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엄마의 무게를 알아간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도 닮았다. 나이를 알려주는 숫자가 단지 그것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방학은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기간이다. 가만히 누워있거나 우울에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하루를 보여줘야 할 때가 있다. 내 마음속에 문제의 핵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면서도 꺼내놓기도 싫다. 이런 날은 모든 게 멈췄으면 좋겠다. 이런 여러 가지 떠도는 마음이란 것들에 정신을 빼앗겨 있을 때 나를 깨우는 건 이상하게도 밥시간이다.
오늘의 점심이 그러했다. 피자를 시키기로 약속돼 있었다. 열심히 검색해서 원하는 메뉴도 정했다. 아침 일찍 시장을 봐 온 터라 한숨 돌리고 싶었다. 어제 못했던 집안일을 대충 하고는 점심은 고마운 카드가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전화를 들었는데 휴일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온다. 아이들은 실망한 눈치고 뭔가 대처해야 할 것들이 필요했다. 큰아이가 라면을 끓여 먹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놔 둘 수가 없었다. 부쩍 라면 먹는 횟수가 늘어나는 까닭에 망설여졌다. 선택의 시간이기도 하다. 내 몸이 편해지는 것과 엄마의 집밥 사이에서 결정해야 한다. 아이가 언젠가 먹었던 오므라이스를 얘기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만들기 싫다는 솔직한 소리가 들린다. 그럼에도 이 순간에는 ‘그래 오늘 그걸로 먹자’ 단숨에 대답이 나왔다.
몸이 무겁다.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쓴 탓에 마음이 불편해지니 신경세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나 보다. 어제는 10시도 전에 아이방에서 혼자 잠을 청했다. 누구의 간섭 없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침에도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지만 한참이나 이불속에서 머물러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가족들 아침을 외면할 만큼은 아니었는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녁때 만들어둔 찌개와 국으로 대충 식사를 마무리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는 일은 내게 아주 중요한 일로 굳어졌나. 내 몸과 마음이 원하지 않음에도 자동적으로 움직여지는 게 신기할 정도다. 냉장고 야채 박스를 뒤져 당근과 양파, 새송이 버섯을 꺼냈다. 들쭉날쭉 재료를 채 썰고 여기에 돼지고기를 잘게 다진다. 어느 날처럼 정성이 들어가는 것 같진 않다. 대충대충이다. 팬에 고기부터 간장과 후추로 밑간 한 다음 볶는다. 다 익어갈 즈음 다른 야채를 모두 쏟아부었다. 중간 불에서 뚜껑을 닫고 충분한 시간을 둔다. 계란 5개를 꺼내어 오므라이스 위를 장식하기 위한 지단을 만든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중심으로 계란물을 모아가며 타원형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소스도 준비했다. 돈가스와 스테이크 소스에 케첩과 물, 설탕을 조금 넣는다. 작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약한 불에서 끓이면 완성이다.
몇 분이 지났을 뿐인데 순서대로 만들어졌다. 파스타 접시에 밥을 담고 계란을 올리고 소스를 적당히 뿌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엔나소시지도 대처서 담았다. 배달 음식으로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일은 원하는 대로 안 되었고 부엌에서 오물조물했을 뿐인데 그래도 괜찮은 음식이 완성됐다.
세상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그러기를 희망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게 인생이란 걸 요즘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내가 막을 수 있는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게 더 많다는 것도 알아간다. 지금 해야 할 일을 꾸역꾸역 해 갈지라도 그것 자체로도 의미 있다.
예상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면 어떻게 지내야 할까. 오늘처럼 가능한 것들만 즉흥적일지라도 해 가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현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라면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움직였고 그 덕분에 기분도 조금은 살아나는 느낌이다. 움직인다는 건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절로 생기는 고마운 행동이다. 아이들에게 밥 한 끼를 해주면서 배웠다. 그러면서 하루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