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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01. 2024

병원밥

시간을 견뎌내는 힘

매일 밥을 했다. 어제와는 다른 찬으로 식구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의 손이 그릇에 닿는 횟수가 늘어나는 걸 좋아했다. 때때로 그들의 감정을 헤아리는 특별한 메뉴를 내놓기도 했고, 가끔은 내가 그리는 새로운 음식을 올렸다. 


대부분은 별생각 없이 밥 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더운 날의 밥 준비는 더욱 그러해서 간단하게 불을 덜 쓰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런 그동안과는 달리 밥을 다르게 보는 날을 만났다. 그것도 병원이라는 반갑지 않은 공간에서였다. 남편이 갑자기 전정성신경염을 앓게 되었다. 회사에 출근했다가 너무 어지러워서 조퇴를 했고 입원했다.   

  

처음에는 그가 너무 힘들어하는 까닭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를 넘기니 조금씩 괜찮아졌다. 병원에서 삼시 세끼를 먹었다. 

“밥맛이 너무 좋아서 큰일이야.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에는 무슨 반찬이 나올지 기다려지는 걸 보면 참 이상해.”

남편이 몸이 불편한데도 밥에 이리도 진심인 자신이 낯설다 했다. 워낙 잘 먹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지금은 평소와는 분명 다른데도 말이다. 

어느 날의 병원밥

일을 못 할 정도가 되어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밥 먹는 일을 두고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자신이 이상했나 보다. 매일 다른 찬이 올랐다. 생선과 고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동서양의 스타일이 접목된 조리법이 사용되었다.     


어느 날은 아귀탕수가 어느 날은 짜장면과 냉면이 밥과 어울리게 올랐다. 간은 당연히 환자들을 위한 것이기에 강하지 않았고, 채소는 신선했다. 김치도 손수 담근다고 했다. 복도에는 붙여진 식사 안내문 중에 인공 조미료를 지양한다고 쓰여 있는 걸 보면 나름 식단에 관심을 두는 병원임은 틀림없었다.     


아주 특별히 뛰어나진 않지만 자꾸 다음을 떠올리게 하는 밥이었다.  이밥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살피니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정성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손길로 탄생한 한 그릇에 은근한 마음이 담겨 전해졌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매번 밥때마다 그런 향기가 찾아왔다.     


병원의 하루는 의사의 대면 진료와 수액을 꽂은 상태로 잠을 청하거나, 가까운 거리를 산책하는 일의 반복이다. 매일 검사와 그에 따른 수치로 몸의 회복 정도를 확인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오늘은 얼마나 좋아졌을까? 하고 부푼 희망을 갖는다. 더불어 언제 이 문을 열고 집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는다.

   

며칠 병원에 있다 보니 가장 부러운 건 퇴원하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같은 날 입원했던 어르신이 우리보다 사흘 먼저 퇴원했다. 반대편 침대에서 짐 정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그 부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 사람마다 아픈 정도와 신체 반응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날 점심을 먹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역시 내 이런 마음을 아는지 다른 때보다 점심 메뉴 칭찬이 이어진다. 

“이 병원 정말 밥 하나는 최고야. 나중에 집에 가면이 밥이 생각날 것 같아.”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은 오리 훈제 채소볶음이 올라왔다. 오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마늘 등으로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채소가 들어가 먹기에 편했다.      


밥 먹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병원 생활이었다. 식사시간에는 지금의 어려움을 감정으로 가져가지 않고 쟁반 위에 놓여있는 음식 위를 이리저리 오가며 맛있게 먹었다. 그땐 잠깐 현실을 뒤로한다. 오롯이 밥 먹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오감으로 다가오는 찰나의 기쁨느낄 뿐이다. 


남편과 난 병원밥으로 위로를 받았다. 아침 회진에서 만난 의사의 표정에 가슴이 덜컹하고 실망하다가도 한두 시간 후에 다가오는 점심밥을 기다렸다. 이제는 집에서 다시 밥을 한다. 병원에서의 기분 때문인지 밥 하는 시간에는 숨어있던 진심이 살짝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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