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기대감
쑥개떡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쌀가루가 없어서 생각지도 않았다.
“믹서기로 갈아서 해봐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친구의 한마디에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쌀을 전날 밤부터 다음날 점심까지 물에 불렸다. 쌀을 만져보니 으스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많이 부드러웠다. 가루를 만드는 일이 쉬울 거라 여겼다. 소쿠리에 쌀을 붓고 물기가 빠지도록 잠시 두었다가 믹서에 담고는 버튼을 눌렀다. 단숨에 가루가 될 거라 믿었다.
아주 잠깐 모터 도는 소리가 나더니 멈췄다. 다시 강도를 높였는데 역시나 똑같다. 뭔가 이때부터 불길한 조짐이 일었다. 쌀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덜어내었다. 먼저보다는 좋아졌지만 그리 시원하지 않다. 믹서기에 붙어 있는 것을 긁어내고 모터 주변에 있는 쌀을 정리했다.
두세 번 정도를 갈았더니 조금은 쌀가루와 비슷해졌다. 나머지 것도 믹서기에 넣고는 가루를 만들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거칠다. 시작했으니 물릴 수도 없다.
해동시킨 쑥을 칼로 적당히 썰었다. 워낙 쑥이 질겨서 칼이 잘 들지 않았다.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가루에 쑥을 넣고 설탕 두 숟가락과 소금을 조금 넣은 다음 끓는 물을 붓고는 반죽했다.
쑥개떡을 좋아한다.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매력이다. 가끔 떡집에서 사 먹는데 4개 들이 한팩이 2500원. 이것을 사 오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내가 만든 맛이 궁금했다. 더불어 넉넉히 먹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반대기를 만들었다. 적당히 둥글게 만드는데 역시 쌀가루가 곱지 않으니 손바닥 안에서 머무는 감촉도 별로다. 그러면서 떡이 별로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생긴다. 그럼에도 익히면 괜찮겠지 하고 믿어보기로 했다.
찜통에 김이 올라오자 떡을 하나씩 차곡차곡 넣었다. 충분한 시간을 두기 위해 20분을 쪘다. 한 김이 나간 후에 맛을 보니 떡집의 것보다 딱딱하다. 반죽에 넣었던 물도 부족했고 물가루가 곱지 않았기에 예상했지만 역시나 그랬다.
쑥개떡은 떡집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더 맛있게 하고 싶었던 마음을 뒤로하고 대신에 들어선건 겸손과 너그러움이었다. 자신이 없거나 처음해 보는 일을 할 때도 '어떻게 되겠지'하는 막연함으로 밀어붙인다. 이것이 시작의 힘이 되기도 하지만 습관이 되면 좋은 결과물을 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준비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잘 되기를 바라는 욕심이지 않을까 싶다.
떡의 기본은 무엇보다 쌀가루다. 그것을 잘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었으니 떡이 쪄지는 동안에도 여간 마음 쓰인 게 아니다. 이미 어떤 떡이 나오리라는 걸 짐작했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떡 이름처럼 이것을 쉽게 여긴 게 아닐까? 돌아보면 개떡은 어려웠던 시절 끼니를 해결해 주었던 소중한 음식이었다.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 어머니들은 가진 것만으로도 살아가려는 삶의 노력을 떡 안에 담았다. 개떡은 그리 쉽게 볼 게 아니었다.
역시나 떡은 먹을 만했지만 딱딱했다.
“어 떡이 좀 딱딱하네.”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은 식탁 위에 놓인 개떡을 하나 들어 맛보더니 한마디 했다. 별생각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남편은 오늘도 제 스타일대로다. 처음에 떡을 만들 때만 해도 들떠있었는데 가라앉았다.
“일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 그러면서 알게 되고. 그래서 자꾸 해 봐야 해.”
엄마는 어릴 적부터 내가 뭐가 잘 안 된다고 하면 항상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말처럼 일의 결과를 놓고 보면 당연하지만 그러하다고 받아들이는 일에는 아직도 인색했다. 떡을 만드느라 신경을 썼는지 머리도 아프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음에는 쑥개떡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나름의 판단이 섰다는 것.
처음부터 차근히 준비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서 더욱 다음을 기약한다. 이번에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저 별일 하지 않아도 잘 되는 건 없다. 알면서도 종종 뜻밖의 행운을 기대한다. 그건 정말 가끔이면 족할 듯하다. 뿌린 만큼 거두어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실망할 일은 줄어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