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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1. 2024

감자전 먹다 감자 생각

여름 먹거리 

감자는 여름의 중심에 있다. 요리법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가졌다. 담백하니 무엇을 더해도 무리가 없다.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성격 좋은 사람 같다. 올해는 장바구니 물가가 비상인데 감자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때는 제법 실한 감자 세 개가 든 한팩이 동네마트서 오천 원이 넘었다. 그러니 때로는 살까 말까 하고 망설여질 정도다. 그럼에도 쓰임새가 다양하니 떨어질 즈음에는 꼭 한 봉지를 들고 온다.    

 

이틀에 한번 꼴로 감잣국을 끓였다. 멸치육수를 내거나 그것도 귀찮을 땐 참치 액으로 간하고 듬성듬성 썬 감자를 넣는다. 국이 다되어갈 즈음에 양파와 들깻가루를 뿌리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 고소한 감자에 적당한 부드러움으로 씹히는 양파 맛은 그 자체가 위로다.     


그것마저 지겨울 땐 감자전을 부친다. 다른 것에 비해 살짝 손이 가지만 간단한 음식이다. 감자 두세 개를 씻고 껍질을 벗긴 다음 강판에 갈아둔다. 여기에 양파도 함께다. 이것에 부침가루 서너 숟가락과 달걀 하나를 넣고 잘 섞어서 기름에 지져낸다. 양파 향이 함께해서 부쳐내었었을 때 맛이 깊다.   

비 그친 저녁 감자전 

처음 맛을 끝까지 이어가려면 청양고추 하나를 다져서 넣으면 느끼한 맛이 사라져 깔끔하다. 토요일 오후는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날이 우중충하다. 간단하게 먹고 싶지만 다른 이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아이가 아침에 저녁에 감자전을 먹고 싶다고 했다. 피곤이 밀려와 잠깐 누웠는데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길 만큼 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간다. 아이 말이 생각나 후다닥 준비했다.   

   

김치와 멸치볶음뿐인 밥상에 감자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둥근 감자전에 남편과 아이들의 손이 쉼 없이 오간다. 감자전 석 장으로 후다닥 저녁이 끝났다. 이런 날은 정말 감자에 고맙다. 


대충이어도 감자가 맛을 보장해 주었다. 감자는 별 고민 없이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여름철 마법의 음식 재료다. 뭘 먹어야 할지 몰라 망설일 때나, 정말 먹을 게 없을 때 이것을 익혀서 간장이나 고추장 등 원하는 양념을 넣고 보글보글 조려주면 보통 이상이다.    


감자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지금까지 감자를 싫어하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어릴 적 외국 영화에서 기근이 한창이던 시절에 감자 몇 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감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감자만 있으면 우리 집 식탁은 걱정이 없겠다.”

“감자가 구황작물이잖아.”

설거지를 끝내고 감자에 관한 생각이 미치자 지나는 내 말에 남편이 답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감자는 아무리 날이 궂고 힘든 상황에도 잘 자라 밥을 대신해 주던 농작물이다. 남편과 몇 마디 주고받으며 감자를 달리 보게 되었다.


남편의 말을 곱씹어 보니 맞는 말이다. 감자가 얼마 동안 우리 집 밥상의 중심을 잡아 주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으니 말이다. 감자전은 그냥 감자로 먹는 것과는 다른 매력을 전한다. 곱게 갈아서 모양은 온데간데없지만 은은한 향이 얼마동안 머문다. 맛본 이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자기를 잃지 않는다.     

감자꽃

며칠 전 산책길에 감자밭을 만났다. 고랑 위로 초록 감자잎이 나풀대고 하얀 꽃이 수줍게 피었다. 이 꽃을 화병에 꽂을 일이 없으니 감자꽃은 소리 없이 피었나 진다. 


감자꽃 꽃말이 ‘당신을 따르겠어요’라고 한다. 감자가 어느 집 식탁에서나 제맛을 살려 함박웃음 짓게 하는 것과 닮았다. 꽃말은 자신을 내어주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감자의 쓸모와도 연결되었다. 감자전을 먹으면서 문득 감자에 이래저래 마음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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