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음식
오랜만에 볶음국수를 만들었다. 어렴풋한 기억을 살려보면 일 년만인 듯하다. 방학이라는 말에 아쉬움이 클수록 뭔가를 더 해주고 싶다. 때때로 생각과 행동이 다르게 나가는 날이 많은 게 문제다.
점심을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냉동 새우를 꺼내 해동시키고, 쌀국수도 사 왔다. 속 배춧잎과 양파, 청양고추, 돼지고기 대패 목살, 파프리카를 준비했다. 기름에 마늘을 볶아 향을 낸 다음 고기와 새우, 채소 순으로 볶았다.
볶음국수의 하이라이트는 소스다. 그동안 내가 해 왔던 대로 마늘과 간장, 멸치액젓에 매실청, 굴 소스와 생강가루, 고춧가루와 물을 조금 넣고 만들었다. 국수와 볶아둔 재료에 소스를 더해서 익힌다. 끓는 물에 미리 삶아둔 쌀국수는 금세 소스 맛이 들었다. 집안 가득 기름과 특유의 소스 향이 채워갈 무렵이면 음식이 다 되었다. 큰 접시에 담아서 아이들과 둘러앉았다.
아이들은 수다를 떨며 열심히 즐겁게 먹었다. 내가 껍질을 벗겨 손질한 새우는 국수와 어울렸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나름의 성적표를 매긴다. 아침과 점심 사이는 그리 시간이 멀리 있지 않은데 아이들은 이때를 특별히 기다린다.
일반 국수보다는 넓고 투명한 쌀국수가 그들의 마음을 채워주었다. 그러다 문득 다가오는 건 시간에 어울리는 음식이다. 나름의 좋아하는 먹거리가 있지만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 건 적절한 시간에 먹는 일이다.
깊은 저녁에 너무 자극적이거나 달콤한 것은 먹지 않고 있음에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이른 아침부터 향이 강한 요리는 피하게 된다. 아침에는 김치와 가볍게 만든 스크램블 만으로도 충분하다. 점심에 어울리는 음식을 고민했다. 매일 먹는 것과는 조금 거리를 두면서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볶음면이 어울린다. 팬에서 볶았기에 적당히 기름기가 머물러 아침부터 쌓인 일상의 갈증 같은 걸 적당히 짠맛과 단맛이 중화시켜 준다. 이것은 빨리 후루룩 먹는 국물 음식과는 달리 여유 있게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다. 입안에서 새우의 탱글탱글함과 청양고추의 강한 매운맛에 연두색 속 배추의 달큼한 맛도 어우러진다. 국물이 없어서 재료의 맛에 가까이 다가간다.
쌀국수 볶음은 그런 메뉴였다. 이건 함께 어울려야 맛나다. 아이들이 먹는 것을 지켜보다 이렇게 같은 자리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 날이 얼마나 될까를 떠올렸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방학이 아니면 점심을 같이하기 힘들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저녁까지 급식을 먹고 주말에도 학원 가느라 틈을 내기 어렵다. 막내는 늦잠을 자는 까닭에 주말에만 가능하다. 가족과 비슷한 말인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란 의미다. 우리 식구가 한대 어우러져 밥을 먹는 건 헤아려 보니 일주일에 한두 번이다.
겨울의 끝자락 낮 한때를 위한 움직임은 지금 할 수 있는 귀한 일이었다. 이때 밥과 국이 아닌 다른 것을 식탁에 올려보는 건, 기쁨을 채워 넣는 소박하지만 중요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매일 자란다. 이미 내가 해줘야 하는 것보다 스스로 마주해야 하는 일이 더 많은 세상에 발을 들였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함께 할 때가 줄어드니 이날의 점심은 그야말로 허투루 보내기 어려웠다.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것을 위해 얼마 동안 부엌에서의 분주한 한때가 의미 있다 여기는 날이다. 의미를 찾는 건 때로는 평가의 도구로 사용될 때가 많아 피하려 한다. 다른 뜻을 잘 두려 하지 않지만 문득 이런 마음이 찾아올 땐 잔잔하게 나를 다독인다.
밥을 같이 한다고 해서 특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같이 머무는 것이야말로 소리 없는 대화다. 때로는 어제와 다른 한 그릇의 음식은 서로의 가슴을 열게 한다. 지금처럼 나를 다시 보게 될 때는 행운을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