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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04. 2024

폭신 빵

오랜만에 빵을 구웠다. 며칠 전에 베이글에 도전했지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그저 그랬다. 언제나처럼 아이들은 그래도 잘 먹었다. 사나흘 후에 다시 굽기에 나섰다. 유통기한이 지난 그릭요구르트가 있었는데 버리기가 아까워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신경 쓰였다. 때마침 우연히 이것을 활용해서 빵을 만드는 유튜버의 제빵 레시피를 만났다. 


그가 알려주는 것들이 까다롭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 무렵에 만들었다. 시작부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쉬어가면서 하기로 했다.     


그러니 급할 게 없다. 요구르트에 꿀과 인스턴트 드라이이스트를 넣고 잘 저었다. 얼마쯤 지나서 소금을 더하고는 마지막으로 강력분을 넣고 섞었다. 얼마간 손으로 치대고는 반죽이 두 배로 부풀만큼 기다렸다. 


보통은 한 시간 정도로 하는데 그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내 느낌에 다 되었다 여겼을 때 꺼내어 가스를 빼고는 두 덩어리로 나누었다. 그것을 긴 바게트 모양으로 만들어 두 배정도 부풀게 두었다.     

벌써 초저녁으로 달려간다. 어느 정도 부풀었다 여길 즈음 꺼내어 물을 바르고 밀가루를 뿌린 다음 빵 윗면에 대각선 모양을 내고는 굽기에 들어갔다. 190도 오븐에서 20분이 지날 무렵부터 제법 부풀어 올랐다.  

    

오랜만에 제법 모양을 갖춘 빵을 만났다. 처음에는 이번에도 별로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찾아왔다. 그것도 잠시 되는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빵을 만들었지만 잘된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식구들은 빵을 버리는 일 없이 잘 먹어주었다. 


이번에도 결과에 따라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전보다 폭신한 빵이면 기분이 잠시 좋고 빵맛이 살아날 것이다. 빨래를 널고 개키고 하면서 간간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필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빵은 다른 때보다 성공적이다. 꿀이 들어가서 그런지 부드럽고 순하다. 빵 한 조각을 맛봤다. 빵 안에는 여러 복잡한 내 마음이 담겼다. 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빵 만드는 서너 시간 동안 어떻게 움직이고 생각했는지 살폈다. 


그동안 빵을 구우면서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 제빵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으면서도 기준점은 어설프면서도 그런대로 완성도 있는 빵을 원했다.  


모자람 없이 완성된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했는데 결과가 다를 때는 속상했다. 어느 지점에서 분명 잘못된 것인 있을 터였다. 빵을 들고 동네 빵집에라고 가서 묻고 싶었다. 이때부터는 좋아서 하던 취미생활이 평가의 대상으로 바뀌고 즐거움은 줄었다. 


무엇이든 잘해야 그 속에 내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 내가 바라는 기준에 닿기 위해 애썼던 내 모습이었다. 빵이 다 구워진 모습을 상상하며 밀가루 반죽을 조몰락거리는 순간을 떠올렸다.  엄마의 품처럼 포근함이 잠깐씩 다가온다. 때로는 전에 했던 작업을 떠올리며 부족하다 여겼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 그러니 결과에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마음처럼 안될 때 다음을 약속하기보다 따뜻한 빵에 집중하는 것도 괜찮다. 오랜만에 행운 같은 푹신한 빵은 때로는 수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는 알려주었다. 그러니 그리 힘을 쓰지 않고 하고 싶을 때 해보면 그만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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