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밥상을 함께 한다는 건

# 19

by 오진미



완전한 밥상이다. 가족이 다 모였다. 남편과 나, 아이들이 식탁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겨울방학을 불과 이틀 남긴 저녁이었다. 휴일을 제외하고는 온 가족이 저녁 식탁에 함께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아침 밥상에는 늦잠 자는 까닭에 막내의 자리가 비어 종종 비었다.


사회 분위기가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을 강조하고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등 변화가 있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다. 차를 운전하고 출퇴근하는 남편은 아무리 빨리 와도 8시를 훌쩍 넘긴다. 그 시간까지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기다리게 하는 일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어렵다. 일정하지 않은 퇴근 시간을 두고 고민하기보다는 실속을 챙기기로 했다. 아이들의 희망 시간과 설거지와 부엌 정리 등 내 편의를 위해 7시 무렵이면 식탁에 앉는다.


“엄마, 아빠 언제 와요? 아빠가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가끔 평소와 다른 특별한 메뉴가 식탁에 오르는 날이면 아이들의 아쉬움은 절정을 달한다. 김이 피어오르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먼저 숟가락을 드는 게 마음에 걸리는지 아빠의 귀가 시간을 묻는다. 종일 일에 시달렸을 아빠가 보고 싶은가 보다. 맛난 것 앞에서 많이 먹고 싶어서 숟가락 전쟁을 치르더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응 아빠가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많은가 봐. 아빠 것도 남겨뒀으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먹어.”

언제나 몇 개의 단어만 달라지는 비슷한 답으로 말을 맺는다.


겨울은 눈과 함께 지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제법 여러 번 내린 그것이 불편했다. 그러다 이제는 다운점퍼가 무거워지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봄이 눈앞까지 왔다. 막내의 학교 가기 싫다는 투덜거림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리는 신호다. 우리 가족, 밥을 함께 먹는 식구가 2월을 정리하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에 함께 모이니 그것만으로도 목화솜 이불 따듯함이 내 주변을 감싸 안는 기분이다.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던 남편은 일이 빨리 끝나 생각보다 일찍 집으로 왔다. 이럴 때마다 만만치 않은 비용을 이유로 불만이었던 KTX가 고맙다. 별생각 없이 지내다 가족이 모이는 저녁이라는 생각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남편과 동네 마트를 갔다.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고 나니 대보름날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늦었지만 저녁에라도 오곡밥을 만들기로 했다. 소량 포장된 찹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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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반을 넘길 무렵 메뉴를 정했다. 동그랑땡과 톳 무침, 샐러드, 굴전이 중심이다. 손이 많이 가는 동그랑땡 만들기에 돌입했다. 마늘을 충분히 넣어 냄새를 잡고 담백한 맛을 내기로 했다. 양파와 당근을 다졌다. 갈아온 돼지고기에 마늘과 소금, 간장, 매실, 후추를 넣고는 열심히 치댔다. 그다음 채소와 달걀 하나를 넣어 끈기를 풍부하게 한 다음 물이 나오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탱탱한 동그랑땡을 만들기 위해 빵가루를 더했다. 이제부터는 내 팔과 손목의 힘이 필요한 시기다. 다른 때보다 열심히 반죽한 다음 적당히 동그란 모양 잡기에 나섰다. 접시가 가득해질 무렵 소금과 고소함을 더해 줄 참기름을 한 숟가락 더해 달걀물을 준비했다.


동그랑땡에 계란물을 하나씩 입히며 팬에서 지져낸다. 집에서 서성이던 막내가 곁으로 다가온다.

“엄마 맛있는 냄새가 나네. 뭐야. 동그랑땡 하나 먹어도 돼?”

채 열기가 가시지 않은 것을 하나 물고는 엄지 척한다. 이 순간이 있어 번거로움에도 음식을 만들게 되는 게 아닐까. 아이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올 때는 어깨가 으쓱해진다. 남은 계란물에 채소를 넣고 굴전을 부쳤다. 건강을 위해서 샐러드를 챙겨 먹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애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핑계로 가끔 식탁에 올렸다. 이제부터는 집에 있는 것으로 간단히 만들기로 했다. 브로콜리를 우선 데쳤다. 고추 모양의 노랑 빨강 파프리카도 손질했다. 소스는 간단하게 정답이라는 신조이기에 발사믹에 매실과 올리브유로 끝을 맺었다.


오곡밥 역시 내 맘대로다. 찹쌀에 찰수수, 기장, 차조에 팥 대신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하던 콩을 주인공으로 했다. 큰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밥을 지었다. 7시를 조금 넘긴 시간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동그랑땡을 먹고 싶어 목이 빠져라 언니를 기다리던 막내가 제일 반긴다. 시래기나물이 들어간 들깨 된장국으로 마무리되는 소박한 한 상이 차려졌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는 식구가 빠짐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과수원에 나가야 했기에 일찍 시작된 아침은 애들에겐 힘든 일이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서 비몽사몽일 때는 항상 따라오는 말이 있었다.

“골목 끝까지 뛰어갔다 와. 정신 차리고 밥 먹어야지.”

동네에서 첫손가락 꼽힐 만큼 골목이 길었던 집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단호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무거웠던 발걸음이 돌아올 무렵에는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게 마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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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언제나 동그랑땡의 열혈 팬이기에 밥그릇과 접시를 부지런히 오간다. 남편은 굴전과 샐러드, 멸치, 김치, 식탁 위 모든 것들에 관심을 둔다. 아버지가 고집했던 모두가 둘러앉아 먹는 밥상의 깊은 의미를 어렴풋이 이제야 알 것 같다. 밥을 먹는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나누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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