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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Jan 28. 2017

나에게만 특별한 날

스물 여섯번째 생일을 보내며

 어렸을 때 부모님께 생일 파티를 해 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깔아 두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하고, 그런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제대로 축하받지 못했던 생일날은 유독 우울해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잘 하며 살았어야 했나, 인생의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다소 진지하고 찌질한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생일 축하를 덜 받았을 뿐인데! 그런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몇몇 친구의 이야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는 생일날 조용히 넘어가는 나날이 쌓여가다 보니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선물은 가족끼리도 챙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는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한 마디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난 생일 축하를 못 받는 편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항상 생일날이면 누군가와 있었던 것 같다. 가족끼리 생일선물을 챙기는것이 하나의 관습처럼 되어서 물질적으로도 꽤 풍족한 날들로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군대에서 이병 시절에 맞은 생일에도 하늘같은 왕고에게 PX에서 가장 비싼 필라델피아 치즈케익을 선물받았었다. 월급이 10만원인데 2만원짜리 케익이었으니, 사회인 월급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게 얻어먹은 셈이다. 전역 후 생일을 맞이한 곳은 아르바이트 하는 곳이었는데, 거기서도 업무시간 중 깜짝 생일 파티를 받은 적이 있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복도에서 초를 꽂은 생일 케익이 들어왔었다. 돌아보니 감동적인 일이 참 많았던 것 같다. 평균을 한참 웃도는 생일들을 보낸 것 같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생일날이 구정 전날이었다. 구정때 집에 가지 않아서 혼자 생일을 보내게 될 판이었다. 게다가 연휴 전날이라고 직장에서는 오전 단축근무를 실시했다. 점심 시간 직전에 떨어진 지시여서 그런지, 다들 황급히 집에 갈 준비를 했고, 그러는 통에 내 생일은 까맣게 잊혀졌다. 다행이 그날 저녁 또래 직원들끼리 회식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것을 점심으로 옮겼고, 소고기를 눈앞에 둔 와중에 내 생일이 간략하게 축하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사내 메신저를 로그인하는 순간에 뜬 "~님의 생일입니다. 축하해 주세요!" 메세지를 보고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거긴 하겠지만, 그래도 다분히 개인적인 기념일을 남이 축하해주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통에 음료수를 사서 테이블에 나눠주었다. 사람들 속에서 고기를 마음껏 먹은, 즐거운 생일 점심 식사였다.

 언제나처럼 가족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았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생일 선물을 돈으로 하는 아름다운 풍습을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선물이란건 그 사람을 생각하며 고르는 과정부터 마음이 들어가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은 너무 성의가 없게 느껴졌다. 그런데 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돈이 편하긴 편했다. 맥북 프로를 받쳐줄 알루미늄 거치대, 그리고 맥북 프로에 연결해서 쓸 수 있는 값싼 마스터키보드를 구입했다. 아직까지는 매우 만족스럽다. 거치대 덕분에 책상은 한층 넓어졌고, 새로 산 키보드로는 야매로나마 건반 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에게 주는 선물"같은 모양새가 되 버렸지만, 그래도 이거야말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생일 하루를 잔잔하게 따라가며 글을 써 가면서, 그것에 대한 내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생일을 제대로 챙김받지 못하면 정말로 우울한 기분이 되어 버리곤 했었는데, 이제는 혼자서 챙겨도 딱히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앞으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왁자지껄한 생일은 보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한층 가라앉았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내가 태어난 날이니까, 나에게 소중한 날이기 때문에 혼자 기념하는 태도도 멋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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