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섬, 그 풍경들
빗소리가 마치 계곡물 흐르듯 한다. 늦은밤부터 시작된 비는 아침에도 이어졌다. 굵은 빗줄기가 지쳐 있던 몸을 깨운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제주도는 비의 섬이다. 사계절 언제나 비와 함께 살았다. 여름은 비가 절정을 치닫는 시기다. 초등학교 무렵 아니 그 이전부터 비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비가 물폭탄처럼 쉼 없이 세상을 삼켜 버릴 듯이 쏟아지는 날이면 왠지 불안했다. 슬레이브 지붕의 옛집은 어린 마음에 튼튼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이야 이중창으로 되어 끄떡없지만 어린 시절 우리집 문은 우르릉 쾅 천둥소리에 사정없이 흔들렸다. 비바람과 함께 살아온 나무문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힘들어했다.
과수원 일에 언제나 바빴던 부모님은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보면서도 밭으로 향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폭우가 쏟아졌다. 언제나 바빴기에 비를 핑계로 집으로 돌아오기는 만무했다. 경운기 소리가 골목길 먼발치에서 들리기 전까지 얼마나 총총거렸는지 모른다. 번쩍이는 번개와 세상을 호통치는 듯한 천둥소리에 일하고 있을 부모님 생각으로 마음을 졸였다. 어느 날은 혼자 김매러 갔던 어머니는 비에 흠뻑 젖어서 돌아왔다.
“엄마 비 오는데 집으로 와야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과수원이라 나무 밑에서 일하느라 비를 덜 맞았지. 조금만 해야지 하고 정신없이 하다 보니 비가 이렇게 오는지도 몰랐다.”
그랬다. ‘조금만 더 조금만’ 하는 마음이 우리를 키웠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알아보는 게 땅이었다.
비 오는 여름날은 불편한 일상의 연속이다. 지금이야 우산, 장화 심지어 비옷까지 비를 대비한 물건들이 쏟아진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98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 제대로 된 우산이나 비옷은 참으로 귀했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어느새 어두컴컴해지며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면 집으로 가는 동안 냇가에서 멱감은 아이처럼 온몸이 홀딱 젖었다. 유일한 신발이었던 운동화는 물이 뿜어져 나올 만큼 흠뻑 젖어 다음날 학교 갈 일이 걱정이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 부뚜막에 신발을 올려놓았다. 어린 귤이 해충 피해 없이 잘 자라도록 귤을 감쌌던 종이뭉치를 창고에 서 찾아 신발에 구겨 넣는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신발은 세상의 습한 기운을 모두 빨아 들인듯하다. 어쩔 수 없이 신발을 신어 보지만 눅눅함에 속상하다. 학교에서 종일 젖은 양말을 신고 있을 생각에 우울해지는 아침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3개 마을 아이들이 모였다. 먼 곳에서 오는 아이들은 버스를 이용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걸어서 다니던 시절이라 비는 등굣길 강적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져 냇물이 불어나는 날이면 다리가 없던 때라 집으로 가는 일이 난감했다. 냇가 건너에 집이 있는 아이들은 조금 일찍 수업을 끝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비가 오면 학교 운동장은 마치 작은 개울을 연상시켰다. 물웅덩이를 지나지 않고서는 어디도 갈 수 없을 만큼 물바다가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먼 친척 언니가 빨간 장화를 물려 주었다. 비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맞지도 않는 장화를 겨우 신고 학교에 갔다. 그 순간부터 문제였다. 신발장 앞에서 몇 분을 낑낑대며 진땀을 흘린 후에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던 어린 마음이었다. 두 딸의 엄마로 지내는 요즘은 애들이 말하지 않아도 장화며 비옷을 챙겼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힘들었던 내 마음의 위로였다. 가끔 신발장에 놓인 땡땡이 모양의 다홍색 막내의 장화를 보면 아이처럼 신고 싶어진다.
장맛비가 길어지면 부엌이 난리다. 아궁이에 불 떼서 가마솥에 밥을 해 먹던 시절이라 연기가 천정에 가서 멈췄다. 검정 그을음이 한 해 두 해 쌓여 마치 페인트칠한 것처럼 천정에 붙었다.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지면 뚝뚝 검은 물이 떨어진다. 문득 부엌을 지나다 옷에 검정 물감이 떨어지듯 묻기도 한다. 주변의 습기를 빨아들인 나무는 음식을 할 때면 아무리 애를 써도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모두 엄마의 힘든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빨래가 마르지 않기에 부엌에 긴 줄을 묶어 옷을 널면 덜 마른 꿉꿉한 상태에 불 냄새가 더해졌다. 나무가 타는 장작 향과 어렵게 살았던 삶의 여정이 옷에 배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애썼구나 싶다.
한편으로 비는 섬사람들에게 생명수가 되었다. 빗물은 화산지형으로 강이 없는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비가 오면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층을 형성하고, 이것을 제주도 사람들은 농사와 생활에 고루 썼다. 가뭄일 때는 온 섬이 물 부족에 고생했다. 그러니 비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비는 또 하나의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다. 집 앞에 있는 냇가에서 동네 언니와 함께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갑자기 물이 조금씩 불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칠거 같아. 우리 빨리 나가지 않으면 물에 휩쓸리게 돼.”
두 살 위 동네 언니는 상황 파악이 빨랐다. 그날은 젖은 몸을 대충 닦고 나왔는데 바로 물이 냇가에 가득 차고 물살이 빨라지더니 순간 파도치는 바닷가를 연상시킬 만큼 새로운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갑자기 물이 불어 나는 상황을 내친다고 말하곤 했다. 내치는 날, 항상 건천이던 제주도의 냇가는 이때 그야말로 물을 만나 멋지고 신비로운 풍경을 그려낸다. 아이들은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냇가 풍경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평소에 없던 일이었기에 마을 앞 도로에서 지켜보는 일 또한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비가 멈출 줄 모르고 내리고 태풍까지 더해지면 섬 전체가 난리다. 비닐하우스는 바람에 날려 망가지고 심할 때는 과수원 귤나무가 뽑히기도 한다. 어느 해에는 초등학교까지 휴교하고 부모님 돕기에 나설 정도로 심각했다. 이럴 때 여름날 비는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고향집에서 그 비를 한껏 바라보고 싶다. 엄마와 옛 추억을 도란도란 나누고 아버지가 좋아했던 국수도 만들어 먹고 싶다. 비가 억수로 퍼부을 때는 멈추지 않을 것 같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밤을 보내고 아침이면 마법처럼 해가 떠오르니 말이다. 살아가는 동안 끝나지 않을 듯한 어려움 역시 이 같으면 좋겠다. 비 그치고 밭으로 향하는 길에 내 피부를 간질이던 풀들의 초록 싱그러움이 생각난다. 비를 보며 잊고 있던 어린 나와 지금의 나를 마주한다. 비를 맞고 푸른 빛을 내는 산수국을 사려니 숲에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