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과 굴 바다가 식탁에 오르던 날

# 17

by 오진미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키운 것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한편에는 보름을 앞두고 묵은 나물을 준비한 노점 주인들은 하루 장사 준비에 바쁜 아침이다. 십년 전 이사하고 얼만 안 되어 동네를 살피다 옹기종기 자리 잡은 이들의 모습이 설레게 했다. 사람 냄새나는 소박한 시장은 마음마저 따듯하게 했다. 잘 정리되어 있고 신상품과 할인행사가 이어지는 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어릴 적 엄마 따라갔던 오일장에서 만났던 정신없을 만큼 복잡하지만 정겨운 모습 그대로였다.


이곳에서 톳을 삼천 원 주고 샀다. 할머니가 검은 비닐봉지 가득 담는다. 제법 많은 듯한데 말하지 않아도 한 움큼을 덤으로 넣는다. 절로 감사의 인사가 나온다. 이번에는 로컬푸드에서 굴 한 봉지도 더했다. 바다의 우유라고 불릴 만큼 영양만점인 굴로 저녁을 준비할 생각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챙긴다.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거나 국을 끓이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시장바구니에 배추며 표고버섯, 국산콩으로 만든 손두부, 토마토까지 몸에 좋다는 것을 챙겨 넣었다. 고기보다는 해산물과 생선, 싱싱한 야채로 식탁을 꾸려 가기로 마음먹은 지 한 달이 지나간다. 가공된 식품을 덜 먹으니 시장을 가야 하는 일이 잦아지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가방을 들고 가게들이 자리 잡은 동네 중심인 읍내로 나간다.


좋은 음식이 건강한 몸을 만들어 줄 거라는 지극한 믿음에서다. 남편은 지난해 말과 최근까지 두 번에 걸쳐 입원을 했다. 건강을 돌봐야 할 때라는 신호가 거듭 나오고부터는 불안하면서 마음이 바빠졌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진정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있기도 했고 왈칵 터지는 눈물을 훔치며 혼자 절망에 빠져 지냈다. 이 모든 게 상황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며칠을 이렇게 보내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나를 다독이며 일어섰다.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 조금이라도 걸었다. 눈폭풍이 치는 날에도 모자와 장갑을 친구 삼아 나갔더니 한결 가벼워졌다.


가족의 밥상을 매일 책임지는 자리이니 정성을 더해보기로 했다.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거나 매일 먹는 된장국을 더 맛있게 끓이는 법을 나름대로 고민했다. 톳과 굴을 준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톳은 바다의 기운을 담고 있는 해초다.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겪었고 추운 겨울에도 바위에 붙어서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엄마는 따뜻한 봄이 오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바닷가에 톳을 뜯으러 갔다. 오랫동안 보관해서 먹는 반찬을 준비하는 알뜰함이었다. 부모님은 톳이 오른 밥상을 좋아했다. 톳을 양념 된장에 푹 찍어 먹거나 갖은 야채를 올린 무침으로 만들어 밥상에 올렸다. 어린아이였던 그때는 정말 공감할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오도독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속이 편안해지는 음식이니 자꾸만 손이 간다.


어스름이 지기 시작한다.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시사 뉴스를 들으며 톳을 뜨거운 물에 데치기로 했다. 갈색이던 것이 초록으로 변했다. 차가운 물에 몇 번 헹군 다음 소쿠리에 담고 물을 빼준다. 양파와 당근, 달래를 넣기로 했다. 재료들을 채 썰고 한 곳에 모았다. 양념은 된장이 중심이다. 엄마표 된장에 고추장, 마늘, 깨, 매실액을 놓고 휘휘 저었다. 이제 톳과 야채를 고루 버무려주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리면 새콤하고 아삭한 톳 무침이 완성되었다.


굴전을 만들었다. 굴의 물컹한 느낌이 자칫 느끼할 수도 있기에 한 단계를 더했다. 뜨거운 물에 1~2분 데쳐 주면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전을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상태가 된다. 여기에 야채 박스에 뒹굴고 있는 부추와 양파, 당근을 다져놓는다. 비닐에 굴을 담고 부침가루를 한두 숟가락 넣어 잘 저으면 적당히 밀가루 옷을 입혀진다. 여기에 야채가 들어가 계란물을 더하면 별도의 간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건강을 위한 밥상이니만큼 간은 짜지 않고 심심하게 한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한 숟가락씩 떠 넣는다. 중간 불로 노랗게 익을 무렵 한 번씩만 뒤집어 준다.


바다의 것들로 꾸며진 식탁이었다. 국은 소고기 뭇국에 하루를 냉장고에서 잠자고도 살아 움직이는 장흥 뻘 낙지 한 마리를 넣었다. 아이들이 식탁을 탐색한다. 젓가락이 느려진다. 고기반찬이 오르면 순간 접시가 빌만큼 먹는 속도가 빨라지지만, 오늘은 정 반대다.

“엄마 굴 전이 맛있네. 부드러우면서도 먹어보니 괜찮네요.”

큰아이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한두 번 전을 집는다. 큰마음으로 도전해 본 음식이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을 곁들인다.


친정엄마는 고기를 줄이고 생선이나 야채를 먹어야 한다고 기회만 되면 당부했다. 몸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오고 병원을 다니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그냥 지나쳤던 엄마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건강하면 살아진다’며 나를 다독였던 엄마의 깊은 마음이었다. 지금처럼 바다와 친해지고 밭에서 나는 것들을 사랑하게 된다면 건강해질까. 밥상은 마음을 담는 큰 그릇이라는 데 절대 공감하는 요즘이다.


남편도 요즘 들어 소식하고 간식을 줄였다.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사랑하고 고기 대신 해산물을 더 찾는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금 해야 할 것을 찾아보았다. 잘 먹고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일이었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뚜벅뚜벅 가 봐야 겠다. 평안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저녁밥상은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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