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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Feb 03. 2017

쓰다가 멈춘 자작곡을 어떡해야 하나

의미없어 보이는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것들을

 손에 쥐고 있는 자작곡이 세 곡 정도 된다. 리프를 완성한것은 작년인데, 그 뒤로 몇 달째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는 곡들이다. 반주와 멜로디 라인은 대강 완성이 되었는데, 어떤 가사를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까닭이다. "노엘 갤러거가 첫 앨범을 낸 것이 27살이다."라고 친구가 말한 것이, 나도 아직 음악을 완전히 놓기에는 늦지 않았고, 적어도 27살쯤 되면 앨범 한 장 분량의 자작곡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계기였다. 2016년 목표는 5곡 쓰기로, 구체적인 계획을 잡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출사표가 무색해지게, 지금의 나는 멜로디만 있는 반쪽짜리 자작곡을 세 개 들고있을 뿐이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오늘이 2월 3일이라는 것은, 두 달 반 정도 되는 방학의 절반 이상이 흘러가 버렸다는 그런 뜻이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던 순간, 머릿속에 있었던 여러 계획들을 떠올려 본다. 위에서 말한 자작곡 만들기, 브런치에 수필 많이 올리기, 항상 하고 싶었던 게임 리뷰 시작하기, 기타 더 많이 연습하기, 건반 악기 연습하기, 운동 열심히 하기 등. 그리고 방학 끝까지 한 달 정도 남은 지금, 방학이 끝났을때 제대로 이뤘다고 할 만한 목표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중간하게 진행된 계획들은 마치 내가 쥐고만 있는, 쓰다가 멈춘 자작곡들 같다.


 스물 한 살, 밴드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그때도 나는 글을 쓰고 싶어했고, 음악을 하고 싶어했다. 5년이 지났지만 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고, 구독자까지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고, 악기를 전혀 하지 못하던 그때에 비해 기타를 괜찮게 칠 수 있게 되었고, 반쪽짜리 자작곡이나마 가지고 있다. 옛날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보다 나아진 점들이 어떤 의미를 가질 정도의 수준이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하기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그저 적당한 필력의 글, 특출나지는 않은 연주 실력과, 그저 그런 자작곡 몇 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들이 없을 때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로 달려가는데, 내가 이루고자 했던 인생의 요소들은, 마치 가사를 붙이지 못하거나 구성을 완벽하게 만들지 못한, 그런 미완의 자작곡들처럼 우두커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곡은 완성되면 괜찮은 곡이 될까? 하는 의문의 훨씬 전에, 이 곡을 완성시키는 날이 올까? 하는 걱정이 나를 조여오고 있다.


 작곡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미완성 자작곡들에 대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런 곡들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완성될 것이라고 믿자는 것이었다. 평소에 글을 쓰는 과정을 되돌아보고 느낀 것인데, 나의 글들은 대부분 갑자기 완성되어 버리곤 한다. 처음엔 이런저런 공상들을 하고, 그걸 머리에 담아 두거나, 어딘가에 적어 둔다. 그렇게 모아둔 소재들끼리 부딪히다 보면 어떤 공통적인 주제를 형성하고, 그것이 점점 글의 모양을 갖춰 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워 보이지만 정작 글을 올리기 직전까지는 개운하지 않다. 글에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을 올리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있다가 문득, 전혀 상관없는 순간, 노래를 들으며 밤길을 걷거나, 퇴근시간이 되어 산뜻한 기분으로 회사 문을 나서거나 하는 순간이 되면, 미완성인 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무언가가 번쩍 생각이 나게 되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애매해서 나를 끙끙 앓게 만들던 글은 마침내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이 된다. 사소한 한 두 줄의 문장이 생각남으로 인해서.


 그래서, 완성되지 않은 곡들도 한 두 조각의 아이디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날 기분좋게 길을 거닐다가,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에 미완성이던 자작곡이 완성된 하나의 곡이 되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더해 방학때 애매하게 이루지 못한 목표들 역시 더 여유롭게 생각하기로 했다. 방학이 끝나는 순간 이루지 못한 목표들에 대한 노력들이 갑자기 증발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그런 목표들을 놓아버리고 싶어하는 비관적인 마음이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헛되게 하는 길일 테니.


 내 마음 속 조각나 있던 긍정적인 마음도, 이 글을 퇴고하는 동안 의미있는 수준으로, 당장 내일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해졌다. 완성하지 못한 자작곡들도, 이루지 못한 목표들도, 잘 풀리지 않는 삶도 언젠간 이렇게 온전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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