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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학 Apr 22. 2016

[르포] 벚꽃나무가 사그라지는 봄의 기억

1회 : 2년 후 다시 찾아온 안산 그리고 기억식

*이우고등학교 3학년 김환주 학생이 쓴 글입니다. 

https://www.facebook.com/whyfipi/?fref=nf


낡은 걸음

버스에서 내려 기억식이 진행되는 곳까지 걸어간다. 아직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흐렸고, 바람은 이마를 훤히 드러나게 할 만큼 나름 세게 분다. 길목에 벚꽃 나무가 줄줄이 심어져 있다. 길바닥에는 분홍빛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아직 봄인데, 벚꽃은 스멀스멀 지고 있었다. 공원을 걷다보니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공원 구조물 벽에 ‘분향소’ 라는 종이와 함께 화살표가 붙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종이를 바라보았다. 비를 맞았는지 흰 종이는 회색빛을 띄고 있다.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린아이

도착했을 때 기억식은 이미 꽤 진행된 듯 했다. 기억식 무대 앞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함께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는 다양한 사람들. 사람들은 모두 각자 어딘가에 노란리본을 매고 저 멀리 보이는 무대 양 옆 전광판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그 중엔 어린아이도 있었다. 왼손엔 노란 풍선을, 오른손엔 아빠 손을 잡고 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물을 닦는 아빠와 전광판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빠가 왜 우는지 몰라서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가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왜 울어요?” 아빠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아이 머리를 쓱 넘긴다. 

전광판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22분, '사랑합니다. 모든 분들을’”

그것은 단원고 2학년 4반 故 김웅기 형이 세월호에서 보낸 마지막 톡이었다. 웅기 형의 소리 없는 문장을 형의 어머니가 대신 읽으시면서 추모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지난 2014년 4월 20일, 정부의 조속하지 않은 대응에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이 “우리 애를 살려내라! 우리 애를 살려내라!” 라고 외치며 청와대로 행진하려던 모습, 유민 아빠가 46일 동안 단식 농성을 했던 모습, 물대포가 시위대를 향해 이리저리 휘젓는 모습, 천만 서명을 받고 있는 유가족과 서명에 동참하는 시민들의 모습 등 지난 2년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행동해 왔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반팔 티셔츠에서 오리털 점퍼로 시간은 흘렀는데, 가족들이 들고 있는 피켓의 문구는 바뀌지 않았다.

“참사 원인을 밝혀질 때까지 잊지 말아주세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분향소 앞에는 피켓이 서 있다. 


https://youtu.be/6gWd-Q5TBbM

오마이TV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식 영상. 49:30초 부터.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이 차례로 무대 위에 올라온다. 2년 전 세월호 안에서 시신이 발견된 내 초등학교 선배 故 이영만 형의 어머니, 몇 달 전 세월호 유가족 치유 공간에서 뵈었던 故 이창현 형의 부모님. 세월호 유가족 합창단이었다. 표정은 아주 덤덤하셨다. 마치 여러 번 무대에 올라간 경험이 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대열이 맞추어졌다. 그리고 주먹을 꼭 쥔 채로 ‘어느 별이 되었을까’ 라는 노래를 합창하셨다. 심하게 떨리는 성대가 마지막 가사를 읽는다.“사랑하는 내 별이 뜬다. 지지 않을 내 별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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