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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학 Apr 15. 2016

세월호 추모식

4월 15일

다시 4월 


또 다시 4월이다.

올해는 총학에서 세월호 주간과 세월호 추모식을 준비하였다.

5일간의 세월호 주간과 그 마지막 날에 세월호 추모식을 함께 하였다.





4월 15일 오전. 일과전 전 교직원과 학생이 30분간 세월호 추모식을 열었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연주와 중학교 총학생회장, 고등학교 총학생회장, 그리고 교사 대표가 각각 추모사를 낭독하고 희생자를 희망 묵념을 끝으로 세월호 추모식을 마쳤다. 


그날 이후 교사로 산다는 것


*오늘 교사 대표로 준비하고 낭독한 글입니다.


“세월호 앞에서는 모든 말길이 끊어진다. 묵묵히 그분들 곁에서 봉사하는 무명의 헌신만이 빛나거늘. 침묵이 예의다. 그럼에도 벌거벗은 대한민국. 이 야만의 시간을 직시하는 것도 살아남은 자의 피할 수 없는 책무”

 -최원식, 문학평론가 


이 평론가의 글처럼 이 야만의 시간을 직시하는 것도 보통의 살아남은 자의 피할 수 없는 책무인데 교사의 책무의 무게는 그에 비할 바 없이 크다.


보통 사람들의 분노와 원망, 미안함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넘어 그날의 일들은 나에게 교사인 우리에게 우리가 행해왔던 교육의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가 교육을 행함은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다’, ‘아이들의 삶을 살리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가장 인간다운 삶을 불어넣으며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온건하게 살아가게 하는 그 삶을 살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2014년 봄. 그렇게 우리의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으로 밀어넣었다. 


‘가만히 있으라’ 라는 한국의 교육의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졌던 폭력적 명령과 그에 따르던 아이들의 희생은 처절하게 교육과 삶을 성찰하게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학교와 사회 그리고 국가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 아직까지 진보한 담론 형성에 도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참여와 공론의 장(場)이 사라져 버리고, 소통과 진실에 대한 부재는 혼돈 그 자체이다. 가장 소중한 학생들의 삶의 공간, 그렇게 익숙하고도 가장 슬펐던 교실은 어느 순간 모든 한국 교육의 고통과 억눌림 그리고 불가항력의 저항으로 정지해 있다. 어떤 새로운 무엇이 이 과정을 회복할 수 있을지, 시작과 끝에 대한 무한의 책임과 성찰은 가능한지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제 학교는 학생 개인의 실존에서 출발해야 한다. 개인의 성장과 성찰 없는 교육은 또다시 보이지 않는 매우 추상적인 집단을 위한 희생, 인내, 침묵을 강요한다. 이제 우리는 학생으로부터 출발하여, 학생 개인을 위한 교육을 그리고 교육의 장으로서 사회를 재정의 하는 진보한 과정을 지향해야 한다. 학생 개인의 실존, 개별교육과정, 진정한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공공하는 교육의 장으로써 사회 만들기가 학교의 새로운 교육 담론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저렇게나 떠들썩한데 여기만 이렇게 소리를 죽여 놓았다’라는 어느 고등학생의 말처럼 우리는 더 이상 아이들의 목소리를 낮춰놓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조건에 맞서 부단히 저항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보다 더욱 거세게 더욱 큰 목소리로 아이들의 존엄성을 대변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하늘도 닮고 싶다는 쪽빛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아이들을 그리고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하늘보다 푸른 쪽빛 세상에서 다시금 살아가게 하여야 한다. 


다시 4월. ‘여기까지만 하고 멈추라’하는 사람들, ‘이제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보다 더 아픈 말은 없다.


“인간의 유일한 존엄은 조건에 맞서 부단히 저항하는데서 나온다“ - 알베르 카뮈 




https://youtu.be/OSfhh1lh-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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