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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y 13. 2016

마음을 읽다

<마음사전>, 김소연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특별한 제목의 사전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마음사전』이다. 책 표지가 나달 나달 하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마음 때문에 갈등하고 힘든 사람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이 책은 김소연 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정제된 언어의 우물을 더디고 느리게 길어 올린다. 1996년 첫 시집 『극에 달하다』이후 세 권의 시집을 냈을 뿐이다. 마음사전 또한 책의 가벼운 부피와 달리 그녀가 지닌 통찰의 깊이가 느껴진다. 특별한 이름의 사전 속에 어떠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소중함과 중요함의 차이


김소연은 십수 년 전부터 “마음 관련 낱말 하나하나에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며” 마음의 뉘앙스를 세심하게 관찰해왔다. 처음에는 칠백 가지가 넘는 마음의 낱말들을 모아서 수첩에 적었다. 그 곁에 미세하게 차이를 지닌 단어를 보태어 천 가지가 훌쩍 넘는 마음에 관한 언어를 발굴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의 결들에 비한다면 마음을 지칭하는 말들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의 경영이 이 생의 목표이므로 생활의 경영은 다음 생으로 미뤄놓고 있다.”는 김소연 시인. 그녀가 일군 마음사전을 펼치니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느라 마음 밭을 버려둔 스스로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 것일까? 우리는 흔히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을 착각하고 산다. 저자는 ‘중요하다’와 ‘소중하다’의 의미를 동어반복적인 사전과 다른 말로 정의한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57P) 


그녀는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작은 오차가 우리를 실제와 전혀 다른 삶의 방향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처럼 그녀가 포착해낸 마음의 낱말들은 헤아리기 힘든 마음속을 명징하게 비춘다. 





‘마음’에 관한 ‘사전’


『마음사전』은 총 스물여섯 장의 목차에 마음을 가리키는 사물과 낱말을 담고 있다. 마음 때문에 존재하는 것들, 마음에 자리하는 감각들, 감정, 기분, 느낌의 차이와 감정의 원형을 들여다 보고, ‘배신의 개운함’이라는 뜻처럼 동전의 양면 같은 마음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책 순서대로 차근히 읽어도 되지만 사전의 원래 용도처럼 책 속 ‘마음 찾아보기’ 색인을 참고해 자기감정을 수시로 점검해 보면 좋겠다. 


책 안에는 작가가 선물한 또 다른 보너스 코너도 있다. 책의 뒤편 ‘틈’에 담긴 300여 개의 감정 단어에 대한 그녀의 해석이 독특하다. 예를 들어 그녀는 ‘가늠하다’을 ‘당신을 한 뼘 한 뼘 재어보는 이 황홀한 오차’라고 말한다.  


이 책의 특징은 일반 사전이 지닌 순환 정의와 언어학적인 정의를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언어는 곧 생각이요, 마음이다. 하지만 마음의 갈피를 세세히 표현하기에 사전적인 말뜻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김소연 시인은 그녀만의 예리한 감성과 직관으로 같은 단어에 묶인 마음의 뉘앙스 차이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외로움’을 형용사가 아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동작 동사로 여긴다. 텅 비어버린 마음의 상태가 외로움이다. 반면 ‘쓸쓸함’은 마음의 안쪽보다는 마음 밖의 정경에 더 치우쳐 있다. 외로움은 주변을 응시한다면, 쓸쓸함은 주변을 둘러본다. 마음을 둘러싼 정경을 둘러보고는, 그 낮은 온도에 영향을 받아서 마음의 온도가 내려가는 게 ‘쓸쓸함’이라고 말한다. (‘마음사전’ 92p에서 인용함) 


‘마음사전에 새롭게 정의된 말로 뭉뚱그려져 있던 감정에 새로이 이름을 붙여가노라면 정리 안된 마음 세계가 차츰 명료해지는 기분이다. 그녀의 마음경영 작업이 우리에게 현실 이상의 깊은 현실과 만나게 하는 시선으로 단련시켜 주기 때문이다. 



 


내 마음과 네 마음이 궁금한 사람에게


시인의 눈을 통하면 일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에 다가가는 첫 단계이다. 김소연은 유리에 내재한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 싫은 마음’을 간파한다.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허무는 것. 유리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것들로 세상이 존재함을 증거 한다. 


유리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투시하게 하는 반면 거울은 반영하게 한다. 거울은 풍경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대신에 실체를 뒤집어 보여줌으로써 통념적인 인식의 틀을 뒤집는다. 


그녀는 밥은 사람의 육체에게 주는 음식이라면, 차(茶)는 사람의 마음에게 주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사전의 의미를 거치면 우리가 무심코 마시는 차 한 잔에 마음의 휴식과 관계의 온기에 대한 갈망이 들어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작가는 때로 우리가 혼동하기 쉬운 단어의 차이를 예리하게 들여다보았다. 사실과 진실, 순진함과 순수함, 솔직함과 정직함, 질투와 시기, 반항과 저항, 착함과 선함, 위선과 위악 등 그 미묘한 간극을 짚음으로써 삶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두어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책 속 밑줄 긋기


시인의 감성으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마음의 갈피를 탁월하게 구분한 언어를 몇 가지 소개한다. 


-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 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 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182p


- 순진함은 때가 묻지 않은 상태다. 반면 순수함은 묻은 때를 털어낸 상태다. 순진한 사람은 속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속지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조종하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조종할 수 없다. 199p


- 솔직함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정직함은 남을 배려하려는 것이다. 201p


- 착함은 현상이고 선함은 본질이다. 착함은 일상 속에서 구현되고, 선함은 인생 속에서 구현된다. 204p

시간을 통과하는 그대들에게 



순간의 마음이 시간의 강으로 흐른다. 마음사전은 시간이 박약한 세계에 주는 은총이라고 명명한다. 지금 그대가 이십 대를 통과하는 중이라면 세상이 폭풍 전야처럼 비장할 것이다. 유년의 기억과 해내야만 할 일들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몰아닥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당부한다. 그대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젊은 육체가 아니라 그 모든 허기와 갈증이라고. 피할 것은 피해가며, 예민하게 아파하며 뛰어 내일을 맞이할 일이다. 내일이면 또다시 소심한 하루가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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