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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14. 2024

나만 아는 진심, 점심 냉우동

한여름 밥 준비   


준비와 즉흥곡 사이를 넘나 든다. 여름 밥상 이야기다. 아침은 그럭저럭 할 만하지만, 나머지 두 끼는 더위를 참아내는 인내심 혹은 빠른 속도로 먹을만한 것을 만들어 내는 유연성과 노련함이 필요하다.     


혼자 밥 먹는 일은 이런 일에서 예외다. 언제나 내가 먹는 밥상에 대해선 관대해지기 때문이다. 대충 먹는 일이 대부분이고 가끔 정성을 담는다. 가족이 먹는 일이면 달라진다.     


아무리 덥다 해도 저마다 제 할 일이 있다. 밖에 나가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이도 있고, 방학이라는 이름으로 집에 머무는 이도 있다. 초등생은 맘 놓고 뒹굴뒹굴하지만 입시가 다가오는 고등학생인 큰아이는 다르다. 학원을 오가고, 쉬면서도 맘 놓지 못하는 듯 불편해 보인다.      


이들을 헤아리는 게 먹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점심밥이 제일 신경이 쓰인다. 이때를 위해서 아침부터 준비에 나섰다. 애들에게 냉 우동을 해주기로 했다. 면은 미리 준비해 둔 냉동 면으로 간단히 해결 가능하지만, 그전에 꼭 필요한 과정이 있다.     


육수다. 우동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일. 냄비에 다시마와 양파, 대파, 멸치에 청양고추를 넣고 끓이다 가쓰오부시도 조금 넣었다. 한소끔 끓고 나면 간장을 넣고 마지막에 설탕을 더한다.     


이 과정이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달큼하면서도 심심하지도, 짜지도 않은 적절한 맛을 내기가 간단치 않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면 전문가의 솜씨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대부분은 중간 정도의 완성도다. 애들이 좋아하는 건 일식우동 스타일이기에 맛을 봐가면서 간을 맞췄다. 싱거우면 먹기 직전에 원하는 정도로 간장을 더한다.


뜨거운 육수는 차가운 물에 냄비를 담가 식힌 다음 유리병에 담았다. 적어도 5시간 이상은 지나야 점심때다. 그때까진 적당히 차가워질 것이고, 나머진 얼음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아침을 먹기도 전에 점심 기본준비를 마쳤다. 아직은 멀어 보이는 그때를 위해 몇 시간을 더 벌어놓았다. 여기에 내 하루가 어제보다 길어질 것 같은 여유도 찾아온다. 아이들은 이걸 알 리 만무하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나만 좋으면 되었다. 점심때가 되니 냉동 면을 뜨거운 물에 넣어 해동시킨 다음 국물을 부었다.


우동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 이럴 땐 아이들은 보통 고기 요리를 찾는다. 닭봉 구이로 정했다. 고기를 깨끗이 씻은 다음 생강가루와 굴 소스, 간장, 다진 마늘을 넣어 밑간 해둔다. 먹기 직전에 전분가루를 두세 숟가락 넣고 조물거린 다음 기름 두른 팬에 앞뒤로 구웠다.     


이때 식초를 한 숟가락 더한다. 고기에 넣고 적당히 저은 다음 뚜껑을 닫으면 옆으로 튀는 일이 없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고기 요리에 적용해 보니 맛이 살아난다.    

  

냉우동과 닭봉이 상에 올랐다. 갈색으로 곱게 구워진 고기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아이들은 신났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내 일에 정을 들였으니  만족할 따름이다. 살아가는 일에도 이처럼 준비하려고 하지만 익숙한 대로 흘러가는 게 대부분이다. 


먹는 일은 예외다. 왜 그러한지 살펴보니 매일 부엌에 머물며 무언가를 만드는 반복성이 큰 몫을 차지하는 듯하다. 처음엔 몰라도 하다 보면 나만의 습관이 생기고, 그것으로 인해 어려웠던 것들이 해결된다. 홀로 하지만 그래서 즐겁고 다시 하고픈 동력이 생긴다.


올해는 에어컨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할 만큼 펄펄 끓는 중이다. 그럼에도 매일 밥상을 차린다. 이날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돌아오는 밥때를 위해 기꺼이 움직일 때도 있다. 밥 하는 일이 귀찮은 어느 날은 간단한 시판 비빔면으로 절충한다.     


여름 밥상은 가족들이 모르는 나만의 시간이 모여 만들어질 때가 종종 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며 어제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날은 순간 행복하다. 나만 아는 진심의 시간이 쌓여가는 게 여름날 밥 먹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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