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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06. 2020

엄마의 봄날 함께 한
고사리 맛을 알아갑니다

나를 키운 섬 그 풍경들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다.  겨울을 연상시키는 썰렁한 가을밤이다. 내일 아침거리를 고민하다 냉장고를 뒤졌다. 추석 때 냉동시켜 둔 고사리를 발견했다. 밖으로 꺼내 해동시켜 아침 식탁에 내놓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리 고사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그저 어른들이 제삿날 즐기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2~3년 전부터 고사리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추억과 함께 고사리를 먹었던 그 날의 특별함 때문이다.    


# 들판 누비며 가시덤불 헤치며 고사리 꺾던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언니와 친구들과 함께 고사리가 자라는 들판을 누볐다. 지금은 고사리 꺾는 일에도 차를 타고 다니지만 그때만 해도 튼튼한 두 다리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집에서 나와 부지런히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산길을 걸었다. 울퉁불퉁 돌멩이에 넘어지고 내리쬐는 햇볕에 힘들어도 조잘대며 고사리가 있을법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걷다 보면 드문드문 보이는 소나무와 드넓은 풀밭이 펼쳐진다. 풀 사이로 고개를 살짝 내민 어린 고사리들을 만나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몸이 빠른 언니들은 오랜 경험으로 금세 바구니를 채웠다. 마음은 급해지고 눈앞에 고사리밭이 펼쳐지는 순간마다 큰소리로 외치고 싶어 진다.

“여기 있는 것들 모두 내 거야. 아무도 건드리지 말아요.”

마음의 소리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부지런히 움직여 보지만 다른 이들을 따라가기는 역부족이다. 이때부터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는 일이 어려움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고사리 꺾으러 가는 일이 동네 아이들의 큰 행사였다. 가장 노련한 언니가 앞장서고 4~5 명의 아이들이 무리 지어 다닌다. 고사리는 시골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풍요를 주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동네 가게마다 고사리를 사들였는데 한 근은 천 원 반 근은 오백 원 정도였다. 야생의 들판에서는 꼭 눈에 띄는 실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함께 갔던 5~6학년 언니 중에서도 이런 이가 있었는데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날의 주인공이 된 언니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실력이 검증된 만큼 그를 따르는 아이들이 고사리 철 내내 줄을 설 정도였다.      


 가시덤불 깊은 곳에 고사리가 무더기로 돋아난 걸 발견한 순간에 벅찬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평소 같으면 엄두가 안 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과감해졌다. 맨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나뭇가지와 가시들을 밀쳐 가며 목적지로 향한다. 흡사 밀림의 탐험가와 맞먹는 추진력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옷은 찢어지고  손은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도 하지만 몸이 힘들수록 쌓여가는 고사리를 보는 뿌듯함에 멈추지 못한다.    

  

# 봄날 정성으로 마련한 고사리 오르던 제삿날 

제주 사람들에게 고사리는 제사를 떠올리는 음식이다. 어느 집이나 간장과 참기름만으로 양념한 담백한 고사리 나물이 항상 제사상에 올라간다. 자연의 맛을 고수하는 게 섬 음식의 근본이기도 하지만 제사라는 경건함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지금은 고사리를 장에서 사다 쓰기도 하지만 옛 어른들은 몸이 건강하다면 봄에 고사리를 마련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모셔야 할 조상이 많은 종갓집 아낙들의 봄은 밭일은 물론 고사리 때문에 쉴 틈이 없는 계절이었다.    

     

 고사리는 예를 표현하는 상징 같았다. 지금도 기억난다. 우리 집에 동네 아주머니가 놀러 와서 엄마와 나누던 얘기다.

“고사리 꺾으러 가야 하는데 과수원일에 시간이 안 나서 걱정이네.”

“제사만 아니면 고사리 없어도 되지만 봄가을에 몇 번을 지내야 하니 내일 아침 일찍 갔다 오려고요.”

30여 년 전 상황이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무릎을 수술하신 엄마는 앉고 서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님에도 봄이면 고사리 꺾으러 목장과 오름 주변을 다닌다. 추운 겨울이 다가올 무렵에 있는 아버지 제사에도 엄마의 정성이 상에 오른다. 마음으로 차린 상을 받아 들고 아버지는 엄마를 잠깐이라도 만나고 가는 것일까. 고사리 한 접시에는 아픈 이별과 그를 기리는 따뜻한 마음이 공존한다.     

# 고사리 장마 사람을 홀리다

 고사리가 한창인 3월 말 즈음에는 약속한 듯 찾아오는 특별한 손님이 있다. ‘고사리 장마’라고 부르는 안개 자욱하고 이슬비 내리는 날씨다. 고사리가 잘 자라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자연의 조화다. 습기를 적당히 머금은 대지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계절의 기운에 발맞춰 고사리의 성장을 돕는다. 적당히 야트막한 오름 곳곳과 목장 풀 사이로 통통하고 먹기 좋은 화산토에서 자라는 고사리가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마법에 홀리듯 쫓다 길을 잃기도 한다. 실종신고 접수가 고사리 철인 4~5월에 집중되는 이유다. 언제부턴가 고사리 꺾기 축제가 열릴 정도로 제주도 고사리의 명성은 자자하다.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기에 어릴 적 동무들과 누비며 꺾던 그런 맛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 끼 반찬으로 지나칠 고사리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손재주가 좋았던 외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작은 대바구니를 허리에 매고 고사리를 찾아 헤매던 초등학생 3학년이던 나를 떠올린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바다 건너 어느 봄날 엄마의 땀방울로 만들어낸 고사리 한 줌을 채 썬다. 간 돼지고기에 마늘과 간장, 매실로 양념하고 고사리와 잘 섞이도록 계란을 풀어 넣고 전을 만들었다. 식탁에 오른 고사리 전을 보고 아이들이 맛있다며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내년 봄에는 엄마와 함께 고사리를 꺾어야겠다. 안개와 적당한 비가 흩뿌리는 숲 속을 부지런히 다니며 엄마와 수다 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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