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마음껏 경험하기, 모닝과 가까워지기
내 세상의 시계는 언제나 느리다. 정리해야 할 것들을 잔뜩 쌓아놓아 항상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기분, 지금의 내가 그렇다. 온몸이 땀범벅이다. 아침 일찍 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수박 한 덩이에 감자며, 과자, 야채까지 이것저것 넣었더니 제법 무겁다. 지하 주차장 대신 집 앞에 차를 대기로 했다. 막상 주차하려는 순간 안 되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포기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가려는데 커다란 SUV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살짝 돌아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다른 차를 흠집 낼 것만 같다. 내 능력 밖이다. 꼼짝 못 할 위기 상황이다.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싶어진다. 청소하던 아주머니가 손짓하며 주차할 곳을 알려줬지만 내겐 먼 나라 얘기다. 겨우 차를 몰아 위기를 벗어났다. 사람들에겐 흔한 초보운전자의 에피소드지만 내겐 감추고 싶고, 피하고 싶은 나만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난 초보 아닌 초보운전자다. 운전대를 잡은 지 4년째로 접어든다. 큰애가 주말에 성당에서 열리는 첫영성체 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시작된 운전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두 아이를 데리고 성당으로 가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가끔 우리를 안타깝게 보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좌불안석이었다. 절실함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운전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이겨내고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 일주일이면 끝내는 운전 연수를 열흘이나 받았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있죠?”
운전 연습을 도와주는 강사분이 연수를 마치던 날 툭 건넸다. 이 말의 속뜻은 평균과는 거리가 먼 내 운전실력을 돌려 말한 듯싶다.
“운전을 잘하는 날이 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만큼 두려울 게 없을 거 같아.”
남편에게 종종 이렇게 말할 만큼 절박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고민하고 지도를 보고 망설이다 결국 주저앉는 일이 다반사였다. 비슷한 시기에 운전을 시작한 동네 언니는 이제 다른 지방까지 쌩쌩 질주한다. 위층에 사는 동갑내기 엄마 역시 나보다 늦었지만 초보 딱지를 뗀 지 오래다. 마음만 급할 뿐 나는 멈췄다.
아직도 끝내지 못한 숙제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묵혀 놓게 된다. 마음속 깊은 곳에 보자기로 꽁꽁 싸매어 놓았다. 이동의 자유로움은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성실’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력형인 내게 운전은 예외다. 처음에는 주차하는 일이 어려워 소위 주차공식이라는 걸 메모해서 달달 외웠다. 애들이 학교 간 시간에는 인터넷에서 관련 동영상을 틀어놓고 공부했다. 그러고 보면 참 웃긴 일이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해야 할 일을 책상에서 하니 말이다. 도전하지 못하는 나를 위한 위안이었다. 이렇게 공부 아닌 공부를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는 듯 잠깐의 좋은 기운이 흘렀다. 다이어리에도 운전한 날을 체크 하면서 지금보다 더 좋아지리라 나를 채찍질하곤 했다. 작심삼일이었다.
첫마음이 오래 가기 그리도 힘들었을까. 큰맘 먹고 마련한 애마 모닝은 주차장에서 매일 잠을 자고 있다. 어쩌다 동네 마트를 가거나 소소한 일 보기가 전부다. 차가 있음에도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간다. 사람들은 당연히 차를 몰고 다녀왔으리라 짐작하며 얘기를 건넬 때 부끄럽고 숨고 싶어진다. 하고 싶고 해야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일이다.
“차를 몰고 다녀요. 차가 있는데 왜 있는데 걸어 다니고 버스를 타요. 자꾸 운전해야 실력이 늘지 그러면 정말 운전 못 해요.”
“알아요, 아는데 그게….”
얼버무리다 순간을 넘기기 일쑤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시간이 흐른 지금, 초월했나 하고 생각해보면 맞닥뜨리기 싫은 내 마음을 만난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나를 붙잡아 놓아주기를 거부한다. 내가 그 속에서 나오기를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지난겨울 세탁소를 다녀오는 길에 급히 차선을 바꾸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집으로 천천히 운전하는데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를 세웠다. 시내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내게 화를 퍼부었다. 내가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뻔했다며 흥분한 상태로 불편한 감정을 쏟아냈다.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일뿐이었다. 집으로 와서 한참을 울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자책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운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은데 내게는 에베레스트산처럼 높게 느껴졌다.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벼와 짙어가는 녹색 싱그러움을 느끼고 싶다. 마음과 같지 않은 자신을 탓한다. 그래도 한가지를 배웠다. 누구에게나 쉬운 일도 다른 사람에겐 가장 힘든 일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보통의 기준이라는 자를 갖다 놓고 판단하며 옳고 그름을, 잘하는 이와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정의하는 일을 주저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세상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평할까 하는 생각에 순간 멈칫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운전학원을 다녔다. 첫 시험은 떨어지고 재수 끝에 겨우 면허를 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장롱에 고이 모셔두었던 면허증을 전업주부 6년째에 꺼냈다. 그리고 여전히 넘지 못하는 벽으로 남았다. 언제쯤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는 날이 오기는 할까. 쌩쌩 차를 몰고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서 부러움의 눈빛을 보낸다. 두려움을 이기는 건 직면하는 일이라고 했다. 피하기 바빴다. 어깨에 힘을 빼고 그냥 무심코 마주해볼 생각이다. 오랫동안 나를 휘감아 엄습했던 불안과 두려움의 깊은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