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가의 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Aug 10. 2019

배낭 속의 책 한 권과 함께 하는 여행!

여행자의 독서


여행의 피가 들끓는 계절입니다. 지금쯤 일상의 시간을 쪼개어 탈출을 감행한 분도 계시겠지요? 만약 꿈을 이루었다면 여러분이 당도한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요? 길 위의 시인 이병률은 여행을 상상력의 밑천이라고 말합니다. 상상력은 한 뼘의 사고를 한 품의 사고로 확장시키며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죠. 그는 조금 나은 상상력의 밑천을 짊어지고 돌아오기 위해 먼 길에 온몸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베테랑 여행자처럼 내가 뒤척여 스스로 뒤집어놓지 않으면 삶이란 그저 그런 모습으로 흘러갈 뿐입니다. 책과 함께 여행하는 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까요



여행의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의 특별한 여행법

우리를 설레게 하거나, 두렵게 할 미지의 땅이 점점 좁아지는 이 시점에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이 언급했던 '아우라'의 단어가 현대의 여행에도 어김없이 적용됩니다. TV와 잡지, SNS 등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와 이미지들로 우리 시대의 여행은 감동의 '아우라'를 상실한 지 오래기 때문입니다. 이젠 누구든 돈과 시간만 있다면 어디로든 쉽게 떠날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여행이 그저 새로운 풍경을 스치거나, 나도 ‘여행을 다녀왔다’는 확인에 불과합니다. 여기 그가 가는 곳마다 그 땅에 어울리는 책을 가져가 읽는 여행자가 있는데요. 전문 방랑꾼 이희인이 경험한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겹이 두텁습니다. 그의 책 『여행자의 독서』 두 권으로 그의 밀도 높은 여행을 만나보시죠!


 책과 동행하는 여행자, 이희인
 
저자 이희인은 현실은 광고 카피라이터에 적을 두었으나, 내면은 여행과 문학, 사진, 음악, 연극에 관심을 쏟으며 '크눌프'적인 삶을 사는 유랑인입니다. 그는 <월간 포토넷>, <해피 2 데이>, <황해문화>, <사람과 책> 등에 여행과 광고, 사진에 관한 글을 기고, 연재해 왔습니다. 그가 펴낸 책으로 『여행자의 독서』 외 『광고에서 아이디어를 훔치다』, 『사진 광고와 생각을 통하다』, 『현자가 된 아이들』 등이 있습니다.


여행자의 독서 첫 번째 이야기 | 책을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첫 번째 이야기 (출처: 네이버 북)


하나. 마음을 적시는 구원과 사랑


출처: 네이버 북


저자는 『여행자의 독서』 첫 권에서 직접 밟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지중해 등 여행지와 문학 작품을 아울러 소개하는데요. 책의 1장에서 그는 시베리아에서 네팔 히말라야를 넘어 카슈미르, 인도까지의 여정으로 『백야』,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잃어버린 지평선』, 『자정의 아이들』,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의 소설과 함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2장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길은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을 거쳐 일본과 호주의 태평양의 풍광을 소개합니다. 이 곳과 관련 있는 책 중에서 특히 사랑스러운 책들이 많은데요. 저자와 같이 훌쩍 여행을 떠나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파이 이야기』을 다시 읽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냥 읽어도 감동스러운 소설의 행간에 그와 연관된 장소가 더해줄 느낌이 궁금해집니다.


둘. 이야기를 따라 떠난 여행에서 찾은 자아


출처: 네이버 북


스페인, 그리스, 모로코 지중해의 국가들과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또는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까지 사막의 딸을 횡단할 때 그의 곁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이 함께 합니다. 바로 『오이디푸스 왕』, 『인간의 대지』, 『연금술사』,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내 이름은 빨강』 등입니다. 마지막 4장에서 저자는 쿠바를 거쳐 페루, 볼리비아, 칠레,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아르헨티나)까지 라틴아메리카 종단 길을 걷습니다. 그는 이 곳에서 에밀 아자르, 보르헤스와 체 게바라를 동행자로 삼아 자아를 찾는 여정을 떠나죠.
 
'여행은 이름 난 장소와 풍광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사람의 냄새가 곧 여행의 향내가 됩니다'. (<여행자의 독서> 첫 번째 이야기)
 
저자는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마다 자신의 기억 속의 책이나 그곳에 연관 있는 책을 꺼내 듭니다. 책으로 여행하고, 여행으로 책을 읽는 그는 현재의 시공간에 작품 속의 여러 이야기를 부려 놓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짧게 스쳐 지날 수도 있는 낯선 땅은 그만이 발견한 의미 있는 장소로 변화되는 거죠. 무엇보다 그가 책에서 언급하는 도서 목록이 놀라운데요. 그가 알려주는 책 속 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 길을 안다는 것 | 길을 간다는 것


출처:네이버북


『여행자의 독서』 2권은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여행지와 그곳에서 태어난 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와 변방의 유럽 지역,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남인도, 캐나다 로키, 브라질,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등 23곳의 나라와 함께 총 57권의 책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각 장마다 여행의 '추억'과 '희망', '낙원', '낭만'을 탐구하는 여정을 다루고 있는데요. 1권에서와 달리 저자는 이 같은 상념을 찾아 떠나려는 이를 만류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본 독자라면 '가 보지 못한 곳'과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갈망이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 '추억'으로 닿는 길 위의 독서


출처:네이버북


한 권의 책으로 여행을 꿈꾸어본 적 있으신가요? 그는 『둔황』을 읽고 오랫동안 실크로드를 마음에 품었다고 합니다. 『둔황』은 중국 송나라 때 서역을 무대로 벌어지는 모험담입니다. 그는 세 번의 실크로드 기행에서 『둔황』, 『누란』, 『죽음의 한 연구』을 읽습니다.
 
여행과 책은 대개 세 지점에서 만난다. 여행 전과 여행 중, 그리고 여행 후. 일상에서 만난 어떤 영감에 가득 찬 책은 독서가를 여행으로 내몬다. 길 위에서의 책은 여행자의 고달픈 길에 길동무가 되어준다. 여행 뒤 만나는 책은 다녀온 땅에 대한 지식과 감상을 완성시켜준다. 어느 지점에서도 책은 요긴하고 그만큼 여행은 풍부해진다.
『여행가의 독서』 22p

둘. '희망'과 '낙원'으로 닿는 길 위의 독서


출처: 네이버북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폭력에 노출된 역사를 반복하고 있죠. 저자는 옛 유고 연방을 둘러보며 유럽인의 무관심을 비판했던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떠올립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곳의 삶을 스쳐 지날 뿐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많지 않은데요. 그는 책으로 여행하는 과정을 통해 그 대상으로 깊숙하게 들어갑니다. 슬로베니아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크로아티아에서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을 읽는 과정이 그러한데요. 아고타 크리소트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풍경의 이면에 헝가리 인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음을 깨닫는 스승으로 삼습니다. 

저자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 대표적인 휴양지에서 선택한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암울한 주제입니다. 그가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 읽었다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낙원에 대한 다른 시선을 발견하게 해 주는데요. 소설은 한 평범했던 가정부가 이름난 언론사 기자를 살해한 엽기적인 사건을 쫓는 내용입니다. 책은 카타리나라는 한 여인의 사적인 폭력을 유발한 무소불위의 공적 폭력이 우리네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합니다. 책을 따라 읽으면서 이 소설과 비슷한 영화 한 편이 떠올랐는데요. '로열 어페어'의 주인공 매즈 미켈슨이 칼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사회 공동체의 어두운 집단 본성을 고발하고 있죠. 결국 낙원이란 지구 상의 어떤 지역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 인간의 모습 안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인데요. 여행과 함께 하는 일련의 독서가 사고를 확장시키고 우리를 삶의 다른 국면으로 데려다줍니다.


셋. '낭만'으로 닿는 길 위의 독서


출처: 네이버북


마지막 장은 낭만을 찾아 떠나는 캐나다 로키와 브라질, 아프리카 여정입니다. 이 여행에는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존 쿠체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추락』등이 함께 합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아름다운 풍광 속에 내포된 환경재앙의 조짐, 인간의 평등과 존엄의 문제를 숙고합니다. 그는 그가 보는 모든 장면에서 고민하고, 책 속의 진실과 차창 밖의 진실이 어떻게 만나고 갈등하고 화해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습니다. 어쩌면 여행자란 영원한 오해誤解자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이 여행자의 손에 책이 필요한 까닭이겠죠.
 


꽤 두꺼운 책을 손에서 내려놓는 순간 마치 세계일주를 돌고, 수십 권의 책을 읽은 듯한 착각이 드는데요. 이 책은 여행기나 서평, 어느 장르로 읽든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저자가 짧게 언급한 책들을 나의 독서 리스트에 추가해도 좋을 듯합니다. 감동이 희박해진 여행의 시대, 길 위에서 마주칠 단상을 단단히 비끄러매기 위하여 한두 권의 책과 함께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SK하이닉스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