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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3. 2024

김밥전

엄마의 향기

지난 저녁에 김밥을 네 줄 말았다. 두 줄은 아이, 나머진 남편 몫으로 남겨 두었다. 일찍 올 것 같았던 그가 야근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녁까지 회사에서 해결한다고 하니 김밥을 그릇에 담고 냉장고에 두었다.   

  

더운 날씨는 김밥에도 치명적이다. 밥에 여러 채소가 볶은 상태로 들어가 있으니 30도에 가까운 저녁의 열기가 가만둘 리 없다. 처음으로 쑥갓을 넣었더니 짭조름한 돼지고기 고추장 볶음과 잘 어울린다. 새로운 김밥 맛을 보고 남편이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는데 아쉽다.    

 

다음날이 되어도 김밥은 남편의 몫이 되기 어려웠다. 냉장고에서 딱딱해진 김밥을 아침에 꺼내서 무언가를 하는 게 부담스럽다. 내 점심 메뉴가 정해졌다. 이것으로 전을 만들기로 했다. 아주 어릴 적 엄마가 딱 한번 해 줬던 것. 


언젠가부터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언뜻언뜻 그런 요리를 본 적이 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김밥을 적당한 두께로 썰고 풀어놓은 달걀 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식용유를 두른 팬에 넣고 지져내면 된다.     


단지 너무 세지 않은 약한 불로 천천히 시간을 두어야 하는 것만 잊지 말아야 한다. 달걀 물을 만난 김밥이 뜨거운 기름에서 촉촉하게 변하는 과정을 기다려야 한다. 앞뒤로 그렇게 지져내면 김밥 전이 완성이다.     


아침에 방송한 시사프로그램을 유튜브로 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어제저녁에 만들었던 그 맛을 일정 부분 가지면서도 색다르다. 기름을 만났으니 당연하다. 감칠맛이 살아나면서 익숙한 김밥에 자꾸 손이 간다.   

김밥전

엄마의 김밥전을 만나건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침에 소풍 가는 이가 있어 김밥을 만들었는데 오후 무렵이 되니 딱딱해졌다. 먹고 싶은데 망설이는 나를 보고 엄마가 얼른 김밥 전을 만들었다.    

엄마는 다시 일하러 가야 했기에 여유가 없던 모양이다.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던 전을 맛보고 나서는 살짝 실망했다. 바쁜 엄마는 밥에 스민 달걀 물이 익기까지 기다리기가 쉽지 않았고, 비릿한 달걀 맛은 전의 제맛을 살리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맛있다고 얘기했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첫인상이 그러니 그 후로 이 음식을 그리 떠올리지 않았다. 한참 어른이 돼서 사람들이 이걸 요리하는 걸 보고 엄마의 지혜로움에 놀랐다. 어찌 보면 앞서간 김밥 살리기 요리였다. 


내 음식의 대부분은 엄마에게서 왔다. 밭일에 지쳐있으면서도 새로운 걸 해서 아이에게 전하는 엄마의 적극성이 한데 모이는 곳이 엄마표 밥상이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데 뭘.”

바쁜 와중에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을 때면 엄마는 늘 이렇게 답했다. 김밥전을 먹으며 그때가 떠오른다. 새로운 음식에 마음이 두근거리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을 경험한 후에는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기억 속에 있던 음식들은 오랜 시간과 그것을 만든 사람, 지금의 나로 긴 인연을 이어왔다. 김밥 전도 그런 것 중에 하나다. 


아직도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때도 많다. 내가 바라는 것과 엄마의 반응이 서로 조화롭지 못할 때는 헛헛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일생을 내 삶이라고 가정해 보면  다시 보인다.     

 

아는 김밥이지만 새롭게 보일 만큼 은은한 갈색빛이 도는 김밥전이다. 엄마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이 내게는 있는 까닭이다. 더운 바람이 식탁과 거실 사이를 오가는 점심에 김밥 전을 먹다 자꾸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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