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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11. 2020

일요일 꽈배기는 옳았다

첫 작품이 탄생하던 날


  

 무심코 툭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설탕이 기름의 고소함과 버무려져 자꾸 당기는 맛이다. 빵은 손으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지만 살짝 부담스러워지는 것. 미끈한 기름이 손가락에 묻는 게 싫어서 살짝 망설이다가도 손으로 집어야 제맛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우리식 도넛이다. TV에서 딸을 혼자 키우는 아빠의 생활을 책임지거나 달인의 경지에 이를 만큼 평생의 업이 이것을 만드는 일이다. 장날이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간식으로, 질리지 않는 맛이 있다. 꽈배기다.    


7살쯤이었다. 외가에 놀러 갔다가 외숙모가 만든 꽈배기를 처음 맛봤다. 살짝 꼬여있고 폭신한 튀김 같으면서도 빵 맛이 느껴지는 게 오랫동안 입안에서 맴돌았다. 서너 개쯤 먹었을까. 기름 냄새가 주변에 진동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입을 쩝쩝 다시기만 했다.     

 동네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빵집에서도 언제부턴가 꽈배기를 선보였다. 막걸리로 발효시킨 것으로 제법 큼직하다. 빵 사러 갈 때면 잊지 않고 챙겨 온다. 꽈배기를 떠올리면 ‘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따뜻함과 소박함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첨가하는 여러 가지 빵과 디저트에 비해 단순하다. 그럼에도 맛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손맛과 정성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꽈배기 맛집의 노하우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야말로 더 이상 열심일 수 없는 반죽 과정이 이었다.     


 매일 먹는 일을 고민한다. 가끔은 아이들과 이벤트처럼 함께 한다. 처음에는 엄마와 함께 하는 요리수업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식탁과 주방이 어질러지고 내 몫이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답답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출발은 언제나 설렌다.     


 일요일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점심 전에 찹쌀 꽈배기를 만들 거라고 선포했다. 아침을 후다닥 먹고 10시 즈음에 반죽을 준비했다. 강력분과 드라이 이스트, 소금과 설탕을 꺼냈다.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던 찹쌀가루도 오랜만에 외출했다. 노트북을 켜고 가장 쉬운 레시피를 기록한 블로그를 찬찬히 읽었다.    

 

 저울에 밀가루와 찹쌀가루의 무게를 확인한 다음 소금 설탕을 넣고 드라이이스트가 섞이지 않도록 떨어뜨려 놓았다. 미지근한 우유를 붓고 숟가락으로 대충 저었다. 이제야 가장 강력한 무기인 손을 사용할 때다. 큰아이가 나선다. 반죽이 시간이 갈수록 매끈해진다. 1시간을 발효했다. 제법 부푼 반죽을 적당량으로 나눈 다음 꽈배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반죽을 밀대로 길게 민 다음 꼬아주면 쉽다고 생각했는데 꽈배기가 어딘가 어설프다. 

“엄마 꽈배기를 예쁘게 만드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네. 근데 뭐 어때. 우리가 먹을 건데. 괜찮아.”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누며 만들다 보니 십여 개가 만들어졌다. 몇 개는 둥근 꿀 도넛으로 변신했다. 


 오목한 웍에 담긴 기름이 적당히 뜨거워지니 꽈배기를 조심해서 풍덩 빠트렸다. 조금씩 부풀더니 제법 빵빵해진다. 기름을 먹고 시간이 갈수록 노릇노릇 익어가는 게 벌써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작품이 나왔다. 흰 설탕과 호떡 잼 믹스 설탕 두 가지로 나누어 버무렸다. 다시 두어 번 튀겨내니 벌써 반죽이 동났다.  출발은 번거롭고 더디지만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린다. 남편과 아이들의 맛있다는 소리가 설거지 물소리를 뚫고 들린다. 내 일을 남겨두는 게 싫었다. 반죽 그릇을 정리하는 손이 더 바빠진다.    

 접시에 수북한 꽈배기를 보니 뿌듯하다. 두 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만들었는데 결과가 괜찮다. 앞치마에는 밀가루 반죽이 듬성듬성 묻었고 얼굴은 정신이 없다. 꽈배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적당히 달달 한 맛이 기분 좋게 한다. 얼마를 주면 금방 사 올 것을 며칠을 고민해서 만들었다. 기름을 쓰는 음식을 할 때는 남은 기름 처리 때문에 종종 주저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가 모든 것들을 덮어버린다. 아이들은 내가 만든 식탁 앞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세상 최고의 셰프가 되는 순간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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