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과수원 김매기는 견딤이다

나를 키운 섬, 그 풍경들

by 오진미


여름날은 하루가 길다. 여름방학이라고 늦잠을 자는 법도 없다. 부모님은 새벽부터 과수원으로 간다.

“이슬 있고 시원할 때 일하고 올테니 동생이랑 밥 챙겨 먹어라.”

엄마는 집에서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당부하고는 골갱이를 들고 집을 나선다. 여름날 잡초는 밤이 키우나 보다. 뙤약볕에도 며칠만 게으름을 피우면 온 과수원을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어 버린다. 귤나무 사이에 돋아나는 풀들을 뽑지 않으면 땅이 기름지기 어렵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쇠비름이며 번식력이 왕성한 훼방꾼인 잡초를 없애야 한다. 여름날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어느날 엄마와 함께 김매기에 나섰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자녀 교육에 열정이 넘쳤던 아버지는 일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학교가 쉬는 방학은 그래서 일을 배우는 최적의 시간이 되었다.


“진미야 내일은 엄마랑 가서 풀 뽑아라. 일을 해 봐야 하는 거지 안해본 사람은 못해. 엄마 혼자 하니까 말동무도 하고 알았지.”

저녁을 먹는 중에 아버지가 내일 해야 할 일을 알려 준다. 마음속으로는 정말 가기 싫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밭에서 쪼그리고 앉아 일하는 게 힘들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한편으론 특별히 놀거리가 없던 때라 밭에 가서 일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란 호기심도 생긴다. 여러 궁리 끝에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낡은 옷을 입었다. 과수원에 풀과 벌레가 많아 긴소매 옷을 입으니 땀으로 온몸이 축축하다. 10여 분 거리에 밭에 도착했다. 엄마 옆에 앉아서 일을 한다.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손을 바삐 움직일 뿐이다. 벌써 저만치 가 있다. 어느새 활활 타오르는 여름 태양은 위력을 자랑한다. 흙먼지가 날리고 목도 마르다.

“엄마, 좀 쉬었다 해요. 너무 덥고 힘들다.”

“아니 얼마나 했다고 그러니. 이제부터 시작인데 조금 참고 해봐라. 일도 인내심이 필요한 거야.”

투덜대는 내게 엄마가 타이른다. 약효가 없다. 조금씩 하기 싫다는 마음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다. 점심때는 아직 멀었지만 뭔가 먹고 싶어진다. 주변을 둘러봐도 집에서 담아온 물과 도시락뿐이다. 일어나 밭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나무 앞에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다. 엄마는 벌써 내가 일한 몇 배의 속도로 움직인다. 엄마의 손을 거치면 주변이 나무와 흙으로 깔끔히 정리된다. 내가 앉았던 자리를 살펴보니 풀이 가득하다. 과수원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방망이질 한다.


“엄마 밥 먹자. 나 너무 배고파.”

“아니 지금 점심때도 아닌데 벌써 밥을 먹는다고. 좀 진득하게 앉아서 일을 해야지.”

계속 엄마를 졸랐다. 마지못해 엄마가 알았다며 점심을 꺼내놓는다. 하늘을 향해 뻗은 삼나무 그늘 아래 음식을 펼쳐 놓았다. 김치와 쌈장, 토종 오이인 물외, 삶은 계란 몇 개가 전부다. 내가 온다고 엄마가 나름 신경을 써서 갖고 왔나 보다. 점심은 순식간에 다 먹었다. 조금 쉬다 엄마가 다시 더워지면 일을 못하다며 일하러 나간다.

일하기가 너무 싫어졌다. 자꾸 짜증을 내니 엄마가 혼낸다.

“일도 안하고 그럴꺼면 집에 가서 있어라.”

엄마도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게 힘들었는지 마땅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무더운 여름날 일하고 있을 엄마가 안쓰럽다. 대충 씻고 동생과 놀고 있는데 시내로 외출했던 아버지가 오셨다.

“아니 과수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집에 있니. 지금 점심때도 지나지 않았고, 뭣 때문에 이렇게 일찍 왔는지 얘기해 봐.”

“일하다 보니 덥고 힘들어서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어요.”

아버지가 그걸 참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며 혼낸다.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오후 내내 마음이 안 좋다. 혼난 것도 그렇고 엄마의 얼굴이 자꾸 그려졌다. 오늘따라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 만큼 후텁지근하다. 30여 년 전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도 난 참고 견디는 일을 참으로 힘들어한다. 살다가 마주하는 어려움 속에서 내 마음을 돌보기가 어렵다. 이제는 엄마이고 아내로서 오롯이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됐다. 엄마는 어떻게 그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싶다.

“엄마 예상치 못한 삶의 고비를 만날 때 어떻게 지내셨어요? 굽이굽이 절절한 슬픔을 맞닥뜨릴 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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