번 돌려보았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보고 나면, 항상 차분하면서도 약간 우울할 듯 말 듯 한 기분이 되었다. 우울함, 담담함. 그런 류의 감정들이 내가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을 들을 때,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보기 전에 느끼게 된 감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차기작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는 우스갯소리로 “또 한 커플이 이어지지 못하겠구나.” 같은 말을 했다. 그것이 그의 분위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너의 이름은”이 한국에 개봉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러 갈 수 없었는데, 먼저 개봉한 일본에서는 엄청난 호평과 함께 흥행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좋아했을 뿐, 그가 흥행 감독인지, 인지도가 있는 감독인지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초속 5cm도 그럭저럭 화제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좋아하는 감독이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점점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엄청 잘 만든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보통 관심을 가지면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해 찾아보거나 하는데, 몇 안 되는 좋아하는 감독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개봉하면 제대로 돈을 주고 영화관에 가서 봐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몇 달 후, 한국에 너의 목소리가 개봉하고 난 며칠 새에, “너의 이름은”의 후기가 인터넷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거의 9할이 호평, 그것도 엄청난 찬사 위주였다. 신카이 마코토의 팬인 나였지만, 왜 저렇게 호들갑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보고 싶어서 “너의 이름은”에 관련된 글을 피해 다녔는데, 그것만으로는 스포일러를 피할 수 없었다. 그저 자주 다니는 사이트, 아니면 카카오톡 채널의 첫 화면을 보았을 뿐인데, 내 눈에 스치며 지나가는 글의 제목, 그리고 그 글의 썸네일이 꽤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기의 제목들 - 단지 제목이다. 글을 눌러서 들어가지도 않았다 - 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영화에 재난이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남녀 주인공의 몸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내게는 큰 스포일러였다. 신카이 마코토적인 작품이 하나 더 나왔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관에 들어갔더라면 받게 되었을 신선함 중 많은 부분이 날아가버린 것과 같은 의미였다. 더 늦추기도 애매해서, 충동적으로 예매를 했다.
“너의 이름은”을 보고 느낀 것은 기존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 꽤 보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스러운 요소는 곳곳에 스며있었다. 어마어마한 작화는 여전하고, 카메오로 등장한 “언어의 정원”의 등장인물, “초속 5cm”를 연상시키는 철도 씬, 주인공들 간에 스쳐 지나가는 씬까지. 나름 작품들을 챙겨본 팬 입장에서는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분위기가 꽤 달랐다. 일단 작품이 밝았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항상 먼 풍경을 보면서, 독백을 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자연히 시선은 주인공의 주변에 머물게 되고, 주변 인물들은 마치 풍경처럼 그려지곤 했다. 그런데 “너의 이름은”은 달랐다. 여전히 두 주인공의 비중이 크지만, 주변 인물들의 비중이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커졌고, 주인공들은 그들과 의사소통하며 사건을 전개해 나가며 극의 전반에 왁자지껄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래서 그의 예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웃을 수 있는 장면이 꽤 많았다. 스토리 역시 엄청나게 드라마틱했다. 개연성은 약간 떨어지지만, SF와 판타지 그 중간쯤에 있는 소재를 택했기 때문에, 전개가 터무니없다는 지적들로부터는 꽤나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다소 주관적이지만 아쉬웠던 점들도 몇 가지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들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보면서 다소 과장된 것 같은, 낯이 간질간질하게 하는 표현이 별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표현이 꽤 많이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본의 매체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중간중간 발가락을 오므리게 하는 순간이 몇 있었다. 또한 내용이 전개됨에 있어서, 중간에 등장했을 법한 자질구레한 갈등 요소들이, 경쾌한 음악과 몇 줄의 대사들로 압축되어 지나가는 구성을 하고 있는데, 항상 덤덤하면서도 밋밋한, 그리고 긴 호흡의 구성을 가져가는 전작들과는 정 반대의 방식으로 느껴졌다. 지금까지 많이 다뤄졌던 소재들에서 등장하는 뻔한 클리셰들을 가볍게 넘어가는 선택을 통해, 관객들이 느꼈을 진부함을 덜어준 점은 긍정적인 것 같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전개 같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었다. "초속 5cm"가 그랬던 것 처럼 “너의 이름은” 역시 따로 발매된 만화와 소설을 통해 뒷 이야기를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음악을 끼고 이야기를 스쳐 지나가는 그러한 구성이, 영화라는 제한된 분량을 가진 매체에 큰 이야기를 끼워넣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뭇 다른 분위기와 스토리텔링 방식 속에서도, 그의 전작들처럼 "애틋한 사랑"에 대해 다루었다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인연, 혹은 문자 한 통을 보내는데 8년이 넘는 우주를 가로질러서도 이어지는 인연에 대해 다룬 전작들처럼, "너의 이름은"에서 다룬 3년이라는 시간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소년소녀의 인연은, 전작들만큼의 매력을 가진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고조되는 감정은, 그의 전작들이 가진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충분히 신카이 마코토스러운 이야기였다.
다소 가볍고 대중적인 전달 방식과 확정적이면서도 밝은 결말을 가진, 전작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신작인 “너의 이름은”이었지만, 딱히 실망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는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대중성까지 갖춘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흥행하기에는 유일하게 부족한 요소라고 할 만한 약점인 대중성을 보완해서, 한 단계 진화한 느낌이랄까. 감정선과 여운, 독백 같은 것들을 주 무기로 하던 감독이, 상대적으로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 역시 매력적이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는 사실 역시 팬으로서 꽤 기쁘다. 앞으로의 그의 작품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2017년의 첫 영화를 좋아하는 감독의 좋은 작품으로 한 것이 즐겁다.
*여담
주인공 커플이 너무 억지스럽게, 우연과 우연의 끝에 이어졌다는 지적들을 많이 보았다. 초속 5cm의 타카키와 아카리는 끝없는 엇갈림 속에 결국 이어지지 않았고, 언어의 정원의 두 등장인물 역시 결국은 이어지지 않은 채 애틋하게 끝나게 된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의 주인공들 역시 이어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실 몇 번 보지 않아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내 머릿속 신카이 마코토 = 커플브레이커에 일조한 작품이기 때문에 씁쓸한 결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은, 정말 억지스럽게 이어졌지만, 그동안의 작품들에서 쓰지 않고 비축해둔 인연을 이번 “너의 이름은”으로 한 번에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인연이라는 주제의식과 잘 어울리는 결말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