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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학 Sep 24. 2021

마지막 강.고교학점제 연구학교 졸업생과의 대화 2

이우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졸업생


안녕하세요. 오늘이 드디어 마지막 강이네요 

지난 시간에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의 이우고등학교 졸업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오늘도 아직 다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박찬학 : 안녕하세요.


이육샛별 : 네 안녕하세요.


박찬학 : 지난 시간에 총학생회장의 고단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했는데요, 재학 당시 총학생회의 활동과 관련해서 이야기 시작해보겠습니다.      



박 :‘내가 쓰는 성적표 발부’ 불씨총학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총학생회장 당시 총학 네이밍이 불씨 총학이었죠?


이 : 네 


박 : 왜 불씨라는 명칭을 사용했나요?


이 : 우리 총학생회는 학생 개개인이 학교생활과 학내 인권 문제 등에 대해 발화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투정이라고 치부될 수 있는 개개인의 사소한 불편함들이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개개인들이 지핀 불씨들을 총학이 이어받아 공적인 언어로 만들어 커다란 불길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미성숙한 불평이다’로 치부되었던 개개인의 의견들을 공론화하고, 이를 통해 변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박 : 불씨 총학이 이우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내가 쓰는 성적표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작성하게 하고, 각 가정으로 배부를 했죠.  내용을 보면 여러분이 교육문화주간에 작성한 내가 쓰는 성적표가 각 가정으로 발부되었습니다. 학부모님과 함께 성장의 속도 각자의 성장 모습을 담은 성적표를 보며 ‘이우에서 정말로 배운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참여하지 않은 학생의 경우 성적표가 발부되지 않습니다.  내가 쓰는 성적표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 : 내가 쓰는 성적표는 수치화된 성적표 대신, 학생 개개인이 한 학기 동안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낀 부분, 그리고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싶은 학교생활 속의 나를 적는 사업이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성적표의 내용을 작성해 주면, 총학 부원들이 실제 성적표처럼 만들고 그 아래에 마치 선생님이 생활기록부의 마지막에 의견을 적는 것처럼 짝꿍이 적어준 학생의 성장 모습을 정리해 기말고사 성적표와 함께 각 가정에 보냈습니다.

 

이 사업을 교육문화주간에 진행했는데, 이 사업은 학교가 발부하는 성적표 속 교과목의 등급만으로는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특정 과목의 성취도 외에는 나의 한 학기를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우리는 꼭 교과목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부문에서 성장하거든요. 예를 들어 자치 기구 회의를 하며 회의 진행 방법을 익히기도 하고, 교내에서 이뤄지는 캠페인 등에 참여하면서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개개인마다 각자의 성장 속도, 각자의 성장 모습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성적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성적이라는 일률적인 기준에 저항하고, 동시에 학부모님들께서도 이우고에서의 배움을 단순히 책상에서 하는 ‘공부’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친 ‘배움’으로 바라봐주시길 바랬어요. 성적표의 숫자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준위 활동, 프로젝트, 소모임, 그 밖 여러 교과 외 활동을 통해 성장한 학생의 모습을 간과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학부모님들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박 : 그리고 이 외에도 학생들의 학습권 강화를 위해 총학생회장으로서 어떤 일들을 했나요?     


이 :이우고등학교는 교육혁신을 지향하고 있어 이러한 교육 문화가 유지되는 것이 학생들의 학습권에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특히 학년이 내려갈수록 높아지는 입시 불안감에 수능 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 교육의 방향성에 의문을 품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단지 불안감 때문에 입시형 교육을 하자는 주장은 이우고의 방향성을 해치는 것이었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닌 다양한 배움을 위해 학교에 온 다른 친구들까지도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왜 이우학교에서 사교육 금지 서약을 맺기 시작했는지, 이우학교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가 추구하는 교육 가치관이 무엇이어야 할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삼주체 포럼을 진행했습니다. 학부모 교육문화위원회 위원장님을 포함한 학부모 대표님들, 학생회 중 교육문화위원회와 대안 교육 네트워크 소속 학생들, 선생님들을 패널로 모시고 이우학교의 교육 방향성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고 그 자리에는 마련한 의자들이 부족해 모두 서서 포럼을 들으실 만큼 많은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이 토론에서 각 주체들 모두 솔직하게 문제를 진단했고 대화를 통해 앞으로 각 주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했습니다. 특히 학부모님들의 변화가 두드러졌습니다.


 이우고등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에는 이성적으로 동의하지만, 자식은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는 마음에 집안에서 학생들에게 입시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왔는데 이 포럼에서 학생 대표들이 학부모님들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넘어갔습니다. 이를 통해 교육에 대한 삼주체의 교류를 촉진할 수 있었습니다.  

   

박 : 이우고의 많은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희망하죠? 본인도 대학에 진학했고요. 고3이면 대학 진학과 관련해서 가장 민감한 시기이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면 대학 진학에 유리한 활동들이 다른 어떤 것들보다 중요한 시기였을 텐데, 그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대학 진학을 준비했나요?     


이 : 저는 제가 대학에 가야 할 명확한 이유를 찾는 것에부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남들이 다 가니까 와 같은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더 배우고 싶은 게 있을 때 대학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1~2학년은 내가 앞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도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를 찾는 과정이었어요. 다양한 프로젝트, 준위 활동, 인턴십 등을 하며 저는 명확한 꿈이 생겼고 이를 위해 대학에 가서 더 심화된 공부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도 고3에 올라가면서 대학 진학을 위한 활동만 1년 내내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고2 때까지 정말 많은 준위 활동, 프로젝트를 하면서 보냈는데 갑자기 고2 겨울 즈음이 되니까 친구들이 서서히 수능을 걱정하며 인강을 끊고 저 역시도 대학 진학을 희망했기에 급한 마음에 인강부터 끊었어요. 2년 동안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으니 이제 1년은 공부만 하면서 지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독서실에서 수능 공부를 하는데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어요. 곁에서 친구들이 힘들어하고, 학교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문제들이 존재하는데 이렇게 책만 보며 공부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인생에서 1년쯤은 열심히 공부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도저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시한 채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어요. 무엇보다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고3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나름의 타협을 해서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 길을 포기하고 학생부 종합전형에 올인했습니다. 


대학에 맞춰서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길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학에 보여주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 주변에서는 대학이 원하는 내용들, 예를 들어 논문을 봤다거나 보고서를 쓴 내용들을 적으라고 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저는 자기소개서에 정말로 3년 동안 의미 있었던 일을 적었어요. 과목 선택을 통해 내가 어떻게 주체적으로 배움을 연결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어떤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었는지를 어필했습니다.      


박 : 사실 고교학점제의 시행과 관련해서 가장 염려하는 것이 대학 진학인데요, 이육샛별 학생의 사례가 그걸 우려를 극복할 수 있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믿음으로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현재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라는 대표적인 융복합 학과의 신입생인데 고등학교에서의 학습 경험이 이런 융복합 학과에 진학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이 : 고등학생 때의 학습 선택 경험으로 타 학문에 대한 호기심, 경계 없이 배울 수 있는 용기, 배운 내용들을 총합해 연결할 수 있는 시야를 배웠습니다. 


첫째로 호기심과 관련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사회학이 주된 학문적 관심사였지만 과학에도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물리학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대학에 와 이번 학기에 교양으로 사회학과 물리학을 같이 들을 만큼 호기심이 있는 분야에 도전해 배울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을 배웠습니다.


둘째로 경계 없이 배울 수 있는 용기는 단지 교과목을 선택했던 경험뿐 아니라 대부분의 수업이 프로젝트 형식으로 이뤄진 것을 통해 배웠습니다. 프로젝트 형식으로 내가 배운 내용들을 어떻게 타 분야와 연결시키고 세상에 알릴까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실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상, 디자인, 코딩 등을 독학해 배웠습니다. 이를 통해 어떤 기술이나 매체든 독학을 통해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이를 통해 경계 없이 배우고 자유롭게 융합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세 번째는 배운 내용들을 총합해 연결할 수 있는 시야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선택할 때 항상 이전에 수강한 교과목에서 생긴 호기심을 다음에 선택하는 교과목과 연결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방법론 시간에 배운 글로벌 불평등 문제를 배우고, 그다음 학기에 들은 세계지리 수업 시간에는 프로젝트로 글로벌 불평등이 어떻게 테러에 영향을 미치는지 지도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총합해 심화 영어 작문 수업 시간에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의 혁신을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제가 관심 있고, 배운 내용들을 다음 수업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결 지으면서 저만의 배움 지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빈곤이라는 다소 뻔해 보이는 주제가 다양한 교과목을 통해 다른 주제들과 결합하고 심화된 경험을 통해 저는 빈곤에 대해 남들보다 더 깊고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과목과 프로젝트 주제 선택을 통해 저만의 고유한 배움의 길을 만들어 간 것이 대학에 와서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점점 복수전공뿐 아니라 자기 설계 전공, 연계전공 등 학생들이 다양한 학과를 융합해 배우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복수전공을 떠올리면 자신이 진학한 학과에 취업을 위한 실용학과 하나를 복수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제가 호기심 있는 주제들을 배우려면 어떤 과목이 좋을까를 고민했던 경험들 덕분에 저는 제 진로를 위해 필요한 전공들과 수업이 무엇일지 알아보고, 저만을 위한 대학 교육과정을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박 : 자소서를 저와 함께 준비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자소서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 말한 것과 관련된 내용들이 자소서 1번에 잘 나와 있어요. 공개해도 될까요?


이 : 네          




고등학교 학습 경험에 관한 문항입니다.


 세계화의 풍요로움에 소외되는 삶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싶었습니다.  CNN인권 탐사보도에서 후원금을 위해 해외봉사 방문에 맞춰 아이들을 굶긴 사례를 보고 빈곤을 도움의 문제로만 보는 시선이 불편해져 사회과학방법론 수업에서 글로벌 불평등 발표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저개발이 아닌 잘못된 개발이라는 임마뉴엘의 말처럼 책 [죽은 원조 ]에서 정치권력과 결탁된 국제원조가 부패와 내전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보였습니다. 이러한 국제원조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만 달러를 투입하는 이유가 궁금해 [세계의 절반 구하기 ] 와 [빈곤의 종말 ]을 비교해 읽었습니다. 식민지 정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원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뿐, 그 본질은 같다는 관점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월러스틴이 세계체제론에서 제기했듯,초국적 기업 공장 건설과 해외원조는 경제종속으로 이어졌고, 빈곤문제에서 익숙하게 접한 도덕적 의무감에는 권력관계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빈민을 보는 우리의 익숙한 시선에 의문을 던지자,그 속의 불평등을 성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빈민이 문제 해결 과정에 동참하는 사회혁신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후 구체적인 현지 사회혁신 방법을 알아보고자 TED 영상, Coursera 사이트 등 다양한 영어 자료를 활용했습니다. 사회학 강의 속 [Improving Access to Uban Services for the PooR] 논문은 국제기구가 슬럼가에 수도를 설치해도 경제권이 없는 여성이 수도 이용료를 지불할 수 없는 구조를 지적했습니다. 기술의 도입보다 지역민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해결책이 필요했고,이에 심화영어작문 수업 콘퍼런스에서 화장실 부족 문제를 바이오 플라스틱 비닐팩으로 해결하고 비닐팩을 회수하고 지역 농민에게 비료로 파는 여성 일자리까지 창출한 외국 스타트업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빈곤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은 시혜적인 무상지원과 대규모 투자가 아니라,현지인의 삶에 대한 공감이 바탕이 된 ‘정확한 관찰’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계속되는 연계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교육과정을 경험했는지 잘 보이시나요? 

필수 이수 단위를 채워야 하는 교과를 제외한 완전 자유 선택 과정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진로와 학습을 설계하고 그것에 맞게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서의 학습 과정입니다. 


최근 축하받을 일이 생겼죠. 예술 관련 XR 콘텐츠 제작 공모에 선정돼 무려 5,000만 원의 사업비를 받게 되었죠. 융복합 학과생이라지만 신입생이 그것도 고등학교 때 인문 사회계열 과정을 이수했던 사람이 XR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어떤 것이었나요? 팀에서 주로 어떤 역할을 담당했나요?


이 : 이번에 선정된 XR 콘텐츠 공모전에서 공모전 공지가 나오기 이전부터 소설책을 읽고 관객과 인터렉션이 많은 작품을 기획했는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이 XR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공모전 공고를 보고 작품 구현에 필요한 앱 개발, CGI 구현이 가능한 친구들을 모아 지원했고 제가 기획한 스토리로 공모에 당선되었습니다. 저는 팀에서 리더를 맡고 있고, 스토리 기획, 비주얼 디렉터와 AR 앱 개발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저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고등학교 때 이과 출신으로 저보다 훨씬 개발을 잘하는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주로 제가 구현하고 싶은 스토리와 메시지를 기획하면 다른 친구들이 이를 어떻게 현실로 구현할 것인지 기획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술을 이해하고 있는 문과생이라는 것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과로서 배운 인문 사회학적 내용들로 스토리를 구상하고, 개발자들과 소통하며 저희의 기획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 그래도 이공학적 역량이 분명 필요할 텐데요 이공학적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있다면 그런 역량은 어떻게 갖추게 되었을까요?     


이: 저는 고등학생 때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주로 영상 제작을 통해 이를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인터뷰 영상, 단편 뮤지컬 영화 등을 제작했습니다. 저는 영상도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영상 외에도 내가 생각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들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며 코딩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세계사 수업 프로젝트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언어를 분석했는데, 이때에는 제가 한 것이 코딩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나중에 대학에서 데이터 분석 동아리에 들어가 제가 한 것이 코딩 중에서도 자연어 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과지만 이렇게 기술을 기술로만 접근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공학적 기술들에 벽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공학적 기술들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던 일들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도구들이 추가되는 기분이라 무척 즐겁게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저는 기술을 익히는 올바른 순서는 코딩을 배운 후 이를 어떻게 써먹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구현하고 싶은 스토리나 프로젝트를 먼저 구상한 후 이에 맞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 고등학교 때 원하는 대로 과목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우고등학교도 원하는 과목 선택과 관련해 제한이 있죠? 어떤 제한이 있나요?     


이 : 첫째로 성적입니다. 다양한 교과목이 있어서 학생들이 분산되기 때문에 수강 정원이 굉장히 적어요. 그래서 학생 수가 적은 수업은 아예 내신 점수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내신 점수가 나올 수 있는 학생 수보다 조금 더 정원이 많은 수업들에서는 총점수가 높아도 내신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저는 총점수가 99점이었는데 정원수가 딱 내신 점수가 나올 수 있는 수였고, 게다가 동점자가 있어서 3등급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고교학점제 시행 후 대학에서 수강 정원을 고려하며 내신 점수를 심사한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둘째는 실제로 과목 표에는 다양한 과목들이 있지만, 선생님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교과목이 개설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흥미로운 교과목들이 많아도 실제로 개설되는 수업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셋째로 이수체계 때문에 한 번 수업을 놓치면 그다음 수업을 듣기 어렵습니다. 저는 2학년 2학기 때 코딩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겨서 이과 친구들이 듣는 자료구조 수업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수업을 들으려면 2학년 1학기 때 선수 이수 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답변은 받았고, 매 학기마다 코딩과 관련된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문의를 넣었지만 2학년 1학기 때부터 해당 트랙의 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아예 2년 동안 학교에서 코딩 과목을 듣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관심사는 매 학기마다 변할 수 있으니, 트랙의 기본 교과와 심화 교과를 한 학기에 동시에 열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박 : 앞으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공통 과목 외에는 성취도 평가를 하고, 학교 공간과 관련해서는 이미 학교 공간혁신 사업에 대한 충분한 지원으로 수업 활동 공간도 충분하고, 다만 교강사와 관련해서 충분한 지원이 보완되면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박 : 두 차례에 걸쳐 대화를 나누어보았는데요, 고교학점제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여러 선생님들의 우려를 기대와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육샛별 학생도 고생하셨고요, 마지막으로 고교학점제 시행과 관련해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이 :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배움의 주체가 되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고, 자기만의 배움 로드맵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교학점제의 특징을 더욱 살리기 위해서는 수업의 방식도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배움과 연구 문제를 발견하고 수업 시간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생님들께서는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겨버리는 것이 불안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직 진로가 뚜렷하지 않은 아이는 과목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학생들은 모두 저마다의 관심사와 흥미가 있습니다. 진로가 뚜렷하지 않고 뭘 좋아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강점을,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이를 발휘할 적절한 장을 찾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이 호기심이 생기는 분야를 주저 없이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배움 로드맵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선생님들께서 좋은 코치가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00명의 학생이 있다면 100명 모두 다른 교육과정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 100명의 학생이 있다면 100가지 교육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육샛별 학생의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고교학점제 강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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