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전복을 샀다. 손으로 살짝 눌러보니 꿈틀거리는 모양이 살아 있다. 국내산이라고만 적혀 있는 원산지 표기를 보고 완도라고 짐작해 본다. 예전에는 삼겹살을 사는 일이 더 잦았다. 전복은 아주 가끔 이었다. 요즘은 상황이 역전됐다. 고기보다는 해산물이 놓인 곳으로 눈길이 간다. 몸을 생각하는 밥상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보기로 했다. 마음만 앞섰던 게 그동안의 습관이었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옮겨보기로 했다.
전복을 종종 찾는다. 전복하면 비싸고 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실상 그런 것 만도 아니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큰 것들은 부담스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만원에도 대여섯 개가 가능하다. 물론 크기가 작다는 건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단단한 껍데기에 둘러싸인 그것과 친해지는 중이다. 바다를 벗어나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생명을 유지하는 강인함에 놀란다.
사람들에게 전복은 기원처럼 다가온 바다의 조개다. 몸이 안 좋아져 소화가 어려울 때 전복죽은 빠른 완쾌를 바라는 엄마의 바람을 담았다. 흰쌀을 넣고 내장인 개우와 섞인 푸른빛을 내는 죽 가운데 전복의 흰 살은 보석처럼 빛난다. 전복은 지금처럼 양식으로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게 아니었다. 해녀들이 깊은 바다로 들어가 힘들게 따온 것이기에 특별한 날에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존재였다.
서귀포 올레매일시장에 가면 전복을 고집하는 가게가 있다. 여러 수조에 크기도 다양한 것들이 가득 붙어 손님들을 기다린다. 전복들의 창고인 그곳은 신기할 정도다. 우리 동네 어물전에는 커다란 수조에는 창밖에 고개를 내민 어린아이들처럼 전복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주인아저씨의 빠른 손놀림으로 몇 마리가 꺼내지고 투명 비닐에 담긴다. 무엇을 샀다는 기분도 안들만큼 가벼운 것들이지만 부엌에서는 이보다 반짝이는 존재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난주에는 전복죽을 끓였다. 남편은 수요일이면 가족사랑의 날이라 하여 일찍 집으로 온다. 저녁을 집에서 먹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간이기에 전복을 올리기로 했다.
“나 지금 퇴근이야.”
“네 조심히 오세요. 오늘 저녁은 전복죽이에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목소리가 좋다. 전복이라는 단어가 그를 설레게 했나 보다. 쉽게 먹을 수 없는 것, 몸을 위한 음식이라는 생각에 남편 역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기대되지 않았을까 싶다.
‘바다의 명품’ ‘조개의 황제’라고 불리는 녀석들이다. 사람들이 전복을 칭하는 수식어가 이리도 화려한 걸 보면 그동안 어떤 대접을 받고 왔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어떤 요리를 하든 주인공이 되었다.
어쩌다 사는 전복이 한 달에 두서너번 장바구니를 채우게 된 건 내 마음의 변화였다. 좋은 음식이 건강한 몸을 가져다 줄 거라는 지극히 평범한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며 모두 아프지 않고 지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았다. 전복 몇 개를 사며 가슴 깊은 곳에 담는 나지막한 소망이다. 온전히 살아 있는 것을 만난다는 점도 이 녀석의 매력적이다. 잘생기지도 않았다. 편식을 했는지 크다 만 것처럼 작아도 괜찮다.
전복은 내게 마음이었다. 식탁에 오르기 전, 손질하는 과정도 세심해진다. 겉면에 낀 먼지들을 깨끗이 제거한 다음 숟가락으로 껍질과 살을 분리하고 잘 씻어준다. 내장과 이빨을 떼어내고 나면 요리 방법에 따라 썰면 그만이다.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전복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향긋한 바다내음이 올라와 기분이 맑아진다.
전복조림을 하기로 했다. 죽은 부드러워서 먹기 편할 수도 있지만 자칫 싫증이 날 위험이 높다. 이건 언제나 밥반찬으로 무리가 없다. 손질한 전복에 칼집을 내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작은 뚝배기나 냄비에 물과 진간장, 매실청을 조금 넣고 약 불에서 보글보글 끓일 때쯤 전복을 넣고 2~3분이 지나면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리면 된다. 부드러우면서도 탱글 한, 고소하면서도 달콤함이 감도는 특별한 조림이 완성된다.
금방 지은 따끈한 밥에 전복 조림 몇 조각이면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고 우거지 된장국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간단한 식탁이 황홀한 맛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언제나 감탄을 선물해 주는 우리 집 착한 메뉴다. 전복과 함께 하는 부엌은 지금처럼 때로는 오늘보다는 좋은 내일을 바라는 엄마의 숨죽인 희망을 만들어 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지금 내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