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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26. 2024

빵만으론 심심해서

딸기잼 만들기

빵만 있다. 담백한 맛을 좋아하지만 때때로 달콤한 무엇을 얹거나 발라먹고 싶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조금 남았던 크림치즈도 다 먹었다. 빵과 함께할 무엇이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문득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미치면 그 후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아주 잠깐 새싹 같은 작은 의지를 모른 척하거나 아니면 그 뜻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다. 이번에는 후자를 따랐다.   

  

며칠 전 농협 로컬 푸드에 잼용 딸기를 사러 갔다. 딸기가 끝물이어서 그런지 내가 찾는 건 없다. 좀 가격이 있는 딸기는 보이지만 그것으로 잼을 만들기는 아깝다. 다음날 두부를 사러 갔는데, 싱싱한 작은 꼬마 딸기가 보였다.  

    

하얀 스티로폼 작은 상자가 5300원이다. 이 정도면 가격은 적당하다. 망설임 없이 그것을 에코백에 담고 집으로 왔다. 시원한 바람에 어깨에 두른 가방에서 딸기향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감추기를 반복한다.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다.     


대충 저녁준비를 해놓고는 딸기를 씻은 다음 꼭지를 칼로 도려내었다. 그릇에 딸기가 쌓여갈수록 붉게 빛나는 색깔 속으로 빠져든다. 냄비를 꺼내어 딸기를 담고는 설탕을 적당히 넣고 약한 불에 끓이기 시작했다.   

빵과 딸기잼

잠깐 지나니 붉은 딸기 물이 가득 생겼다. 숟가락을 들어 맛을 보니 좀 시큼하다. 설탕을 조금 더했다. 아무리 잼이라 해도 단맛이 강하면 불편하다. 달콤함이 좋아서 찾는 것이지만 적당한 균형을 유지해야 마음에 든다.

     

나무 주걱으로 저었다. 어느새 딸기향이 내 앞에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탱탱하던 딸기는 점차 힘을 잃어가면서 잼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용암이 보글대듯 끈적이는 딸기 국물이 톡 톡 튀어 오른다. 찰나에 위로 솟구쳤다 사라지는 그걸 손에 데이면 너무 뜨겁다.     


딸기잼도 고열과의 전쟁에서 자신을 다 내어주어야 잼으로 불릴 수 있나 보다. 약한 불로 30분을 훌쩍 넘길 무렵부터 확연히 줄어간다. 그때 갑자기 레몬즙을 넣으면 잼 맛이 풍부해진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레몬즙을 조금 부었고, 단맛을 끌어올릴 굵은 천일염도 더했다.      

찻 숟가락을 들어 맛보니 적당한 물기와 단맛이 딱 내가 원했던 정도다.  뻑뻑한 잼은 빵에 바를 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힘들다. 과즙에 설탕이 녹아 촉촉한 묽은 스타일의 잼은 빵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잼의 단맛과 건조한 빵의 만남은 서로에게 상호보완적인 이상적인 관계다.  


잼의 온기가 적당히 사라지자 식빵에 바른 다음 반으로 접었다.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딸기잼이 은은히 다가온다. 얼마 동안 잼을 만들지 않았는데 정말 잘되었다. 늦은 오후에 마음먹은 일을 아주 빨리 해내었다. 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이날일 거라는 건 예상도 못 했다. 병을 하나 꺼내 소독해서 담았더니 잼이 꽉 찼다. 

다음날 아침밥을 바른 빵 한 조각으로 대신했다. 지난 저녁에 먹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던 터라 일어나자마자 챙겼다. 내가 맨 처음 만들었던 딸기잼은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서 마치 석고처럼 굳어버린 실패작이었다. 그다음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딸기잼만 바라보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빵을 먹는데 친구 같은 잼이 필요했다. 마트에서 사 와야지 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대신에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다급함이 있었다. 그건 필요성이었고 나름의 절박함이었다. 먹고 싶은 마음이 커갈수록 잼을 원했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시간이 당겨졌다.      

 

별로다 여기는 과일이 잼으로 탄생하는 건 변신이다. 설탕이  많이 들어가니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그것만으로 다 설명될까 싶다. 잼은 외면하던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바꿔준다. 특히  먹기 직전 맛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경험하지 못한 잼이라면 이런 감정은 절정을 달린다. 잼 바른 빵을 먹는 순간 뻔한 맛에 실망할지언정 그렇다. 


최근에는 딸기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빵과 잼은 틀에 박힌 공식 같다 여겼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거리를 두나 보니 딸기잼이 그리웠다. 필요성과 좋아하는 건 시간의 문제인 것 같다. 익숙한 것들을 멀리하게 되면 다시 찾는 날이 돌아온다. 한동안 빵을 찾는 날이면 딸기잼이 따라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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