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족주의의 이해

by 박찬학

│민족주의(民族主義)란?

각각의 민족이 다른 민족과 자신을 구별하는 고유의 정체성, 문화, 생활 등을 보존하여 자결(自決)이 가능한 국가를 형성하고 그 후에는 그 독립성과 통일성을 유지, 발전시키려는 움직임 또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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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우리 민족’과 ‘다른 민족’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 언어, 지역, 문화, 종교, 배타의식, 귀속의식







근대 민족주의의 등장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유대감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왕’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민족의식’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봉건적 신분제를 철폐하고 ‘우리’라는 연대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했다. 신분제적 질서가 존재하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를 아우르는 민족의 수직적 통합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둘째, 민족의 수직적 통합을 정당화시켜 주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봉건적 신분제가 폐지된다고 해도 새로운 사회 계급 간의 모순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계급적 모순을 무마할 수 있는 이론적 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민족주의의 존재 조건이기도 한 이 두 가지 전제를 충족시켜 준 역사적 사건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왕과 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서 부르주아 세력은 민중 세력과 동맹을 맺어야 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민중과 부르주아를 ‘우리’로 묶어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였다. 이렇게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에서 부르주아 세력의 필요에 의해 등장한 근대 민족주의는 나폴레옹을 통해 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유럽 사회에 전파되었고, 이를 민족국가(국민국가)라고 부른다. 각각의 민족은 자신의 고유한 국가를 이룰 권리를 갖고 있으며, 국가라는 틀 안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시킨다는 관념이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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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1. 위의 글을 참고하여 민족의식이 성립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 보아라




2. 1번 문제의 내용과 본문의 내용을 참고하여 프랑스혁명을 통해 근대 민족주의가 등장한 이유를 설명해보아라







| 한국사에 나타난 민족주의

민족인가? 국가인가?


│참조 1│
조선사는 곧 조선민족사이니 우리는 유사 이래로 동일한 혈족이 동일한 지역에서(비록 삼국시대 말년에 영토의 북반과 그 주민을 이실離失하기는 하였지만) 동일한 문화를 가지고 공동한 운명 하에서 공동한 민족투쟁을 무수히 감행하면서 공동한 역사생활을 하여 왔고 이민족의 혼혈은 극소수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조선에 있어서는 국민이 즉 민족이요, ㉠민족사가 곧 국사가 되는 것이다.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는 조선 역사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 손진태, <조선민족사개론> 中

│참조 2│

다음은 김춘추의 청병 외교에 대한 손진태의 견해를 보자. 그는 “신라로 하여금 외민족의 병력을 빌려서 동족의 국가를 망하게 한 반족反族적 행위를 하게 한 것은 귀족 국가가 가지는 본질적 죄악이요, 그로 말미암아 민족의 무대는 쪼그라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김춘추가 당태종을 만나 청병한 것은 반민족적 행위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단일민족이라고 보고 무엇보다 민족을 우선시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당시 삼국인들은 그들이 하나의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을 단일 민족이라고 하며 신라의 청병을 비판한 것은 손진태 자신이다. … (중략) … 백제, 고구려와 서로 다른 국가를 유지하던 신라가 백제나 고구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청병 외교를 벌인 것은 신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종욱, <민족인가, 국가인가?>


손진태(1900~?)

손진태는 민속학자이자 역사학자로, 해방 후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가 제창한 ‘신민족주의 사관’은 민족 내부의 균등과 단결, 그리고 그에 기반한 민족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정리, 비판하는 방식의 역사 서술 형태를 취했으며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조선민족사개론>, <국사대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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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 같이 글쓴이가 민족사가 국사가 된다고 말한 까닭은 무엇인가?





2. <참조 2>의 글쓴이가 <참조 1>의 견해를 비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 허구의 민족주의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가) 나는 인류학적 정신에서 다음과 같은 민족의 정의를 제안한다.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이다. 민 족은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겔러는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는 민족이 없는 곳에서 민족을 발명했다."라고 했다.
-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中

(나) 예컨대 19세기 말에 프랑스 농민들에 대한 사회사적인 조사가 있었는데 제목이 'Peasant being into French man'입니다. 해석하면 '프랑스 사람이 된 농민들' 정도가 되는데, 이 조사에 따르면, 19세기 말의 노르망디 지역의 농민들은 대부분 평생 동안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4km 넘는 곳을 여행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프랑스라는 실체를 모르는 것이죠. 그런데 의무교육을 시키고,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같은 걸 읽히고, 사투리 못쓰게 하고 프랑스 표준어를 쓰게 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들이 ‘나는 프랑스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취득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수입된 거죠.
-임지현, <적대적 공범자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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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 (나)의 글을 참고하여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라는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보아라.










| 민족주의와 고구려

고구려사가 한국사입니까?


Q : 근대 국민국가의 개념 틀로 고구려사에 접근하면 안 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지현 : 고구려사가 한국사라 주장하는 이들은 고구려인이 한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생겨난 게 고작 100여 년 전이라는 겁니다. 한반도의 경우 민족이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건 20세기 초였거든요. 북한의 사학자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마음대로 의역을 해서 '민족'이라는 말을 뽑아내곤 하지만 (웃음),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어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근대에야 생긴 개념을 고대사에 대입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1930년경에 폴란드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의 기록을 보면, 지금의 벨로루시와 접경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폴란드 사람입니까, 벨로루시 사람입니까?’라고 물은 대목이 나옵니다. 질문자가 들은 답변이 걸작입니다. 그냥 ‘우리는 여기 사는 사람들이다’였다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가 20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갔다고 가정하고, ‘당신 한국사람이요, 중국사람이요?’ 물어본다고 합시다. 고구려 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당연히, 이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자면, 당시에 고구려의 지배력이 미치는 사는 사람들은 다 자기들이 고구려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고구려라는 이름조차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숱할 거예요. ‘고구려’라는 실체도 인식 못했을 겁니다.

Q : 민족이 근대 이후에야 형성됐다는 주장은 제도 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과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임지현 : 그럴 겁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사’에서는 이런 말 안 하니까요. 그렇지만 이게 상식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우리는 하나'라는 구성원 간의 동질감을 그 전제로 하는데, 신분제-반상제가 존재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과연 그게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가령 기자는 양반이고 나는 상놈이면, 내가 기자한테 저 사람은 우리 동포고 민족이라는 느낌을 가졌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사료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임진왜란 때 한 의병장이 남긴 기록 중에 <쇄미록>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 보면 이런 한탄이 나옵니다. 왜군이 쳐들어왔는데 저 아랫것들이 의병 모이라면 하나도 안 모이고, 일본군 환영해서 걱정이라는 것이지요. 그때 일본군 점령정책이 동네마다 쌀 나눠주고 먹을 것 나눠주는 것이었거든요.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민족의식이 투철한’ 민중들이었다면 일본군에 저항하고 게릴라전을 벌여야 했을 텐데, 그 의병장에 따르면 오히려 환영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나라도 그랬을 거 같습니다. (자신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하고 하고 착취나 하는 양반들이 물러가고, 갑자기 쌀 나눠주겠다는 놈이 들어온 건데 굳이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민족이 쳐들어올 때마다 관민이 일치단결해서 싸웠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들어오기도 전에 서울에 궁성 불태운 건 노비들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요. 이런 것들이 지킬 것이 있는 집단과 지킬 것이 없는 집단의 차이입니다.

Q : 그렇게 본다면 국사 자체를 민족과 결부시켜 서술하는 지금의 국사 교과서는 거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틀렸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건 거의 왜곡 수준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왜곡'된 역사 서술이야말로 주류이고, 현실에서는 여전히도 공신력 있는 '사실'로 통용되고 있는데요.

임지현 :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사학계의 관성이라든가, 폐쇄적인 분위기라든가 등등.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국사’라는 것 자체의 성격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국사라는 게 과거에 대한 이미지를 신화화시켜서 만들어 낸다는 속성이 있거든요. 사실 국사 자체가 국가-이를테면 대한민국이나 일본-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인 것이죠. 국사, 다시 말해 내셔널 히스토리 national history에서 어딜 가나 발견되는 특징은 지금의 국민국가를 정점으로 하고, 과거의 역사를 지금의 국가가 만들어지는 발전과정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다 보면 지금의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 불필요하거나, 모순되거나, 좀 헷갈리게 만드는 사실들은 다 제거하게 되는 거죠. 그 <쇄미록> 얘기만 해도 대학원생들에게 숙제를 내주니까 찾아온 자료인데, 대학원 애들 눈에도 다 보이는 자료들이 국사에선 다 은폐되어 있는 거죠.

-임지현, <적대적 공범자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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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1. 저자가 ‘고구려사는 한국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근거를 윗글을 참고하여 정리해보아라.




2. 저자가 지적하는 한국에서의 국사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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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보기


먼 고대의 역사 지리에 중국, 한국, 일본과 같은 근대의 역사적 실재를 투영하는 시대착오주의는 사실상 동북아시아의 각종 역사 교과서 등에서 흔히 발견되는 의도적 개념 장치라고 생각된다. 역사 단위로서의 근대 국민 국가는 먼 옛날부터 분할될 수 없는 하나의 실재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유포함으로써, 시대착오주의는 국민 국가의 본질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국가 권력의 헤게모니가 시민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 (중략) … 그러므로 “근대의 국경”에 갇힌 “역사의 변경”을 구출하는 작업은 단순히 역사 서술의 인식론적 시시비비를 넘어서, 시민 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민족주의의 단단한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윗글은 본문의 저자가 쓴 다른 글 중 일부이다. 그가 말하는 “근대의 국경”에 갇힌 “역사의 변경”을 구출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윗글을 참고하여 해석해보아라.


*변경(border):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이루어지는 변두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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