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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23. 2024

새벽 5시 알타리김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일

한라봉 상자를 열었다. 박스 안 열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더니 초록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두콩과 쑥갓, 얼갈이배추가 한가득하고 바닥을 향해갈 즈음 하얀 무엇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타리였다. 꺼내도 꺼내도 나올 만큼 양이 상당했다.    

 

엄마가 몇 번이나 전화로 말했던 주인공이었다. 택배로 보내온 그것을 꺼내놓으니 스테인리스 큰 그릇이 넘칠 만큼이다. 이걸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귀찮은 것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신문지를 펼쳤다. 엄마가 한차례 시든 잎을 정리한 것 같은데 바다 건너오는 동안 시름시름 아픈 흔적이 다시 보였다.     


누렇게 바랜 잎을 떼어내고 무 끝에 아주 가는 뿌리도 잘라내었다. 알타리는 작은 무를 깨끗이 씻는 게 관건이다. 뜨개실로 짠 새 수세미를 잡고 힘을 주어 흙 묻은 자국을 지워갔다. 한 그릇 가득하고 나니 팔이 저린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또 그만큼이 남았다.     

가뜩이나 인내심이 없는 내 한계를 시험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알타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마음으로 묵묵히 했다. 다음은 절이기 과정이다. 큰 플라스틱 통에 천일염을 넣고 물을 적당히 받았다. 손으로 휘휘 저어 소금이 녹을 무렵 알타리를 담갔다. 그렇게 김치 만들기 1부가 지났다. 저녁 6시 무렵이었는데 시간이 애매하다. 10시를 훌쩍 넘겨야 김치 만드는 일이 끝날 것 같은데 잠시 망설여진다.   깊은 시간까지 부엌일을 하는 것도 싫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해법을 찾았다.

"엄마 알타리 밤새 절인채로 두어도 짜지 않고 괜찮을까? 한밤중에 김치 하기가 싫어서."

“절이는 데 물을 조금 넣어. 그럼 괜찮아.”

엄마는 너무나 단순하게 고민할 것도 없이 답했다. 짜지 않으려면 물을 더하면 되는 것을 그런 간단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다음 멸치와 디포리로 만든 육수에 배와 마늘을 간 것, 멸치액젓과 고춧가루, 매칠 청을 넣고 양념을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김치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 무렵 눈이 떠졌다.  이제 알타리김치 만들기의 종점을 향해 빨리 움직였다.


절인 알타리를 건져내어 한번 씻고는 물기를 뺀 다음 양념을 넣고 버무렸다. 절인 알타리는 부피가 많이 줄어서 그런지 금세 끝났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김치통 두 개에 가득 담겼다. 이렇게 새벽부터 김치를 담기는 난생처음이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아침 준비도 별로 할 게 없어서 일찍 끝내기로 했다.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이 일을 하는 게 낯설다. 김장 담글 때야 양이 평소의 몇 배나 되는 까닭에 미리 준비해야 해서 그러하지만, 보통의 김치는 이런 적이 없다. 김치 담기를 어떤 노동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생각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알타리가 많이 있어도 김치든 무엇으로든 음식으로 만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김치는 없으면 밥상에서 먹고 싶을 때가 있지만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먹고사는 일에 필요한 노동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멈칫했다.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씻는 일에선 허리가 아팠고, 힘을 주어서 총각무를 손질하는 게 시간이 갈수록 손에 힘이 빠져나가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런 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는 것이지만 생업에선 그렇지 않다. 힘들다고 거부할 수 없다. 그저 묵묵히 해야 할 때가 많은 게 삶이다.    

 

김치를 그리도 서두른 건 지금이 적기라는 절박함이 있었다. 내일까지 미뤄두면 지금 당장은 편하겠지만 더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채소의 상태도 별로일 게 불 보듯 뻔했다. 내 편의를 위해서 어쩌다 바삐 움직인 날이었다. 김치 담기 이벤트가 열렸던 1박 2일이었다. 꾸준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래서 가능했다.


엄마가 앞으로 얼마 동안 김치 걱정 안 하고 먹을 수 있을 거라 했다. 매일 김치만 먹고사는 것도 아니지만 준비해서 마련해 두면 얼마간은 신경 쓸 일이 없다. 지금이 힘에 부치고 평안하지 않을지라도 내일을 기대하는 것처럼.   

  

외출했다 돌아와서 김치맛이 들었는지 하나를 꺼내서 먹었다. 아직은 씁쓸함이 강하다. 절이는 과정에서 소금농도 조절에 실패했는지 싱겁다. 날을 넘겨가며 부산을 떨었지만 성적은 그저 그런 듯하다.  


“김친 좀 두면 맛 들어. 그땐 그런대로 다 먹게 되니까 맛없다고 신경 쓸 거 없다.”

살아가는 일에 의견을 구하는 위층 언닌 김치맛을 걱정하는 내게 곧잘 이런 말을 건넸다. 다른 일도 그렇게 시간이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 


알타리김치를 향해 어제저녁 꼭 해야 하는 큰일처럼 움직였고, 새벽에도 이어졌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아득한 일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어떤 일을 할 때는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덤벼야 끝이 있는 것 같다. 미루지 않으니 오늘 일이 조금 작아진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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