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단이

우리집 초록 정원 이야기

by 오진미


“단아 잘 지내고 있니?”

내 오랜 친구에게 가장 묻고 싶은 말이다. 단이는 일 년 중 350일은 함께 하는 소중한 인연이다. 아무리 재잘거려도 투정을 부려도, 종종 관심을 꺼놓아도 불만이 없다. 추운 겨울인가 싶어 문득 보면 작은 싹을 틔워 봄을 알리고, 여름이면 초록의 무성함으로 뜨거운 일상을 식혀준다.

“집안이 여름 숲이네. 지난가을 곱게 물들었던 그 나무지. 초록잎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다.”

위층 사는 글라라 언니가 베란다를 둘러보고는 감탄한다. 바로 10여 년을 함께 한 단풍나무 ‘단이’다.

우리의 만남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 삶의 발자국과 맞닿았다. 13년 전 서울 당산동에서 살 때였다. 나는 이 친구를 봄에서 여름 고개로 넘어갈 무렵 하늘을 가리는 키다리 나무 몇 그루와 이제 막 커가는 꼬마 나무가 어우러진 아파트 작은 숲에서 만났다. 이른 아침 이슬이 채 마르기 전 산책길, 제법 울창한 숲에서 이름 모를 작은 식물들과 만나던 때였다. 하루 이틀 그렇게 무심코 지나치던 어느 날 쪼그리고 앉아 이들의 모습을 살피다 떡잎 두 장 옷을 입은 요정이 내 눈을 반짝이게 했다. 만지기가 망설여질 만큼 별 모양 여린 잎이 아주 조그맣게 달려 있었다. 단이가 그렇게 나를 사로잡았다.

“어제는 힘이 없던데 밤새 잘 지냈니?”

“비가 오고 바람 불어도 씩씩하게 커가는 거야!”

이런 내 바람을 담아 단단하고 꿋꿋이 자라라는 의미로 ‘단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이름처럼 내 곁에서 오랫동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무렵 난 삶에서 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워킹맘으로 4살 난 딸아이를 키우며 집과 회사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다. 회사에서는 성실함을 무기 삼아 언제나 열심히 일했다. 지각 한 번 하지 않는 모범 사원으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집에서는 육아에 지쳐있는 엄마였다. 양어깨에 짊어진 엄마라는 존재의 짐은 무겁기만 했다. 그러던 중 과부하가 걸려 배터리가 터져버리듯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어! 나는 가만히 누워있는데 왜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거지?”

어느날 아침잠이 덜 깨어 뒤척이고 있는 동생을 불렀다.

“내가 너무 이상해. 어지러워서 일어날 수가 없어”

내게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혼자 일어나 앉기도 힘들었고 누워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동네병원에서 대학병원까지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한의원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해 순화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쉬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는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망설임 없이 사표를 썼다. 이때 삶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는 지혜를 몸으로 배웠다. 아이가 엄마를 불러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력함과 절박함이 결단을 쉽게 했다. 법륜스님이 어떤 일이든지 100퍼센트 좋거나 나쁜 일은 없다며 상황을 잘 살피는 지혜를 강조했다. 이런 나를 두고 이르는 말 같다. 건강한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 일 대신 휴식을 선택한 후 아침 산책은 중요한 치료이면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매일 만나던 단이는 슬슬 아주 가까운 곳에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숲 주변에는 어린 단이 친구들이 많았기에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무리는 아니었다. 고이 모셔와 토분에 심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어 내 삶 안으로 훅 들어왔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삶의 지혜를 얻는 과정과 닮았다. 단이는 서울에서 광주로 새 둥지를 틀었던 2009년 한여름, 답답한 이삿짐 속에서 잘 견디어 줬다. 베란다라는 좁은 공간에서 힘들 법도 한데 소리 없이 커 간다. 3센티미터에 불과하던 키는 이제 나와 맞먹을 만큼 자라서 어른이 다 됐다. 어느 겨울에는 너무 빨리 잎이 떨어져 죽은 줄 알았는데 추위가 한풀 꺾이고 봄을 생각할 무렵 여린 작은 잎이 올라왔다. 단이는 태양이 활활 타오르는 여름이 힘을 못 쓸 정도로 튼튼했고,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에도 당당히 자리를 지켰다.

“내가 그동안 챙겨주지 못해서 힘들었겠다. 잘 지내줘서 고마워.”

단이에게 이렇게 나지막이 말을 건네며 마음을 전하고 나면 한결 편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사람들은 관계를 맺으며 무엇을 내어주고 은근히 받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을 다치고 만남을 어려워한다. 단이는 존재 자체로 베푸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한 법이다. 살아가는 동안 서두르지 말고 네 속도로 살아라.”

친정엄마가 늘 강조하던 말이다. 모든 일의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기에 일희일비 말라는 옛말이다. 단이 역시 내게 이런 삶의 태도를 전해준다.

단이는 30대 초반 위기의 순간을 함께 해 주었다. 40대의 깊은 터널을 터벅터벅 가는 요즘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단아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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