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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26. 2024

삼각밥

겨울방학 점심

조금이라도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으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에 시달린다. 행동하지 않으면서 머리로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매일 일어나지만, 매번 새로운 온도로 다가온다.     


책상에 앉거나, 동네 카페에 가거나, 도서관을 찾거나, 마음속에 상당한 목표의식을 갖고 해야 무엇이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일은 그저 심심풀이처럼 지나버리고 다시 돌아온다. 겨울은 길었다. 아이들의 방학과 더불어 내 생활도 멈춰버린 기분이다.     


가만히 누워있거나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니다. 반복적인 집안일을 한다. 설거지와 청소, 밥 하는 중간에 아이들을 향한 잔소리가 따라다닌다. 그런 과정에서 그저 나를 편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건 언제나 목에 무언가 걸려 있는 듯한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는 느낌과 비슷한 듯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컸지만, 행동은 없거나 아주 느릴 뿐이다.     


그러다 문득 작은 일이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 그것이 매일 함께 지내는 아이들에게서 나올 때 전해지는 기분은 특별하다. 점심을 만들다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가 그랬다.   

  

겨울방학 동안 밥 먹는 일은 새롭고 맛있는 것을 찾는 미식탐험대의 일상과 비슷하다. 현실은 회전초밥을 먹듯이 이미 경험한 음식들이 정렬해서 순차적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생각했지만 몇 주 전에 먹었던 혹은 지난주에 감탄했던 그 한 그릇을 마주한다.    


집에  다이소에서 사 온 삼각김밥 틀이 있던 걸 잊고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되었고 제법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틀 안에 밥과 재료를 대충 넣고 누르면 삼각형 모양이 가지런히 만들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정갈하고 꽤 괜찮은 밥을 만난다.    

삼각밥 

이것을 두세 번 만들고부터는 겉으로 보이는 모양이 밥을 향한 인상에 큰 역할을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가 이번에는 직접 점심을 만들어 먹겠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면 시간이 별로 없으니 기본 작업만 해달라고 부탁하고 갔다.     


밥을 맨 아래쪽에 넣고 그다음엔  볶은 김치와 바짝 구운 스팸, 밥 순으로 담은 다음 손에 힘을 주고 덮개를 눌러주면 끝이다. 그렇게 해서 대여섯 개를 만들어 두었다.     


이 건 밥양이 상당해서 몇 개만 먹어도 든든하다. 아이가 와서는 간장과 설탕, 맛술을 넣은 소스를 발라서 팬에 구웠다.

“엄마 난 요리하는 게 별로 힘들지 않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엄마가 하는 걸 봐서 자연스럽고 편하게 할 수 있어.”     


아이의 별나지 않은 평범한 말이 크게 들렸다. 생활 속에서 배워가는 것. 바로 이것이 그런 게 아닐까. 아이가 나를 통해서 무엇을 배웠다는 얘기를 한 적이 별로 없다. 난 아이와 주로 갈등 관계에 많이 놓인다.    

 

내 눈높이와 아이의 것이 서로 다르고 그 간격을 좁혀 가는 일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그것을 욕심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아직도 내가 젊은 열정을 가져서 그런 거라고 했다.      


아이는 그럼에도 내가 밥 하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꼈던 모양이다. 힘들어도 밥 차리는 일에는 나름 내 역할을 하려고 했다.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부지런히 만들었다. 그러면서 아이도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던 모양이다. 내 생활 속에서 무엇이라도 유익한 점을 발견하고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말하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가장 쉽다. 이것 없이도 타인에게 느끼게 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 속에서 일관된 행동으로 이어져야 가능하다. 내게 그건 밥 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토요일에는 보름이라 찰밥을 했다. 그렇게 매일 당연하게 밥을 한다. 때로는 그날의 분위기에 맞춰 색다른 음식을 내놓기도 한다. 반복되지만 멈춤 없이 계속되는 것, 아이도 그것이 주는 무게를  알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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