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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3. 2024

원하는 대로 감 샌드위치

가을 부엌에서 만나는 즐거움

이곳저곳 다 감이다. 단단한 단감부터 대봉까지 길가를 지나다 보면 한 두 번은 감나무를 만난다. 어느 곳은 주황색으로 진하게 익다 못해 붉게 변했다. 비라도 한두 번 내리고 나면 홍시가 된 그것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아 너무 아깝다. 내 것이라면 서둘러 장대를 들고 조심조심 단 몇 개라도 따고 싶을 만큼이다.


점심때 달랑 한 조각 남은 식빵이 보였다. 그리고 삶은 달걀 하나와 단감 두 개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있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했다. 으깬 달걀에 마요네즈를 넣고 버무린 샌드위치를 좋아하기에 이것 또한 특별한 맛일 것 같다.  

   

달걀을 준비해 두고 단감은 굵게 채 썰었다. 이것을 마요네즈만 넣고 버무렸다. 살짝 구운 빵에 이것을 적당히 올렸다. 아삭하면서도 달콤하고 끝맛은 고소함이 더해져 제법 잘 어울린다. 달걀 특유의 냄새 대신 감의 생생함이 입안에 가득했다.     

단감 샌드위치

가을 햇살은 큰 봉지에 가득 담아두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밖에 나가지 않더라고 집안에 들어온 그것을 잠깐씩 느끼고 있으면 몸이 사르르 풀린다. 여기에 난생처음 먹어본 감 샌드위치까지 있으니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평화롭다.      


집밥은 이처럼 무한한 실험의 장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생각이 닿는 대로 부엌에서 조리하고 식탁에 올린다. 때로는 그리던 것이 아닐지라도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마음만큼 음식이 안 되었다고 해서 속상할 일이 아니다.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맛을 보고 문제가 된 부분을 찾아내어 다음에는 그것 대신에 다른 것을 넣으면 된다. 그런 과정이 늘어갈수록 원하는 근사치에 가까이 간다. 종종 내가 만드는 음식도 그랬다.     


별생각 없이 했던 요리가 뜻밖의 소소한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정반대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뤄보면 하다 보면 오늘보다 더 좋아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처음 만들었던 동그랑땡은 자취생이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엄마가 되어야 자신이 붙었다.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게 있다. 물론 그동안도 요리에 대한 관심은 쉼이 없었다.   

김밥과 단감 샐러드

내게 음식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라 매력적이다. 단감도 그랬다. 단감 먹을 방법을 궁리하다가 언젠가는 김밥과 함께 어울리는 것으로 내놓았다. 감을 얇게 썬 다음 식초와 올리브유를 넣은 샐러드다. 김밥의 텁텁함에 달고 아삭한 감은 식초의 시큼함과 이질적이지만 괜찮은 하모니를 보였다.  


감을 다르게 먹는 법을 고민하다 무작정 덤볐더니 내 요리가 나왔다. 너무나 간단한 것이지만 내가 했기에 의미가 있다. 누구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아이들도 남편도 모른다. 천천히 다가오는 만족감은 누가 알지 않아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 가을에 그런 몇 가지를 더할 수 있을까? 감 샌드위치는 우울함이 생각보다 오래가고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밀려와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던 어느 때 만났다. 식탁 위에 놓인 감을 보다 별 뜻 없이 살짝 가볍게 만들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내 삶의 힘을 빼는 일도 이와 닮았으면 좋겠다. 대단한 목적의식 없이 살그머니 해보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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