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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Jan 29. 2017

옆구리를 찔려 거리로 나온 사람들

"포켓몬 고"와 "넛지"

 문화콘텐츠 수업 시간에, 지하철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에스컬레이터 대신 그 옆에 있는 계단을 사용하게끔 유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수업에서 제시된 방법은 꽤 재미있는 것이었다. 계단의 각 단에 센서를 설치하고, 그것들을 밟으면 LED 조명에 불이 들어오는 동시에 피아노 건반처럼 소리가 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영상에서 사람들은 “피아노 계단”에 흥미를 느끼며 에스컬레이터 대신 그 쪽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영상을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대역을 고용해서 계단을 이용하는 모습을 촬영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영상 속의 리액션들이 마냥 조작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은 형태의 계단을 창동역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귀찮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 나마저도, 피아노 계단을 보니 괜히 이용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괜히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했었던 기억이 난다.

 계단에 관련된 다른 이야기가 있다. 원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집과 다른 방향의 출구를 사용할 정도로 계단을 싫어하던 내가, 요새는 가급적 계단을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유는 약간 엉뚱하다. 티비에서 하루 운동량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출근길에 이용하는 계단을 두 칸씩 한번에 올라가는 것만 꾸준히 실천해도, 하체 건강에 충분한 도움이 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지독한 집돌이 체질이라 운동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일상에서 운동량을 채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애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위의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계단을 이용하게 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에스컬레이터 앞에 계단 이용을 권장한다고 써 붙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계단을 피아노로 만든다거나, 계단을 이용하는 것에 이야기를 덧붙인다거나 해서 개인들을 계단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 것이다. 강압하지 않고 부드럽게 어떠한 선택으로 유도하는 것을 "넛지"라고 한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위의 수단들은 일종의 "넛지"인 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억지로 읽게 했던 책 중 비슷한 내용을 가진 책이 있었던 것 같아서 찾아보았다. "넛지"

 요새 "포켓몬 GO"가 엄청나게 유행이라는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일하는 곳에서 젊은 직원들은 대부분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근길에 어디서 무슨 포켓몬을 잡았느니, 어디에서 포켓몬이 많이 나오니까 같이 산책을 가자느니 하는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포켓몬 GO"를 더 잘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던 것을 GPS 신호를 잡으면서 출근할 수 있는 버스로 바꿔서 출근하거나, 군자역에서 내려도 출근할 수 있는 곳을 일부러 포켓몬이 많이 나오는 세종대학교를 관통하기 위해 어린이대공원역에서 내려서 출근하거나 하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포켓몬 GO" 때문에 삶의 패턴이 바뀐 것이다.

 사는 곳과 3분 거리인 어린이대공원에 나가 보면 길에 가득한 사람들이 핸드폰을 손에 쥐고 걷고 있거나, 제자리에 멈춰서서 화면을 터치하고 있거나 - 포켓볼을 던지는 것이다 - 아니면 특정한 희귀한 포켓몬의 이름을 외치며 한 곳으로 달려가거나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은 심지어 공원 폐장 시간인 10시 직전까지 계속된다. 평소라면 8시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보이다가 30분정도 지나면 한산해질 텐데, 게다가 날씨는 겨울 추위의 절정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와있는 것은 꽤 특이한 광경인 셈이다.

 꼭 "포켓몬 GO" 때문에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이대공원의 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포켓몬 GO"를 하러 온 것이라고 확신한 이유가 있다. 왼쪽 그림 지도 상의 파란색이며 보라색의 기둥 같은 것은 "포켓스톱"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 기둥에서 몬스터볼 같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또 그 기둥 근처를 지나다 보면 포켓몬을 더 높은 확률로 발견할수 있는데, 사람들은 어린이대공원의 넓은 산책로 중 저 "포켓스톱" 근처에만 와글와글했다.

 밖에 나갈지 말지, 밖에 나간다면 어디로 향해야 할지, "포켓몬 GO"는 사람들의 하루 일과의 큰 부분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내 주변의 장소들은 특별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포켓스톱이나 포켓몬의 분포를 배치한 것은 아니겠지만, 만약 어떤 의도를 가진다면, 충분히 사람들을 의도한 곳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포켓몬을 잡기 위해 속초행 버스를 타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직접적인 메세지, 강압적인 룰, 위계에서 오는 관습, 그런 것들은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들이고, 예부터 지금까지 흔히 사용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런 딱딱한 수단과 달리, "피아노 계단"이나 "포켓몬 GO" 같은,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 대중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 "넛지" 역시 존재한다. 간접적인 수단은 직접적인 수단들과 달리 대상에게 통제되고 있다는 불쾌감을 전혀 주지 않은 채로, 대상을 효과적으로 어떤 결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포켓몬 GO"를 즐기려고 출근 수단이나 루트를 바꾸거나, 거리에 나와 시린 손으로 핸드폰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늦게 일어나려고 밍기적대던 전과는 달리, 괜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다가 출근하는 내 자신을 보며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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