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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Mar 18. 2017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쓴 글

지금까지의 브런치를 돌아보며, 그리고 앞을 바라보며

 2016년 5월 18일,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날이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한 현재 내 브런치에 올라와있는 글은 60편이다. 1주일에 한 편을 올린 정도의 페이스는 되는 셈이다. 항상 글을 꾸준히 쓰지 못하는 것 같아 자책했는데, 막상 숫자를 마주하니 그렇게 게으르게 올린 편은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글을 올린 동안 구독자는 156명이 되었고, 총 조회수는 331,801명이 되었다. 내게는 너무나 과분한, 큰 숫자들이다.


 처음에 브런치 작가 지원서에 무엇을 썼었는지는 흐릿하게 기억이 난다. 음악과 수필을 엮은 글, 그리고 한참 하고있던 밴드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글을 올리고 싶다고 썼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달 뒤 밴드를 탈퇴할거라고는 그땐 결코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밴드 이야기 대신 혼자 음악을 하며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쓰면서 지키지 못한 계획은 어느 정도 만회한 것 같다. 음악을 곁들인 글은 처음 계획대로 많이 올렸다. 처음엔 음악을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음악을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과 대화로만 나누던 생각들을 글로 옮겨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런데 조회수가 올라가는걸 보면서, 이번 글도 카카오톡 채널에 올라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괜히 하면서, 어떤 식으로 쓰면 더 잘 노출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글 자체가 아니라, 부수적인 것을 신경쓰게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적게 된 계기가 위의 생각이기도 하다. 나는 내 글을 쓰고있는게 맞는걸까? 아니면 많이 읽히기 위한 글을 쓰게 되버린 걸까?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 의미가 있을까? 지금 글을 쓰면서뿐만 아니라, 옛날에 밴드를 할 때도 항상 했던 고민거리였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공연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세션을 맡고 있던 친구들은 하고 싶은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공연은 보는 사람 뿐 아니라 하는 사람도 즐거워야 한다는 의도에서였다. 이 논쟁의 양자 간에는 사소한 차이가 존재했다. 내 취향이 친구들의 것보다 조금 더 대중적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쨌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달랐다. "연주 잘 하네." 이런 생각은 들 수 있겠지만, 그런 류의 곡을 들으려고 멈춰서는 사람은 극히 드물 그런 곡들을 하고 싶어했었다.

 정리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많이 봐 주는 것, 그 사이에서 고민한 것은 내게는 꽤 오래된, 그리고 끈질기게 고민해온 주제였고, 그런 생각을 계속 붙들고 있게 한 것 중에는 대중적인 음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나, 그리고 화려한 연주를 가진, 비주류 음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다른 멤버들 사이의 갈등 때문이 한 몫 했다, 그런 이야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나 메탈과 펑크 사운드를 강조하던 내 친구들의 밴드가 나의 탈퇴 이후로 내놓은 자작곡들은 하나같이 대중적인 색채의 모던락이었다. 대중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건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이야기가 많이 샌 것 같다. 다시 원래 글을 쓰려고 했던 의도 쪽으로 중심을 옮겨서, 어떤 글을 쓸 때 성취를 느끼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걸 되짚어가다 보면 내가 정말 쓰고싶어하는 글에 대해 특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멋진 문장을 썼을 때 기쁘다. 특히 아름다운 묘사라던가, 의식의 흐름처럼 서술을 할 때, 그런걸 만들어냈을 때 기쁘다. 그리고 그 문장으로부터 고조된 분위기가, 글 전체에 녹아들 때 정말 기쁘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고 정말 나답다고 말해줄 때 기쁘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묘사, 그리고 의식의 흐름, 두가지가 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설정을 짜고 장편을 구성할만큼 본격적으로 뭘 하는것에는 부담을 느껴서, 장편보다는 단편이 편하다. 수필 역시 좋아한다. 솔직하다는 평가를 글을 쓸때나 말을 할 때 뿐만 아니라, 단순히 일상생활을 할 때도 듣곤 한다. 솔직하다는 표현은 장단점이 있는 표현이라는것은 알지만, 나는 솔직하다는 표현을 굉장히 좋아한다. 확실히 나다운 구석이 있는 평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필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필에 꼭 필요한 요소가 "솔직함" 이기 때문이다.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을 좋아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래서 수필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묘사라던지 솔직함 같은 속성들은 측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글에 녹여내고 있는지 측정할 방법은 없다. 반면 조회수, 팔로워, 이런 것들은 다르다. 정확한 수치가 제시가 된다. 그래서 문체라던지, 정말 진심을 담아 쓰는가 하는 것보다, 정확한 숫자가 찍히고, 알람이 울리고 하는 조회수, 팔로워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내 글을 읽으러 들어온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내 글을 읽고싶어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수치에 신경쓰느라 위에서 말했던 보이지 않는, 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에 소홀하게 되어서, 결국은 지금까지 독자들을 만들었던 그런 수준의 글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이 글쓰기를 잠시 멈춘 이유이다.

 지금처럼 음악에 관한 글은 계속 올리고 싶다.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남들에게 음악을 추천해주는 것, 거기에 글을 곁들이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대신에 노출이 덜 되니까 소홀했었던 수필, 그리고 지금까지 한 편도 올리지 않았던 소설 같은것에도 신경을 더 쓰고 싶다. 어느 페이지의 메인에 걸릴 수 있는 글은 중요하다. 그런 글을 통해 사람들을 내 브런치로 들어오게 할 수 있고, 그 중에 구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내 글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이 글은 글쓴이를 많이 닮아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목표가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61번째 글로 나를 되돌아봤다. 62번째부터는, 조금 더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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