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말 걸고 찾아내기
여름날 국수 한 그릇은 친구 같다. 날이 더워지니 점심으로 국수를 종종 찾는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것도 좋지만 나를 위한 국수 한 그릇은 다른 기분이다.
국수는 면준비가 처음이자 전부일 정도로 중요하다. 면을 조금 꺼내 끓는 물에 삶는다. 국수 봉지 겉면설명서 대로 몇 분을 기다리고 나서 차가운 물에 헹궈낸다. 그다음엔 집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채소 중심으로 한두 가지를 준비한다.
이 역시 물에 깨끗이 씻고 나서 채 썰어 둔다. 마지막이 양념장이다. 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만들어 둔 소스들이 있다. 대부분은 고추장 혹은 고춧가루가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것을 활용하면 별도로 크게 준비할 일이 없다.
냉장고에는 고추장과 고춧가루 진간장, 다진 마늘, 설탕, 식초, 다진 대파를 넣고 만든 냉면소스가 있다. 그것을 꺼냈다. 채소는 오이와 상추가 당첨이다. 냉장고에서 뒹굴던 김가루와 아침에 삶았던 달걀 하나도 썰어서 올렸다.
메밀면에 채소를 곁들였다. 소스를 올린 다음 참기름을 적당량 더해주었다. 지금, 이 순간 이만큼 맛있는 게 없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재료들이 서로가 어울린다.
대충 집을 치우고 나서 잠시 여유를 누려보는 그때 국수 한 그릇은 하루를 보내는 내 진심이 실렸다. 남편과 아이들은 회사와 학교로 가고 없다. 그제야 나를 바라본다.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거나 아니면 아침에 벌어진 일 때문에 기운이 빠진 채로 멍하니 앉아있을 때도 있다.
그러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나를 생각한다. 우선 “뭐 먹을까?” 하는 물음이 어디선가 나온다. 내가 내게 말을 건넨다. 떠오르는 음식이 없으면 냉장고 문을 열어 살핀다. 집에 있는 것 중에서 마음에 가는 재료를 꺼낸다.
점심을 준비하는 그때는 잠깐이지만 결코 무심하게 보내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충 먹는 일은 가능한 멀리하고 싶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조금만 더 따라가 보면 분명 원하는 걸 알게 된다. 현실적으로 지금 가능하지 않거나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 부담스러워 다른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국수를 먹으면서 내가 원하는 게 이거였구나 싶었다. 간단한 듯하면서도 여름 채소를 가볍게 먹을 수 있다. 마늘과 대파가 들어가 깊은 맛을 내는 양념은 별맛을 느끼기 어려운 초록 채소의 속살을 느끼게 한다.
국수를 먹고 나니 아침과는 달리 기운이 난다. 이날 하루의 의미를 비빔국수 한 그릇으로 찾았다.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실천한 날이다. 잠들기 전에도 점심에 먹은 국수가 생각났다.
일상을 잘 보내기 위해서 가치를 부여하고 나를 다독이려 한다. 얼마 전부터는 멀리 있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작은 것들에 눈을 돌리는 중이다. 현실에서 떠나 있지 않으며, 함께 생활하는 것들이니 또 다른 내 모습이다.
팔팔 끓는 물에 국수를 넣고 휘휘 저으며 맛있게 삶아지도록 했다. 국수 한 그릇은 여름 더위를 순간 경험하게 한다. 뜨거운 열기를 만나야 딱딱한 국수가 쫄깃한 면발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물 국수를 준비해야겠다. 20대 어느 날 서울시청 어느 한 편에서 먹었던 김치말이 국수가 오래전부터 어른거렸다. 그 맛에 맞닿을 수는 없지만, 기억을 최대한 꺼내어서 만들어야지. 벌써 군침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