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바라보고 기다리기

우리집 초록 정원 이야기

by 오진미


4년 전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외출했다 집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중 아파트 1층 꼬마 화단에 로즈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도 심하게 상처 입은 모습이었다. 가지는 꺾여있었고 다시 살아나기 힘들어 보였다. 왠지 마음이 쓰였지만 추운 날씨 탓에 집으로 올라갔다.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로즈마리는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가만히 놓아두면 죽을 것 같았다. 얼지 않은 초록 가지를 조심스럽게 잘라 왔다. 별 기대 없이 병에 물꽂이를 했다. 부엌 한편에 놓아두었다. 가끔 무심히 지나다 싱그러운 로즈마리 향에 이끌려 이 친구를 가만 살펴보는 일이 전부였다.


시골로 출근하는 남편은 폭설에 버스를 타고 가야 할 만큼 추운 날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자연의 시계는 어김없이 흘러 가벼운 옷이 편해지는 시간, 봄이 조용히 다가왔다. 큰아이는 5학년이 됐고 막내는 병설 유치원으로 옮겼을 무렵이다. 애들이 학교로 가고 조용한 어느날 로즈마리를 살폈더니 하얀색 아기 뿌리가 보였다. 3개월 정도를 물에서 지내며 견딘 결과다. 이제는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 깜작 선물을 받은 듯 기뻤다. 시간을 벗 삼아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즈마리를 보고 있으면 우리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고 견디어 내는 일을 소리 없이 해냈다. 답답할 수 있는 집안에서 몇 달을 꼼짝 않고 생명의 열정을 불태웠으니 말이다. 시간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내었다. 오히려 외면하듯 무심했던 내 맘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잎들이 시들어가면 몇 가닥만 떼어 내고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두었다. 적당한 거리 두기가 튼튼한 뿌리를 만들었다.


두 딸을 키우며 그대로 놔두는 일이 어렵다.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일이 다반사다. 아이가 친구 사이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함께 견뎌 주기보다는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처럼 마음이 급해진다. 얼굴은 금세 근심과 불안이라는 먹구름이 덮어 버릴 정도다. 식물에게는 ‘놔두고 지켜보기’가 절로 되지만 삶에서는 언제나 정반대로 흐른다. 불안과 두려움의 근원을 찾다 보면 욕심이라는 단단한 덩어리가 있다고 누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바라는 게 없다면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이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세요. 그러면서 견디는 겁니다.”

어느 선생님이 힘들어하는 내게 했던 말이다.


로즈마리 이름을 ‘겨울 봄’이라고 지었다. 생의 끝자락 겨울에는 한 가지로 버텨내더니 봄을 맞이할 즈음에는 가지도 몇개 늘었고 제법 튼튼해졌다. 겨울 봄은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고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봄에 비로소 완전해 졌다. 살아가는 동안 어려움을 많이 당했던 탓일까. 겨울 봄은 그리 빨리 자라지 않는다. 키 크는 일이 더디고 힘들다 할 정도다. 그렇다고 멈춰있는 게 아니라서 대단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겨울 봄은 소리 없이 커 간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 화분에 흠뻑 물을 주고 나면 편안해진다. 며칠동안 무거웠던 마음을 안고 베란다를 서성이다 로즈마리에 살짝 스쳤다. 정신을 깨우는 향에 순간 행복하다. 특별한 기운을 얻는 순간이다. 겨울 봄을 내 오랜 친구로 두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무거운 마음을 이 친구에게 털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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