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니와 초콜릿

by 오진미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말뿐이다. 외면하려 할수록 가까워지고 복잡해진다. 이런 날은 한편으론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고 몸을 움직인다. 매일 돌아오는 집안일을 하고 나서도 다른 게 없는지 기웃거린다. 아이는 자꾸 간식거리를 놓아두는 곳에 왔다 갔다 한다. 그곳에는 기분 좋게 해주는 먹을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갔다.


지난밤에 남편이 가나초콜릿 3개를 들고 왔다. 브라우니. 아이와 내가 초콜릿을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떠올렸다. 내일이 되면 그것을 만들기로 했다. 계획은 오후에 하기로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지금이 적기인 듯싶다. 주저함 없이 바로 중탕할 물을 냄비에 올렸다.


아이가 초콜릿을 손으로 적당히 부쉈다. 물이 끓어갈 무렵 그것을 그릇에 담고 녹이기 시작했다. 열을 받은 그릇에 담긴 초콜릿은 순식간에 제 모양을 잃어가고 끈적한 것으로 변했다. 달걀 하나를 깨트리고 잘 풀어놓은 다음 우유와 설탕, 식물성 기름에 소금 조금을 넣고는 온 힘을 다해 섞었다.


여기에 채 친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붓고 주걱으로 저었다. 반죽이 적당히 어울려 갈 무렵 녹인 초콜릿도 말끔히 긁어 넣었다. 감으로 초콜릿보다 밀가루를 많이 넣은 듯했다.


완성된 것을 봐야 알겠지만, 일반적인 브라우니보다는 찐득한 초콜릿 케이크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었다. 어느새 오븐주위로 달콤한 초콜릿 향이 퍼졌다. 역시나 꺼내 보니 잘 부풀어 오른 초콜릿 케이크였다. 꾸덕꾸덕하면서도 진득한 초콜릿에 마음을 두었는데 그것에는 이르지 못했다.


출발선에서 이미 재료를 제대로 갖춰놓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그동안 숱한 경험에서 알았으면서도 다시 그런 뜻을 품었다. 그래서 간혹 원하는 것에 도달하면 행운이라고 한다. 빵 하나를 두고도 사실은 외면하고 바라는 대로 보려 했다.


브라우니는 검은색에 가까울 만큼 진한 어둠 속에서 쫀득함과 달콤함으로 승부를 건다. 잠깐씩 버터 맛이 올라오지만 내게는 설탕이 주는 단맛과는 차원이 다른 오묘함이 있다. 다른 맛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한 모금과 브라우니 한 조각이면 지금 당장 주변을 맴도는 고민을 잊을 수 있다.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고 접시에 담겨있는 브라우니까지 사라져 가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겠지만 잠깐은 그대로 멈춰있을 수 있다.

브라우니 대신 초콜릿 케이크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한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내가 그것이 그리웠다. 줄리엣비노쉬가 주연한 영화〈초콜릿〉이 떠올랐다. 여주인공 비안느가 만든 초콜릿은 동네 사람들에게 일대 바람을 일으킨다. 그들이 갈망하고 바라지만 꺼내놓지 못했던 것을 초콜릿 하나가 건드려준다.


내게도 그런 초콜릿이 있었다. 워킹맘이던 시절, 집과 회사는 공간만 다른 일터였다. 회사는 긴장과 동시에 문제해결의 장이었다면 집은 조금은 여유 있다 여기지만 어린 아기를 쉼 없이 돌봐야 하는 곳이었다.


그때마다 나를 다독여 준 건 생초콜릿. 냉동실에 두었다가 도피처가 필요할 땐 입으로 하나를 가져갔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가 엄마가 먹는 것을 봐도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남편은 주말에만 겨우 만나니 이런저런 일을 나눌 수도 없다.


때로는 아침 무렵에, 어느 날은 깜깜한 저녁 모두가 잠들 시간에 도둑질하듯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때마다 나를 기다려준 건 초콜릿이었다. 그것을 먹으며 숨 쉬었다. 달콤하면서도 쫄깃하고 부드럽기까지 한 그것만큼 순식간에 기분을 전환해 주는 게 없었다. 초콜릿은 그때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친구였다.


브라우니 대신에 초콜릿빵이지만 입을 즐겁게 해 줄 것이 생겨 아이들 얼굴에 꽃이 피었다. 이렇게 잠깐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지금 담아둔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하루가 그런대로 괜찮다. 일상에서 인상을 남기는 건 초콜릿처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의 작은 것들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억과 기록 수프 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