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레아가 아프게 태어난 날 밤, 우리 부부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은 밤새 화장실을 오가며 속을 비워냈고, 나는 우느라, 걱정하느라, 아이의 기형에 대한 정보를 찾느라 홀랑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이상하게 더 말짱한 정신이 되었다. 강한 충격이 주는 각성효과였을까. 나는 그날 남편을 붙잡고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여보. 우리는 한 팀이야. 우리가 의지할 곳은 서로밖에 없어. 그러니까 레아를 돌보면서 내가 더 힘드네, 네가 한 게 뭐가 있냐 해가면서 싸우는 일은 절대 만들지 말자."
이 약속은 사실 나 스스로에게 한 것이었다. 남편이 한국말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 내가 주로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점 등 때문에 내게 좀 더 지워지게 될 짐을 잘 받아 들어야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었던 셈이다. 또 다른 약속 하나는 집안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하나 있으면 집에 불행의 그늘이 드리워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우리 테이를 위해서라도 우리 집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지 말자."
레아가 태어난 이후로, 내가 더 신경 쓰게 되는 아이는 아픈 레아가 아니라 첫째 아이 테이였다. 레아의 불편한 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짓눌린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어쨌든 레아는 레아 본인의 문제를 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테이는? 그동안 평화롭게 유지된 오던 테이의 일상이 타인에 의해 흔들리는 것은 타당치 않았다. 동생이 생기면 아이들은 보통 혼란에 빠진다고들 하는데, 거기에 몸이 불편한 동생이라면 오죽할까. 나는 테이가 동생이 아프다는 이유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들-아빠와의 장난과 스킨십, 엄마의 세심한 손길과 미소 같은 것-을 놓치게 하기 싫었다. 테이에게 우리 집은 언제나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이길 바랐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환하고 따뜻한 가정의 품이 느껴지는 집. 불운과 불행의 낌새가 나지 않는 산뜻한 집.
고독하고 절망적인 하루를 보내다가도, 큰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할 때면 먼지를 털어내듯 지금까지의 기분을 팡팡 쳐냈다. 그리곤 거짓 미소를 얼굴에 걸었다. 밝은 목소리를 짜냈다. 슬금슬금 음흉하게 다가오는 우울을, 아무리 자주 비워도 금방 다시 차고 넘쳐버리는 좌절을, 전염시키지 않아야지. 매일같이 다짐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다짐이, 그 거짓 미소가 테이가 아닌 바로 나를 구할 것이라는 걸.
거짓미소는 점차 익숙해졌다. 그 미소는 노력하지 않아도 지어지는 자연스러운 미소, 진짜 내 표정이 되어갔다. 기분 좋은 척을 하다 보니 마법같이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테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 즐거웠다. 어느 날인가는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깔깔깔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큰 소리로 깔깔깔. 짧은 순간, 어라, 나 행복을 느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고 사고 싶은 옷이 생기 듯, 행복을 느낄 수도 있는 거구나. 나는 행복했다. 행복한 여자 곁에 행복한 남자와 행복한 아이들이 있었다. 그 모든 불운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했다.
그 시절 나는 내 거짓웃음에 속아 넘어갔던 것이 분명하다. 그 속임수가 나중에는 진짜가 되어버린 것. 듀크대학교 교수 댄 애리얼리는 이렇게 말했다.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뇌가 거짓말에 덜 반응하게 되고, 우리는 점점 자신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내가 겪은 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이 아니었을까. 그때 내가 자기 최면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내 거짓 미소를 끝까지 믿지 못했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심한 우울증을 앓거나 살짝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어떤 것들을 회복 불가능할 만큼 망가트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비틀어진 관계, 아이들의 정서적 결핍, 피폐한 내면.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나 착각은 흔하지만 속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통의 사람들에겐 양심과 자의식이란 것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강력한 무엇이 있을 때 그것은 가능해지는 것 같다. 강력한 동기, 강력한 충격, 강력한 욕구... 거기에 반복적인 거짓말이 더해지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속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게 강력한 동기는 테이였고, 반복적인 거짓말은 미소였다. 그게 나를 구해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나는 기꺼이 나를 속이는 일에 다시 휘말리고 싶다. 어떤 거짓말이냐에 따라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