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May 20. 2024

소풍날 김밥

당연함이 어려운 시절

“엄마 소풍 가고 싶어.”

아이가 갑자기 얘기를 꺼냈다. 

“그래 가자. 토요일에 동물원 가서 도시락 먹고 올까?

아이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코로나로 초등학교 생활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그 기간 당연히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풍은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 상황이 좋아졌지만, 도시락을 싸서 어디를 가는 일은 없었다. 아이는 마지막 초등학교 시절이 이렇게 가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열심히 김밥을 준비했다. 늘 먹던 우리 집 스타일에서 별로 달라진 건 없다. 단지 점심으로도 챙겨가야 하니 다른 때보다 양을 두 배로 늘렸다는 것. 그럼에도 도시락이란 단어에 부담이 생겼다.     


휴일이지만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재료를 하나씩 준비했다. 매일 하던 것과 달리 재료를 두 종류 추가했을 뿐인데도 손이 많이 간다. 우선 냉동 유부를 끓는 물에 데친 다음 찬물로 씻어서 기름기를 충분히 빼주었다. 양조간장과 청주, 설탕 조금과 물엿에 식초를 넣고 보글보글 끓으면 유부를 넣고 조렸다.     

소풍 김밥

다음은 오랜만에 평소엔 전혀 쓰지 않는 돼지고기도 넣기로 했다. 잡채용으로 길게 썬 등심을 마늘과 맛술, 설탕에 고기 냄새를 없애줄 다진 청양고추를 넣은 양념에 바짝 볶았다.  


여기에 지단과, 볶은 당근도 더했다. 오랜만에 햄도 구웠다. 하이라이트인 묵은지도 국물을 짜낸 다음 매실청만 놓고 볶았다. 초록으로 색깔을 내기 위해 깻잎도 씻어 두었다. 


김밥을 어림잡아 일주일에 한 번꼴로 하는 듯한데 시간은 매번 비슷하다. 익숙하지만 결코 쉽게 대할 수 없는 김밥의 매력이다.


당연히 아침밥도 김밥이었다. 평소면 자고 있을 아이도 일찍 일어났다. 소풍 가서 밥 먹겠다고 하며 준비에 나섰다. 남편도 함께 간다고 해서 장소를 바꿨다. 종종 박물관으로 나들이하는 남편이 그곳으로 가면 어떠하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전시도 볼 겸 나무가 우거진 그곳으로 정했다.     


박물관 문을 열기 전 정원에서 한참을 보냈다. 작은 숲을 이룬 그곳은 이미 완연한 여름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아이와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평소면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날따라 아이의 말이 또박또박 잘 들린다.     


가끔 지나는 시원한 바람에 마음이 가볍다. 아침을 건너뛴 아이가 밥을 먹자고 했다. 정자에 올라 준비해 간 도시락을 펼쳤다. 김밥과 마지막에 몇 개 만든 유부초밥에 참외와 키위가 전부인 단출한 점심이다. 아이는 자기 몫의 김밥을 거의 다 먹었다. 남편과 난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별 얘기하지 않아도 나무 아래여서 그런지 분위기가 참 좋다. 더불어 김밥을 잘 먹어주는 아이가 고마웠다. 내가 만든 건  잘 먹는 일이 당연하다 여기는 평소와 다른 기분이다. 아이가 먹는 모습을 이때처럼 여유 있게 바라본 적이 없는 듯했다.      


휴일을 보내며 당연하다 여기는 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느새 지난 얘기가 되어가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웃과 마주하는 일도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새 학년이 되어 한두 달을 보내다 소풍을 다녀오는 게 연례행사였는데 사라졌다. 코로나가 괜찮아졌는데도 한동안 학교에선 밖으로 나가는 일을 주저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생기는 여러 일을 두려워한 대처법 같았다.     


그러니 소풍은 그리운 것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소풍’ 대신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 이 둘을 비교하면 비슷한듯하면서도 학습이란 단어가 더해져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소풍도시락은 내게 옛이야기다. 이날에 대한 추억은 그리 없지만, 김밥 만은 초중고 어느 한 모퉁이에서 살아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분홍 소시지를 넣은 김밥으로, 고등학생 때는 자취생의 서투른 손으로 내가 김밥을 준비했다.     

 

아이와 소풍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주위에는 나무가 있고, 그 곁을 바람이 지나갔다. 햇살은 어느 때보다도 주위를 밝게 빛나게 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잠깐의 외출이었지만 아이와 밥을 함께 나누어서 따뜻하고 특별했다.


김밥에는 무어라 설명하고 묘사하지 않아도 다가오는 이야기가 있다. 김밥이라 말하는 순간 여러 가지가 지난다. 아이와 내가 소풍날 김밥으로 만났다. 김밥이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 과정의 음식이듯, 아이가 좀 큰 후에야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듣는 사람으로 이제야 조금 나아가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