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Oct 17. 2024

순두부찌개는 왜 맛이 없었을까

어린 날 만난 저녁

오랜만에 저녁으로 순두부를 만들었다. 매일 밥상을 차리다 보니 익숙한 먹거리를 잊게 된다. 가까이 있는 것보다 어제와 다른 무엇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러면서 매일 먹을 게 없다고 말한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동네 아는 이를 만나도 헤어질 무렵이면 이 말을 서로가 건넨다. 사실은 맞지 않다. 그때 기억 속에만 없을 뿐 이미 많은 음식을 만들어왔고, 거기서 하나를 꺼내면 될 일이지만 그게 안 될 뿐이다.    

 

주부의 어제보다 좋아져야 한다는 일종의 직업적 성장의지라고 할 수 있겠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가족으로 전환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익숙한 것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찬을 꺼내놓고 싶어 하는 갈망 아닐까. 


먹는 일에는 사람과 시간이라는 두 가지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과거와 현재가 음식과 연결되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어릴 적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부엌에 들어서서 음식을 만들 때면 맛있게 만들고 싶다. 

이른 봄날이었다. 친구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 잘 아는 식당이 있다고 안내했다. 그때 친구가 추천한 메뉴가 순두부찌개다. 바지락 몇 개와 애호박 대파와 달걀, 양파가 보이고 고추기름과 흰 순두부 덩어리가 뚝배기에 보글대는 모습에 얼른 먹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흰쌀밥에 매콤함이 과하지 않은 순두부가 들어간 국물을 한술 떠서 맛봤다. 내가 좋아하는 딱 그 맛이다. 밥과 어울리며 적당히 뜨거운 정도가 유지되는 것은 물론 해물과 채소, 달걀이 덩어리째로 짭조름하면서도 칼칼한 국물과 어울린다.     


그날 이후로 순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그러할 것이라고 여기는 방법으로 무작정 덤볐다. 채소는 적당히 집에 있는 것으로 하고 조갯살은 구하기 어려워 돼지고기 간 것으로 했다. 신 김치는 송송 썰어서 넣었다.     


간은 엄마의 조선간장으로 했던 것 같다. 재료가 익어갈 무렵이면 순두부 한 봉지를 통째로 넣었다. 매번 그것을 만들 때마다 식당에서 경험한 맛이 아니었다. 왜 그럴까 고민을 하다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보았지만 매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자취생의 밥상에 오른 찬은 김치나 멸치볶음 정도로 단출했다. 가끔 엄마가 찾아오거나 특별한 날에는 여러 개가 오르지만, 대부분은 그러했다. 그러니 순두부찌개는 다른 것을 대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다.     


날이 추워지는 가을, 겨울에는 요리사 마음대로 이것을 올렸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 끓일 때마다 전보다 나아지기를 기대했다. 그런 바람은 대부분 다음을 기약해야 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재료에 비해 과한 물 양이 문제였다. 그리고  가정형편을 고려하는 아이가 있었다.  


찌개는 한 끼를 지나 다음에도 먹을 수 있는 걸 기대했다. 음식에 나름 경제 논리를 적용했던 셈이다. 순두부가 품을 수 없는 상당한 양을 만들었으니 맛은 당연히 바라는 정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름으로 열심히 부엌을 책임지며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과외도 하고 부모님께 용돈도 받았지만 주머니는 언제나 가벼웠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절약이 자연스럽게 배었다.  

  

정성스럽게 끓였는데 오빠와 동생이 그리 좋아하지 않을 땐 속이 상했다. 다음에는 무엇을 더해야 맛있게 할 수 있을까 봐 혼자 고민했다. 맛에 대한 단순한 이유를 지나치고 말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물이 적당량 들어간 자작자작한 순두부를 끓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에야 이렇게 편히 말할 수 있지만, 그땐 그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순두부를 끓이다 대학생이던 나로 돌아가 보았다. 엄마가 아니지만, 자취방에선 엄마가 되었다. 많이 부족한 순두부였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좋았다. 친구와 단둘이 추운 날 호호 불면 먹던 그때의 분위기가 덧입혀져 마음으로 다가온 음식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알 리 없는 식구들은 순두부를 열심히 먹는다. 저녁 식탁에 오른 게 전부인 딱 맞춤으로 만들었다. 고추기름도 집에서 적당히 전문가의 솜씨를 흉내 내어 만들었다. 어릴 적 그것보다는 맛있나? 그건 잘 모르겠다. 김치뿐만 아니라 몇 가지 찬들이 놓여있는 식탁은 젓가락이 가는 게 많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내 생활의 모습을 단편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음식을 만들 때의 감정과 그날의 여러 일이 어떤 음식을 떠오르게 한다.  매일 음식을 만들지만 싫어지지 않는 이유다. 어릴 때 나를 꼭 안아주고 싶은 저녁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빵이 다시 보이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