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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29. 2024

엄마와 떡

제삿날 풍경

아버지를 보낸 지 15년이 지났다. 날이 스산해질 무렵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가까워지면 아버지와 지냈던 옛 일이 하나씩 다가온다.  그건 곧 제사가 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모여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번에는 오빠가 빠졌다. 조카가 수능시험을 보기에 전날 있는 제사를 서울 오빠 집에서 친정으로 잠시 옮겼다.  


참으로 조촐한 제사였다. 우리 세 자매와 엄마가 함께였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보니 벌써 오후의 절반이 지났다. 제사는 아무리 간단하게 한다고 해도 준비할 게 많다. 엄마와 동생이 분주하게 오간다. 

   

그중에 흰 송편이 보였다. 작은 반달 모양인 제주식 떡이다. 그걸 보는 순간 별로 반갑지가 않다. 엄마가 떡을 하나 건넨다. 아주 담백한 맛, 소로 들어간 팥도 심심하다 느껴질 만큼이다.   

  

엄마의 제사떡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떡집에서 조금만 사서 하면 된다는 내 생각과는 다르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만들고 싶어 한다.  난 얼마 전까지 엄마의 떡 사랑을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떡과는 모양도 맛도 거리가 있어서 다른 마음이 들어갈 틈이 없다.     

먼 길을 온 탓인지 허기가 졌고 떡 하나를 순식간에 먹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의 떡에 대한 마음이 다가왔다. 그건 엄마가 우리에게 내색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향한 깊은 그리움 너머의 여러 가지 감정의 결정체였다.


가족들은 서로가 다른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다 이날 모인다. 제사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를 이야기한다. 좋았던 일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때로는 참 감사한 일이어서 힘들었던 아픈 추억까지도 담담하게 꺼내놓을 수 있게 한다.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였을지라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그럴 수 있다는 받아들임이 조금씩 늘어난다.


어머니도 이날만큼은 온 마음을 다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분위기다. 제사상을 차리면 아버지가 정말 살며시 다녀가시는 걸까? 다른 음식들도 그러하지만, 떡에는 엄마의 절절한 얘기가 담겼다.  떡은 아버지를 향한 마음의 편지였다.      


아버지는 화려한 걸 싫어했다. 언제나 분수에 맞는 살림살이를 강조했고, 미래를 준비하고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엄마의 흰 송편은 그런 아버지의 삶과 닮았다. 너무나 수수해서 처음에는 별로 눈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한 입 먹으면 처음에는 어색한 맛이다. 우리가 보통으로 맛의 기준을 따지는 혀끝을 자극하는 달콤함은 없다.      


떡은 흰색의 순수함과 수수함이 전부일 정도다. 엄마는 제사상에 올릴 것으로 한 소쿠리의 떡을 만들었다. 떡 한 접시를 상에 올리며 아버지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엄마는 오래전 무릎 한쪽을 수술했는데 그 후로도 여전히 불편해서 앉고 일어서는 일이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 엄마에게는 너무 어렵다.


엄마는 그런 몸을 이끌고 힘들게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절을 했다. 주위는 조용하다 못해 경건했고, 한편으론 슬펐다. 그 순간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고 살아온 엄마의 삶이 내 머릿속에서 흘렀다.     


오랜만에 엄마의 떡이 오른 제삿날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좋았던 시절에 떠나셨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살아있다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엄마의 입에 붙은 이 말은 그간 혼자 오롯이 받아내야 했던 삶의 고비를 에둘러하는 얘기다.  

    

엄마의 떡은 그동안 부모님이 살아온 날들 어느 한 편에서 먹던 맛, 우리에겐 낯설지만 두 분의 생의 한편이 담겼다.  엄마의 송편 때문인지 제사를 지내고 며칠 뒤에 아버지가 꿈에 나타났다. 젊었을 때의 고운 얼굴로 내가 쉼 없이 해대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엄마의 절절함이 하늘에 닿은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우리를 그 먼 곳에서 살펴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잘 살아진다는  응원의 메시지라고 믿고 싶다. 그러니 지금 내 어려움들이 꿈처럼 지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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