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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25. 2024

당분간 감자 빵

빵 굽는 이유

하루 중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날이 있다.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바라는 것을 얻어내는 것. 아니면 가고 싶은 곳을 가볍게 떠나는 일 등이다. 불현듯 떠오르는 음식을 찾아서 맛있게 먹고 오면 그것 또한 어울린다.

  

결국은 내가 움직이는 일이다. 아무것도 안 해서 편안하다 여기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하다. 그건 사람들의 시선에선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것으로 빙그레 미소 짓는다.    

감자빵

2주 전부터 빵을 부지런히 굽고 있다. 누군가 빵을 구워달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빵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하나가 시작이고 끝이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주를 이룬 것은 감자 빵.    

 

하지 감자는 맛있다고 한다. 왜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즈음 감자에 자꾸 끌리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감자 빵은 오래전 먹어본 적이 있다. 서울의 어느 유명 제과점의 식빵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어떻게 감자가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다.  맛은 담백했다. 그 이상의 기억이 없다.   

  

그 빵에서 감자의 어떤 특징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의 감자 빵은 어떤지 유튜브를 통해 살폈다. 눈에 들어오는 건 감자를 찐 다음 우유를 넣고 블렌더로 곱게 간 것을 밀가루와 섞어 반죽하는 것.     


이것을 따라 했다. 처음에는 손에 반죽이 너무 달라붙어 불편했지만 튼튼한 비닐장갑을 끼고 치대다 보니 반죽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30분 간격으로 두 번 반죽 접어주기를 한 다음 두 배가 되는 동안 기다렸다.   

  

다시 가스를 빼고 15분의 휴지 시간을 가졌다. 다시 손을 움직여 모양을 잡고 두 배로 부풀어 오르면 구웠다. 예전과 달라진 건 정말 퐁퐁 팽창해진다는 것. 이상하리만치 반죽이 점점 몸집을 키우기 시작하면 설렘이 찾아온다.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발효가 잘되니 예민해지지 않는다. 빵은 그동안 경험했던 것에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성공적이다. 빵을 그대로 편안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서너 번을 만들었다. 감자빵은 감자가 들었지만 제 모습을 감췄다. 직접 만들었기에 빵 곳곳에 감자가 스며들었음을 느낌으로 알 뿐이다. 적당히 과하지 않은 단맛을 내는 게 감자맛이 아닐까 한다. 은은한 부드러움과 다른 맛이 끼어들 틈 없는 밀도 있는 소박한 빵맛이 특징이다.


어느 날은 녹차 식빵도 만들었다. 모두 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가끔은 잘 구워진 빵에 으쓱해지는 날이면 지나는 말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밖에 나가서 팔아도 되지 않을까?”

   

내 손안에 가득하던 그것이 커져 몇 개의 빵이 되는 과정이 매번 신기하다. 반죽을 시작해서 빵을 오븐에서 꺼내는 시간까지 평균 3시간 이상이다.      

녹차식빵

혼자 있는 집안에서 어느 순간 바빠졌다가 한참 동안 고요가 흐른다. 빵은 내가 찾는 쉼터와 비슷하다. 무언가 복잡한 날일수록 이것에 끌리고 어느새 밀가루 통 뚜껑을 열고 있다. 우유양을 살피고 살짝 데운 다음, 이스트가 잘 녹아들도록 한다. 적당히 섞인 반죽에 버터를 넣어 치대면서 손에 질척이던  밀가루 덩어리들이 서로가 맞물려 말끔해질 무렵이면 힘들다 여겼던 고민거리들이 잠시 내게서 비켜나 있다.


현실의 문제들은 그대로지만 나는 그것을 안은 채 하루를 그런대로 보낸다. 어디에도 둘 데 없어 초조한 난 빵을 만들며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반쯤 채워진 플라스틱 생수병이 출렁이듯 하던 마음이 점차 잔잔해진다.   

  

빵 만드는 일이 잦아지는 건 그만큼 심기가 편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빵에 더 가까이 다가가 알게 되는 고마운 날들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은 바라보기에 따라서 모두가 좋거나 나쁜 건 없나 보다.      

모닝빵 샌드위치

빵을 만들다 문득 몸에 염증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밀가루가 한몫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힘들면 관절이 먼저 알아차리는 내게 이게 잘하는 일인가 싶다. 그럼에도 당분간 애쓰지 않아도 반죽이 잘 부풀어 오르는 이 계절에 빵 굽기를 멀리하고 싶지는 않다. 

    

빵 하나를 다 먹기보다 절반으로 줄이는 절제를 배울 절호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오늘은 모닝빵을 만들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다된 그것으로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를 위해 샌드위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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