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레사 May 24. 2020

죽음은 몸도 넋도 앗아가는 것이길

그래야 네가 아프지 않을 테니

   “테이야, 파피 마미(papi, mamie; 할아버지, 할머니를 뜻하는 프랑스어)네 펠릭스가 하늘나라에 갔대.”

여름휴가를 보내는 프랑스 시댁에 머물 때면, 소리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 하루에도 여러 번 날 놀라게 하던 고양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고양이 중 쓰다듬어 줄 수 있었던 유일한 고양이. 우리 곁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낮잠을 자던 그 까만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 나만해도 펠릭스를 처음 만난 게 12년이 다 되어가니, 시부모님과는 정말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을 거다. 사인은 사고나 지병은 아니었고 노환이었다. 이별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어딘가 좀 안심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이 많이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그로부터 며칠 뒤, 큰 아이 테이를 차에 태우고 미술교습소를 가고 있는데 테이가 말했다.

   “엄마, 펠릭스 하늘나라에 갔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거죠? 슬프다.”

마음이 찡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해졌다. 그 일을 곱씹는 아이가 놀랍고 대견했다. 갑자기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진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테이야, 누구나 결국엔 하늘나라에 가게 되어 있어.”

왜냐고 되묻는 아이.

    “그냥,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만들어졌어. 태어나서 살다가 결국 모두 떠나.”

잠시 뭔가 생각하던 테이는 울상이 됐다.

   “나는 엄마랑 계속 계속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은데. 엄마 하늘나라 안 갔으면 좋겠어요.”

운전 중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아들의 순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런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친구가 생각나서 그랬다.

      

   S와는 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학부모로 만나, 어쩐지 아이끼리 보다 엄마끼리 더 친한 그런 사이가 되었다. 사실 우리는 유치원에서 마주치기 전부터 건너 아는 사이였다. 테이가 다니게 될 유치원에 대한 정보를 S를 통해 알게 되었던 터라, 얼굴은 못 봤지만 연락은 하던 사이. 그런데 막상 입학은 우리 아이가 먼저 하게 돼서, 나보다 늦게 아이 입학을 준비하는 S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렇게 S는 유치원과 가깝다는 이유로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작은 아이 어린이집도 우리 집 둘째와 같은 곳으로 등록했다.


   가까이 사는 데다가, 두 아이들이 각각 같은 기관에 다니다 보니 우린 금세 친해졌다. 아이들 등원 라이딩을 번갈아가면서 했고, 집에서 만든 음식을 서로 나눴다. 서로의 집을 자주 오가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때로는 육퇴 후 단지 내 놀이터에서 접선해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S는 집에 쌓여 있다는 와인을 와인잔과 함께 챙겨 나왔고, 나는 치즈나 크래커로 구색을 맞췄다.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맞는 두 여자의 허심탄회한 시간. 나는 그 초가을 밤을 애틋하게 기억한다. 한층 선선해진 공기와 핑크색 벤치, 쾅 닫히는 어느 집 창문 소리에 소곤소곤 낮아진 우리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캄캄한 밤이 주는 묘한 안도감과  해방감까지.

생전에 나에게 남긴 S의 메시지

  

   S에게는 여러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의욕이 넘친다는 점이 그랬다. 고향 캐나다를 떠나 타국에서, 사업으로 바쁜 남편의 도움 없이 두 아들을 키우며 산다는 것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도 마음이 무척 단단했다. 문자 그대로 ‘해외 독박 육아’를 하는 와중이었음에도 S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가장 부지런한 엄마였다. 그 점은 아이들 끼니뿐 아니라 간식거리까지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내는 데에서 가장 도드라졌는데, 그냥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매번 새로운 요리를 연구했고 맛이 좋으면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했다. 이런 열심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도 그렇고. 그즈음부터 나는 주방에서 좀 더 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건강한 자극을 주는 사람을 곁에 두면 삶에 활력이 생긴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랬던 나의 친구 S가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입원한 지 2주 만의 일이었다. 허망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생이별. 병원에 있으면서도 특유의 씩씩함을 잃지 않았던 친구였다. 매일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희망을 잃지 않던 친구. 삭발한 날을 기념하며 셀피를 찍어 보내준 친구. 어서 퇴원해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고 했던 친구. 삶은 그런 내 친구를 배신했다. 삶을 향한 선한 에너지가 가득했던 내 친구를, 정작, 삶은.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육체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상태. 그렇다면 정신은? 정신도 함께 정지하고 증발해 버리는 것일까? 그를 잃은 뒤 종종 죽음에 대한 답 없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떠난 자와 남은 자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고(無辜)하게 죽은 사람의 미안함에 대하여. 상실했으나 더해지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무게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들에게만은 그 진실을 숨기고 싶다. 너무 슬프고 잔인하니까. 그 죽음이 엄마나 아빠에게 찾아온 경우에는 더더욱.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이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흔히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할 때, “하늘나라에 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서 다른 곳으로 갔다. 더 이상 여기에서는 볼 수 없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놀라운 비밀은 그곳에서는 여기가 보인다는 것. 그러니까 남아있는 우리는 계속해서 씩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곳에 간 사람이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남은 사람들이야 떠난 자의 영혼이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것이 덜 외롭겠지만, 나의 친구 S를 생각하면 육체와 함께 영혼도 떠나버린 것이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 또한 외로워지는 마음을 피할 길이 없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파할 그 영혼이 너무 안쓰러워서- 이 바람을 이어간다. 죽음은 몸도 넋도 모두 앗아가는 것이라고.


   그가 완전히 몽땅 사라졌다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면 그만 아닌가. 그 사람을 닮은 얼굴 앞에서, 그 사람과 나눠 마시던 와인을 맛보다, 그 사람이 알려준 요리를 하다가, 문득 그를 그리워하면. 그러면 그는 내 곁에 있는 것이 되니까. 그의 어느 부분도 아프지 않으면서, 나는 덜 외로워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S를 오래 기억하려 한다. 사실 그것 밖에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고작 그것 밖에는.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라진 자리로서, 상실된 자리로서 빈자리가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하는, 우리가 마련해야 하는 자리로서 빈자리를 말하고 싶습니다. 상실한 자리가 아니라 마련한 자리, 그래서 그가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깃드는 자리를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기억한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묵묵, 고병권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