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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학 Sep 24. 2021

29강.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졸업생과의 대화 1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 학과 재학생


안녕하세요. 드디어 마지막 주제를 시작하네요.

그동안 고교학점제와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면 학생들이 보다 잘 성장할 수 있느냐겠죠. 

그래서 마지막 시간인 오늘, 고교 학점제 연구학교 졸업생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찬학 : 안녕하세요.


이육샛별 : 네 안녕하세요.


박찬학 :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육샛별 : 안녕하세요, 저는 이우고등학교 졸업생이고요. 올해 서강대학교 아트앤테크놀러지 학과에 입학한 

이육샛별이라고 합니다. 


박찬학 : 이우고등학교 사례는 4차례의 강의를 통해서 다루어서 선생님들께서 어떤 학교인지 다 알고 계시죠? 이우고등학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는 알고 계신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고교학점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이하 박, 이)


이 : 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고교학점제가 도입될 거란 소식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서 제 고등학교 시절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박 : 어떤 점이 고등학교 시절과 비슷했나요?


이 :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비슷했습니다.  

   

박 : 이우고등학교가 재학 당시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였던 걸 알고 있었나요?


이 : 아니요 


박 : 연구학교로 지정이 되어서 교사 한 명을 더 충원할 수 있었는데요, 이우고등학교는 사회과 교사를 충원했습니다. 그래서 사회과 관련 선택과목을 더 다양화할 수 있었죠 

고등학교 때 과목 선택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요?


이 : 네. 저는 문과생이었고, 사회학에 깊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주로 사회 교과의 선택과목들을 수강했습니다. 사회 교과 중에서는 사회문화, 세계 지리, 세계사와 같은 기본 교과목들 외에도 ‘사회학 개론’, ‘사회과학 방법론’과 같은 사회학 심화 수업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한국 사회와 문화’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이렇게 배운 사회학 주제들을 2학년 ‘심화 영어 작문’을 선택해 컨퍼런스에서 영어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원어민 선생님과 학생들이 직접 영어 컨퍼런스를 기획, 진행하고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영어로 관심 주제를 탐구해 발표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이외에도 문과생은 고등학교 1학년이 지나면 과학 과목을 필수로 수강하지 않아도 되는데, 저는 3학년 때 ‘과학철학’ 과목을 선택해 수강했습니다. 


박 : 기억을 잘하시네요. 선택한 과목 중이 특히 나의 진로나 혹은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와 관련해서 선택한 수업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이 : 제 꿈은 예술과 기술을 활용해 사회문제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예술팀에서 기획자로 활동하거나 소셜 벤처를 창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지식을 많이 배우는 것보다, 그 지식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실천할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식을 공부하는 것보다 배운 지식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사회학적으로 배우고, 마지막에 이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한국 사회와 문화’ 수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형성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단순히 역사 지식 암기가 아니라 경제, 정치, 외교적 사건들이 현재의 정치적 지형, 사람들의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배운 내용들을 바탕으로 학기 말에 주제, 프로젝트 방식 등 모든 것을 스스로 기획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저와 친구는 학교 앞이 재개발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재개발의 특수성에 관심이 있었고, 도시빈민을 프로젝트 주제로 선정했습니다. 가장 먼저 서울과 청계천 일대의 재개발 사업에 대한 역사를 책으로 공부하며 재개발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지 공부했습니다. 

이후에는 프로젝트 결과물을 어떻게 낼지 정해야 했습니다. 만약 이 수업의 프로젝트가 보고서 작성, ppt 발표 등 뻔한 방식으로만 정해져 있었더라면 저는 이 수업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프로젝트의 방식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저와 친구는 직접 도시빈민의 주거지를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한 인터뷰 사진집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거권 운동을 하는 청년 활동가님, 오랫동안 도시빈민과 관련된 권리 운동을 해오신 활동가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활동가님과 함께 재개발구역 현장을 둘러보고 재개발구역 철거민들, 홈리스, 쪽방촌 주민 등등을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책과 사진으로 엮어 도시빈민의 이야기가 잘 전해질 수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제가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시각화해 담요, 양말 등 다양한 굿즈 상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를 사면 하나의 굿즈가 홈리스분들께 기부되는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예술이나 기술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보통 예술적 기법들,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 등 방법론적인 것만을 공부하도록 만드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과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좋은 예술가, 기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를 활용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와 메시지를 기획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와 문화 수업은 겉으로 보기에 제 진로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가지고 사진에세이집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떻게 인문 사회학적인 내용들이 예술과 기술을 통해 표현될 수 있을지 익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자소서 2번 항목에도 작성했고, 대학에 와서 구체적인 코딩 기술, 디자인 기술들을 익히며 원하는 스토리가 있다면 언제든 이를 원하는 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 : 수행평가로 직접 인터뷰도 하고, 사진 에세이집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 기획까지 대단하네요. 그 과목의 담당 교사가 누구였죠?

이 : 여기 계신 박찬학 선생님이었습니다. 




박 : 제 페이스북을 찾아보니 이런 포스트가 있더라고요. 최인기라는 빈민 활동가의 글을 제가 공유한 것인데요, “오늘은 고등학생들과 청계천을 방문했다. 동묘에서 출발하여 청계천 복원 공사에 맞서 저항했던 황학동을 거쳐, 평화시장,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그리고 전태일 동상까지 시간이 허ᅟ각하면 서울역 노숙인 추모제 현장 그리고 전철로 이동해 노량진 수산 시상에 도착할 것이다. 화분 하나 잘못 옮겨도 식물은 죽는다. 그 한 뼘이 곧 집이고 생명이고 우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는 것도 화분 속에 씨앗이 싹트고 자라는 것처럼 누군가에겐 어떤 공간은 소중하고 소중한 것이다” 이게 수행평가 당시의 활동이었죠?


이 : 네 


박 : 저와 이야기 나누는 자리여서 이 과목 사례를 이야기한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소서 2번에까지 쓴 것 보니 특별한 교과 활동의 경험이었던 것 같네요, 사실 대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시 지원 및 자소서 작성 과정까지 함께 했는데요 그 이야기는 뒤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교과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렇게 넓은 범위의 가이드만 제시하고 학생들이 각자 가장 자신 방법으로, 혹은 가장 재밌을 것 같은 형태로 수행평가를 진행하게 했습니다. 


그때 수업자료를 찾아보니까 학생별로 프로젝트 내용을 정리해 둔 것이 있더라고요. 

프로젝트 평가하면서, 교과 세특 기록하려고 정리해 둔 것입니다. 





몇 개 프로젝트만 살펴보면 


‘한국 사회 문화의 왜곡 현상’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개별 프로젝트 과제로 한국 대안 교육의 오해와 편견에 관한 기사를 작성해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함. 한국 대안교육의 역사와 주요 학교의 운영 사례를 연구하고. 직접 설문지를 작성해 학교 근처 가장 번화한 미금에서 대안학교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고 전문가 인터뷰 등을 거쳐 <대안교육 20년, 여전한 대안학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하여 대안교육 및 대안학교가 우리 사회에서 위기 학생 관리 차원에서 인식되고 운영되는 문제점을 짚어냄.

이런 프로젝트들도 있었네요.


‘한국 사회 문화의 왜곡 현상’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개별 프로젝트 과제로 자해하는 사람을 뜻하는 ‘자해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제작함. SNS 등에서 자해를 시도하거나 자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연락해 8명의 자해러들과 인터뷰를 하고, 자해의 원인과 현상 등을 조사하여 자해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56 페이지 분량의 책을 제작함.  ‘어떻게 살고 싶나’라는 마지막 질문을 통해 ‘더 나은 모습으로, 보다 밝고 눈부신 모습으로, 행복해지고 싶다’ 등의 답을 이끌어 낼 만큼 진솔하고 잘 준비된 인터뷰를 함.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귀 기울이고 삼켜내려 노력해야 한다. 아직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없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 숨 쉬고,  눈물을  삼키다  못해  토해내며  삶을 버텨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특히나 기억에 남는 교과 수업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 : 선택교과목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들을 떠올려보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일방적인 강의로만 진행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따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선생님들께서 코칭해주시는 수업이었습니다. 수업 내용과 제 관심 분야를 연계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두 가지 과목이 떠오르는데, 첫 번째는 사회학 개론 수업입니다. 일주일에 수업이 두 번 있었는데 하루는 학생들이 사회학의 고전 이론을 설명하는 책을 읽고 돌아가며 발제를 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학생들이 읽고 싶은 사회학 책을 선정해 모둠을 나누어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책을 선정하는 기준도 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읽고 싶은 사회학 책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투표를 통해 모둠을 구성했습니다. 저는 사회학자들 중에서도 푸코의 이론에 관심이 많았는데 책이 어려워 혼자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선정해 6명 정도로 모둠을 만들어 발제와 토론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예술사회학과 문화이론을, 과학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과학사회학 책을 선정해 읽었습니다. 돌아가며 발제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완벽히 숙지해야 했습니다. 암기형 공부보다 이렇게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공부하니 내용이 머릿속에 훨씬 오래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사회학 이론을 단지 지식으로만 접하고 싶지 않았고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토론할 때 책의 내용을 단지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계속 우리의 일상생활과 연결 지어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가 이론에서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을 때만 개입해 알려주시고, 그 외에는 저희의 토론에 전적으로 맡기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는 ‘학교에서의 규율’, ‘모범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학교에서 감시와 처벌의 효과’와 같이 학교를 둘러싼 제도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토론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수업은 과학철학 수업입니다. 문과생은 1학년 때 과학 1 과목 두 개를 선택해 들은 뒤로는 과학 과목을 필수로 듣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보다 문과생이 과학 과목을 들으면 이과 친구들에게 밀려 성적이 낮게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과학에 관심 있는 문과 친구들도 과학 과목 수강을 선택지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회학을 공부할수록 과학혁명의 영향으로 사회학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학혁명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학년 때 문·이과가 같이 듣는 과학철학을 수강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이과도 아니면서 왜 과학철학을 듣냐고 물어봤는데, 이 수업도 발제로 이루어졌고 문과가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이론들은 선생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주로 해당 이론이 어떻게 사회, 역사적으로 영향을 끼쳤는가에 중점을 두어 배웠습니다. 과학 이론이 나올 때는 흠칫했지만 이 수업을 듣고 과학-철학-사회학 등의 다양한 학문을 경계 없이 배울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실제로 세상은 특정 학문 안에서만 갇혀 변화하지 않고, 모든 분과들이 서로 연결되어 변화하는데 이 수업이 고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융합이 어떤 것인지 배운 수업이었습니다. 대학에 오니 교양과목으로 과학철학 수업이 개설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박 : 기억나는 고등학교 수업을 이야기하는데 ‘코칭하는 교사의 수업’이라는 공통점을 말하네요. 티칭과 코칭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이우고등학교 수업의 힘인 것 같습니다. 

역량 중심 교육, 과정 중심 교육, 경험 기반 교육, 코칭하는 교사 등에 대해 아직도 어렵고 감이 잘 안 잡히실 텐데요, 지금 말씀드린 사회학 개론에서 팁을 얻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경험이라는 것이 꼭 몸을 움직여 누군가와 무언가를 활동적으로 해야 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학 개론처럼 학생들이 학습 주제를 선정하고, 학습 활동을 기획하고 토론을 하는 것도 좋은 경험 기반 수업이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하는 것 자체가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수업입니다. 학생들의 무언가 구체적인 조작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면 됩니다. 형식과 방법을 선생님들께서 익숙한 글쓰기, 책 읽기, 토론하기, 발표하기 그런 형태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고교학점제 실현을 위해서는 학교문화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핵심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학생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학 당시 총학생회장이었죠? 이우고등학교의 학생 문화는 어떤가요?


이 : 모든 것이 학생들의 손에서 만들어집니다. 작게는 화장실에서 낭비되는 물을 어떻게 줄일지, 종소리를 무엇으로 바꿀 것인지부터 성인권 매뉴얼, 성교육, 채식하는 학생들을 고려한 급식 제안과 같은 학생인권에 관련한 활동들까지 다방면으로 학생들이 직접 발로 뛰며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심지어 축제와 체육대회는 물론 졸업식까지도 졸업하는 학생들이 기획하고 실행합니다.


특히 학생들 모두 학교의 주인으로서 선생님들과 수업을 포함한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동등한 주체로 협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 학기마다 ‘좋은 수업 만들기’라는 시간을 통해 각 교과목에서 배운 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 어떤 수업방식을 제안해보고 싶은지를 선생님과 수업 수강 학생들이 함께 논의합니다. 그 외에도 학교에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대자보가 학교 벽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학생들 모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고, 학생들도 동료 학생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주고 어떻게 해당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댑니다. 


무엇보다도 학교생활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함께 참여하자는 독려가 활발한 학생 문화입니다. 매년 세월호 주간을 학생들이 기획해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학년 톡방 등에는 좋은 행사나 캠페인이 있으면 함께 참여하자는 홍보글이 공유됩니다. 교내에서 노동인권과 관련된 서명운동을 받기도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모금을 진행하기도 하고, 동물권에 대한 이슈를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카드 뉴스로 공유해 교내에 채식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학생 문화가 학교에만 갇혀있지 않고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어떻게 세상에 참여할 것인지, 그 가치관을 나누는 문화가 활발합니다.


저는 이우고등학교의 학생 문화가 ‘꿈을 꾸는 사람들’이란 말로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관심 분야와 관련해 기획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이를 소개하는 글을 학년 톡방에 올려 프로젝트에 참여할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뮤지컬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래를 고등학생의 시선에서 재해석해 단편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기획안을 올렸고, 제 상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최종적으로 23명이 함께한 프로젝트로 끝났습니다. 또한 더 나은 세상을 함께 꿈꾸는 동료이기도 합니다.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제가 4월 16일 날 고삼층이 너무나도 적막한 것이 슬퍼서 노란색 메모지에 추모글과 그림을 몇 장 그려 창문에 붙였습니다. 다음날 가보니 다른 친구들도 그림과 글을 쓴 메모지를 붙여 노란 배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던진 고민, 문제의식 등에 높은 온도로 응답해주고 함께해줍니다. 


박 : 제가 이전 강의에서 고교학점제의 안착을 위해 제안한 여러 가지와 관련해 학생 사안이 염려되는 문제들에 대해 학생 문화를 성장시키면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나시죠? 물론 처음에는 학생 자치 교육 등과 관련해서 업무가 늘어날 수 있으나 학생 문화만 성장시키면 예상되는 문제들의 해결뿐 아니라 교사의 업무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우고등학교의 학생 문화가 그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총학생회장 및 학생회 임원들은 너무 바쁘죠. 가장 바빴을 때는 어떻게 지냈나요?     


이 : 이 : 고3 때 기억나는 날이 있습니다. 월요일 1교시가 학급 자치 시간인데, 가만히 앉아서 모둠 토론을 하다가 쌍코피가 터졌습니다. 보건실에 갔는데도 쌍코피가 2시간 동안 나서 어질어질했던 기억이 납니다. 4교시 끝날 때까지 양쪽 코에 솜을 넣고 있어서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친구들이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그 주간이 총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밀고 있던 공약을 실천하는 주간이었고, 동시에 시험 기간이어서 무리를 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총학 회의, 총학 팀 회의를 하다 학교 문이 닫히는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가서는 한 두 시까지 총학 관련 업무들- 예를 들어 회의록을 정리하거나, 회의 준비를 하거나, 홍보물을 만드는 일들을 하고 또 5시까지 과제와 시험공부를 하다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7시가 되면 또 일어나서 주섬주섬 학교를 갔어요. 그렇게 2~3시간씩 자면서 일주일을 보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우학교에서 총학생회장뿐 아니라 자치기구장을 맡는 순간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는데, 또 우리 손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욕심이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하는 일이니, 열정을 쏟아부어서 완성합니다. 그래서 자치 기구를 맡는 친구들 대다수가 자치 기구 일을 하느라 밤을 새웁니다. 그 때문인지 자치 기구를 하는 친구들과 이렇게 학교에 밤늦게까지 있다가 몇 시간 자고 다시 학교에 등교할 거면 차라리 학교에 몰래 숨어서 밤을 새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박 : 총학생회 담당 선생님이 그런 것들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본인 및 총학생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선택한 거죠?


이 : 네 


박 : 이우고등학교의 총학생회장의 삶을 너무나 고단합니다. 대신 학교와 선생님들은 그만큼 편하죠. 

학생문화에 관련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졸업생과의 대화 첫 번째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강에서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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