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밥상
밥 하는 일처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없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가능한 정해진 시간을 지킨다. 그래서 습관처럼 이뤄져서 별 느낌이 없는 날이 많다.
순간마다 기분을 알아차리고 살아가는 것도 힘겹지만 별 감정 없는 것도 문제다. 그건 무뎌지거나 생기를 잃어가는 일일 수 있다. 정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일상을 흘려보낸다. 편하지만 한편으론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해서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내게 밥 하는 일은 의무감처럼 다가오다가도 때로는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그건 내 감정이 무엇인지 선명한 날이 더욱 그러하다. 남편이 회사에서 출발한다는 전화다. 그는 집에 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지 저녁을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로 퇴근 직전에 연락을 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저녁이지만 찬이 자꾸 신경 쓰인다. 그저 뻔한 것보다는 다른 걸 올리고 싶은 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들어 남편이 회사 일에 시달리는 걸 보면 안쓰럽다.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나이가 들면서는 그런 일들이 힘에 부치는 눈치다. 종종 주말에도 일 때문에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그때마다 그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갑자기 근무 상태로 변한다. 순식간에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전화를 받는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거나 상황을 찬찬히 설명하는 말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이날따라 남편의 하루가 어떠했을지 내 일처럼 다가왔다. 아이와 내가 먹었던 것으로 그의 밥상에 내놓기는 별로인 듯했다. 다른 걸 준비하기로 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다행히 돼지고기 불고깃감과 채소가 조금 있다.
망설일 것 없이 그것을 꺼냈다. 깻잎을 채 썰고 팽이버섯을 적당한 크기로 나눠두었다. 고기를 도마 위에 잘 편 다음 그것들을 넣고 돌돌 말았다. 손쉽게 볶아주면 간단하지만 이렇게 하면 고기와 채소가 함께 어울려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한 끼 먹을 만큼만 하는 것이라 금세 준비가 끝났다. 찧은 마늘과 진간장, 청양고추 다진 것과 설탕과 물을 조금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기름을 아주 조금 두른 팬에 고기를 놓고 앞뒤로 익힌 다음에야 양념을 넣고 적당히 조렸다.
모양부터 가지런한 게 평소 먹던 고기 요리와는 다른 분위기다. 돼지고기 불고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면서도 모양의 변화만으로 이전의 음식들과 구별된다. 음식에 나름 정성을 담았다.
다른 때보다 손을 더 많이 움직였나? 그럼 더 좋은 재료로 만들었나?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나?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면 이 음식이 정말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요리하는 동안 마음속으로 그런 마음이 가득했던 건 분명하다.
대부분 손이 많이 가야 정성을 들인 음식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니 평소에 만들기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 한편으론 간단한 된장국에도 마음을 담는다. 매일 하는 것에도 가족을 위하는 진심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생각이 구체화되는 날이 있다. 채소 돼지고기말이를 만든 날이 그랬다. 자동적이라고 할 만큼 매일 밥 하는 내가 이때는 다른 기분으로 밥을 차려내었다. 남편이 힘들어할 때면 십여 년 전 회사를 다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상사와 관계가 껄끄럽고 부당하다 여겨질 때는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느 때부터는 가슴에 사표를 두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남편도 종종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가족을 챙겨야 하는 가장의 무게는 선택이라는 단어가 사치라고 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정성과 마음은 한줄기다. 남편의 얼굴을 살피며 내 경험에 비춰서 그의 상황을 짐작할 뿐이다. 나이 들수록 사는 일은 문제를 마주하고 헤쳐나가는 과정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것은 간단치 않아서 큰 시험을 앞에 둔 기분일 때도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큰 장벽 앞에선 어깨가 땅으로 떨어질 만큼 힘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밥을 먹으며 잠깐의 여유로움에 숨 쉬어본다. 오랜만에 밥상에 의식적으로 진심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