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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Feb 25. 2017

모든 것들은 바래기 마련

바래버린 나의 세번째 겨울방학 끝에서

 내 친동생의 취미는 수집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같이 레고를 가지고 놀다가, 크면서 레고에 흥미가 떨어진 나는 네 것 내 것 티격태격하던 기사단이며 건물 블록이며 하는 것들을 동생에게 모조리 주었다. 그 때부터인가, 동생의 수집 취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마트 코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사더니, 나중에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 나아가서 물 건너 해외 사이트까지 뒤져가며 희귀한 레고를 모으는데 용돈의 대부분을 썼다. 그렇게 희귀한 레고 상자가 방에 쌓여가더니, 어느 순간 동생은 레고로부터 졸업을 하고, 이제는 피규어를 모으는데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동생 방의 피규어 상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오기 위함이다. 동생 방의 책꽂이에는 피규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샀을 때 박스에 담겨있는 그 상태로 진열되어 있었다. 피규어는 꺼내서 책상에 진열해놓거나 만지거나 하지 않으면 의미가 있냐는 나의 물음에, 저렇게 해놓지 않으면 닳거나 바래 버린다는 동생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것이 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시간을 더 뒤로 돌려, 지브리 미술관에 갔던 순간의 나를 회상한다. 미로처럼 된 미술관의 내부를 도느라 발바닥이 살짝 당겨올 때 쯤, 기념품 샵에 도착했다. 4층짜리 건물을 터질 듯이 채울 만큼의 컨텐츠를 가진 지브리 답게, 기념품 샵의 물건들도 다채로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기념품들에 붙은 가격표는, 내 선택지를 다채롭지 못하게 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500엔 정도 하는, 자석이 붙어 있는 작은 토토로 인형을 하나 샀다. 냉장고에나 붙여 둬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집에 도착하고, 캐리어에서 기념품들을 꺼내어 만져보며 여행을 추억하는 시간이 끝난 뒤, 이것들을 어떻게 두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열쇠고리, 클리어 파일, 신사에서 산 작은 고양이 조각. 고양이 조각은 꺼내 두었는데, 열쇠고리와 클리어 파일은 포장을 뜯자니 괜히 빛만 바랠 것 같아 포장에 담긴 채로 방 곳곳에 배치하기로 정했다.

 그런 이유로, 위 사진처럼 나의 아기 토토로 인형은, 지브리 미술관에서 산 그 순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냉장고에 붙어있게 되었다.


 모든 것들은 결국은 바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기념품이 조금씩 바래져 갈 때마다, 나의 여행 추억들도 야금야금 바래져 가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던 나의 세번째 겨울 방학도 바래고 바래서 끝자락에 와 있고, 나의 젊은 시절도 조금씩 바래져 가고.

 문득 비닐 포장을 뒤집어쓴 토토로 인형이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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